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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도 못했다” 먼저 간 아내를 그리며 …

배우 오현경씨는 연극을 ’배우의 힘으로 끌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여든을 넘긴 그에게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오현경씨는 연극을 ’배우의 힘으로 끌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여든을 넘긴 그에게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원로배우 오현경(82)이 무대에 선다. 국립극단의 2018년 첫 작품 ‘3월의 눈’에서 주인공 ‘장오(왼쪽 사진)’ 역을 맡았다. ‘3월의 눈’은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을 기념해 2011년 초연한 연극이다. 평생 일군 삶의 터전이자 마지막 재산인 한옥을 팔고 떠나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며 ‘3월의 눈’같이 금세 녹아 사라져버리는 인생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내달 7일 개막을 앞두고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연습 중인 그를 만났다. 백발에 마른 체형, 겉모습은 영락없이 팔십노인 ‘장오’였지만 매끄럽고 힘있게 울리는 목소리는 한 음절도 제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연극 ‘3월의 눈’ 주연 오현경
노부부의 일생 담담하게 돌아봐
윤소정과 처음 함께하려 했는데 …
내달 공연에선 손숙과 호흡 맞춰
연기인생 60년, CF 한번 안 찍어

2016년 ‘언더스터디’, 2017년 ‘봄날’에 이어 매년 연극 무대에 서고 있다.
“‘언더스터디’는 ‘배우 오현경 연구’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작가가 극본을 쓴 작품이고, 1984년 초연 때부터 아버지 역을 맡았던 ‘봄날’은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3월의 눈’은 2013년 재연 때 제안을 받았는데 ‘봄날’ 연습과 겹쳐 출연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집사람이 ‘우리 같이 한번 ‘3월의 눈’ 해보자’고 하더라. 우리 부부는 한 번도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이 없다. 작품 속 인물이 아닌 ‘오현경·윤소정’으로 주목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더 늙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이 당시 국립극단 김윤철 예술감독한테 얘기까지 했는데, 그 뒤 기회가 없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연극‘3월의 눈’ 주연 오현경. [사진 국립극단]

연극‘3월의 눈’ 주연 오현경. [사진 국립극단]

그는 지난해 6월 아내인 윤소정(1944~2017) 배우를 갑작스레 잃었다. 사인은 패혈증이었다. ‘3월의 눈’에서 그는 손숙 배우와 짝을 이뤄 무대에 선다.
 
상실감 · 그리움이 클 것 같다.
“연습하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 많다. 의사가 아내의 생존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했을 때도 호전되겠지 기대했었다. 중환자실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저세상으로 간 게 너무 가슴 아프다. 입원할 때 ‘나 알겠어?’라고 물었더니 ‘어’하고 대답했던 게 다였다. 내가 자상하지 못해 ‘사랑한다’는 말도 잘 못했다. 아내에게 잔소리하며 스트레스를 준 것 같아 미안하다. 처음엔 내가 벌어 먹고 살았지만, 방송 일이 줄어든 뒤로 집사람이 20년 정도 양장점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의 배우 인생은 60년이 훌쩍 넘는다. 1954년 서울고 재학시절 교내 연극부를 만들었고, 이듬해 연극 ‘사육신’에 성삼문 역으로 출연해 ‘전국 고교생 연극경연대회’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연세대에 진학한 뒤론 연세극연구회가 그의 주무대였다. 이후 드라마센터와 실험극장 등에서 활동하다 TV 방송국이 생기면서 탤런트 생활을 시작했다. TBC 탤런트실 실장을 하면서 TBC 공채 탤런트 1기였던 아내도 만났다.
 
배우 오현경과 고(故) 윤소정 부부의 젊은 시절 모습.

배우 오현경과 고(故) 윤소정 부부의 젊은 시절 모습.

연극과 드라마·영화를 넘나들며 배우로 살아온 그는 작품의 성패가 배우의 역량에 달렸다고 믿는다. “모름지기 배우는 뭔가를 창조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예술가지 남 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면 인형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장오’를 만들어낸다. “‘섭섭할 것도 없고 억울한 것도 없다’고 독백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장오 본연의 모습을 보여줄 아이디어를 냈다. 손진책 연출에게 말했더니 좋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명료하고 탄탄한 발성은 젊은 배우 이상이다. 비법이라도 있나.
“1968년 연극 ‘북간도’ 공연을 하면서 목에 탈이 난 적이 있었다. 결혼식 이틀 후부터 공연하느라 무리를 해서인지 목소리가 변하고 피가 나왔다. 그 뒤 1년을 쉬며 발성법을 연구했다. 목을 자극하지 않고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내는 방법이다. 호흡을 다 뱉지 않고 발성하는 훈련을 하니 큰소리를 내도 목이 안 쉰다. 배우에게 소리만큼 중요한 건 말이다. TV를 보면 소리는 들리는데 말이 안 들리게 연기하는 배우들이 있다. 대사 분석이 안돼서다. 어디를 강조하고, 어디에 간격을 둘지 등 상황에 맞는 말을 찾아내는 것은 배우의 몫이다.”
 
그는 자신의 배우 인생을 돌아보며 “나는 못난 고집쟁이”라고 했다. 독특한 고집거리가 있긴 했다. “웬만하면 출연 전 계약서를 안쓴다”는 것부터 의외였다. “중간에 내가 죽거나 아플 수도 있는데 어떻게 될 줄 알고 계약서를 쓰냐”는 그는 “그러다 사기꾼한테 걸려 출연료를 못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상업 광고에 나갈 수 없었다”며 끝내 광고 출연을 하지 않은 것은 그도 가끔 아쉽게 생각하는 일이다. 후배 배우들에게 화술·연기 등을 무료로 가르쳐주기 위해 시작했던 스튜디오 ‘송백당’ 운영을 3년 만에 접은 이야기를 하며 “돈이 필요한 일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배우에게 CF 출연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는 요즘 세태는 문제”라고 못박았다.
 
그에게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을 물었다. 예상 못한 답이 돌아왔다. 그는 신작이나 자신의 대표작 ‘휘가로의 결혼’‘베니스의 상인’ 등을 꼽는 대신 1984년 드레서 역으로 딱 한 번 출연했던 연극 ‘드레서’를 들었다. “당시 공연에서 내가 놓친 게 있다. 아무래도 드레서가 배우를 사랑한 것 같다. 배우에게 ‘선생님’ 하며 접근하는 장면에서 좀 더 여성스럽게 몸을 탁 부딪쳤어야 했다”며 “다시 잘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극 중 인물에 대한 배우의 열정 앞에서 30여 년 세월이 무색했다. 그가 새 열정을 바쳐 창조하고 있는 인물, ‘3월의 눈’ 장오는 3월 1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볼 수 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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