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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 돈 안 주고, 일방적 계약 해지 … 웹툰 작가들 뿔났다

지난 11일 서울 논현동 레진코믹스 본사 앞에서 작가와 독자 100여 명이 항의 시위를 했다. 웹툰 작가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블랙리스트 의혹 등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촉구했다. [홍상지 기자]

지난 11일 서울 논현동 레진코믹스 본사 앞에서 작가와 독자 100여 명이 항의 시위를 했다. 웹툰 작가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블랙리스트 의혹 등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촉구했다. [홍상지 기자]

독립 애니메이션 작가였던 T작가는 지난해 국내 한 웹툰 플랫폼 업체와 작품 연재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를 앞에 두고 사 측 담당자는 대뜸 “웹툰의 콘셉트가 별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입맛을 안 맞출 거면 다른 플랫폼 알아보는 게 좋을 겁니다.”
 

작가들, 비공정 사례 모음집 만들어
마감 좀 늦었다고 지각비 떼고
“회사 입맛 맞춰라” “성인물 그려라”
복지문제 지적 뒤 블랙리스트 올라

국내 웹툰시장 7240억 규모 급성장
작가들 근로환경은 개선 안 돼

스스로 상업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T작가는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계약서를 보는데 예상 연재 횟수를 적는 란이 비어있었다.
 
“이건 왜 공란이죠?”
 
T작가가 묻자 담당자는 “원래 공란으로 비워놓는 곳”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이후 연재를 시작한 T작가에게는 하루가 멀다하고 담당자의 수정 요구가 쏟아졌다. T작가는 “사측의 요구로 초기 콘셉트·주인공이 모두 바뀌었다. 심지어 연재 중 콘티를 아예 엎어버리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완결을 한참 남겨두고 T작가는 담당자로부터 “연재를 그만하기로 결정했으니 작업을 중단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포함해 국내 웹툰 작가들이 지난해 말부터 각자의 사례를 수집해 ‘웹툰 작가 비공정 관행 사례 모음집’을 만들었다.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 모욕발언 등 수십여 명의 작가들이 제보한 경험담은 다양했다. B코믹스에서 연재한 경험이 있는 G작가는 “공포웹툰을 4화까지 그리고 있었는데 회사가 ‘수익이 잘 안 생긴다’며 성인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래도 반응이 시들하자 아예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K사와 일했던 H작가는 “계약 후 만화를 보내자 ‘그림이 너무 뚱뚱하다’‘인기가 많은 신체 부위를 부각해 그려달라’ 등 무례한 수정 요구들이 이어졌다”고 고백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웹툰시장 규모는 7240억원 규모다.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 작가들의 근로환경은 그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인기 웹툰 ‘양극의 소년’을 연재한 은송 작가는 “연재를 한번 시작하면 작가 대부분이 외출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매주 마감에, 담당자 수정 요구에 시달려 몸이 망가진다”고 지적했다. 웹툰 ‘월한강천록’의 회색 작가도 “신인 작가들은 ‘기다려 달라’는 담당자 말에 수개월 간 무급에 그림만 그리다 결국 연재를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태반이다”고 전했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웹툰 작가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레진코믹스에서 웹툰을 연재하던 회색 작가가 “해외 연재분 수익을 회사로부터 받지 못했다”고 폭로한 뒤 ‘벙어리 냉가슴’만 앓아온 작가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자체 마감일을 지정해놓고 마감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급여에서 ‘지각비’를 떼어가는 관행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11일에는 작가·독자 등 100여 명이 서울 논현동 레진코믹스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당시 은송 작가는 “작가들 복지 문제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적으로 지적한 뒤 회사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사이트 내 프로모션 등에서 작품 노출이 제한됐다”고 밝혔다. 이후 작가들은 돌아가면서 이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벌였고 한국만화가협회·한국웹툰작가협회는 레진코믹스에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레진코믹스 측은 “작가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지각비(지체상금)는 폐지하기로 했고 MG(미니멈 개런티)도 인상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9월 서울시·웹툰 플랫폼 3개 업체와 ‘공정한 웹툰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뒤 표준계약서 문안, 저작권 보호 및 공정한 수익배분을 위한 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웹툰시장이 커지면서 작가들의 수익분배 방식이 다양해졌는데 현재 표준계약서에는 간단한 형태의 계약만 전제하고 있어 현실에 맞게 고치려 한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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