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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멸종위기종 고라니, 국내선 왜 민폐동물 됐을까

지난해 10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안병덕 재활관리사는 고라니가 쓰러져 있다는 신고 전화를 받았다. 현장에 가보니 농경지 한쪽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쓰러진 채로 고통스러운 듯 발버둥 치고 있었다. 산탄총에 맞은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온몸에 나 있었고, 꼬리도 잘려져 있었다. 재활관리사 안 씨는 “누군가 수렵의 증거로 꼬리만 자른 뒤에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영남대 장갑수(생명과학과) 교수 등이 국립생물자원관이 제출한 ‘유해동물 구제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 해동안 전국에서 포획된 고라니는 11만3800마리에 이른다. 2012년 2만9800마리에서 4년 만에 3.8배로 증가했다.
 
고라니는 도로에서 차량에 치여 죽는 이른바 ‘로드킬(Road-Kill)’의 가장 흔한 피해 동물이기도 하다. 국립생태원의 ‘우리나라의 고라니 로드킬 발생 건수 추정’ 논문에 따르면, 한국에서 연간 최소 6만 건 이상의 고라니가 로드킬을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한 해에만 17만 마리의 고라니가 인위적으로 사라진 셈이다.
 
고라니는 한국에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될 정도로 흔한 동물이지만, 국제적으로는 멸종위기 보호종으로 분류돼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고라니를 적색목록의 취약종(Vulnerable)으로 지정했다.
 
국제 멸종위기종인 고라니가 상위 포식자가 없는 국내에선 개체수가 늘어나 천덕꾸러기가 됐다. 지난 19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 나타난 고라니 한 마리가 참배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멸종위기종인 고라니가 상위 포식자가 없는 국내에선 개체수가 늘어나 천덕꾸러기가 됐다. 지난 19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 나타난 고라니 한 마리가 참배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고라니가 한국에서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된 건 1994년이다. 호랑이·표범 같은 상위 포식자가 없어지는 등 생태계가 달라지면서 늘어난 고라니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2000년 이후 고라니의 서식밀도가 높아지면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 위한 포획 활동이 활발해졌다. 현재 지자체별로 농사철이 되면 고리나 한 마리당 3만~5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포획단이나 피해방지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라니 밀도가 높은 충남 서산시의 경우 지난해 3600마리를 포획·사살했다. 정부도 매년 11월에서 2월까지 4개월 동안 수렵장을 운영하면서 적극적으로 고라니 등 유해 야생동물의 개체 수 조절에 나서고 있다.
 
현재 한국에 서식하는 고라니 개체 수는 50만~70만 마리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라니 포획 개체 수가 급증하면서 고라니 집단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립생물자원관 조영석 연구사는 “지자체별로 피해 대응 중심으로 고라니 포획 활동을 벌이다 보니 체계적인 개체 수 관리가 힘든 게 현실”이라며 “수렵장 운영을 통해 고라니 개체 수를 조절하고, 이를 통해 마련한 수익으로 고라니의 생태 환경을 관리해주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과 마찰을 줄이기 위해 일부 지역을 고라니의 서식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장갑수 교수는 “단순히 ‘유해 야생동물’이라는 오명 외에 고라니가 생태계에 미치는 순기능까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휴경농경지를 활용해 고라니가 자연 생태계 내에서 활동하도록 유인하는 등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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