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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의 퍼스펙티브] 강한 대북 제재가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이끈다

데이터로 본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 남북 고위급 대화, 평창올림픽 참가 논의, 실로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보인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하더라도 남한의 모든 대화 제의를 거부한 북한이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핵과 미사일 개발로만 치달은 북한이 항로를 변경한 것인가. 일시적으로 우회한 후 다시 예전의 항로로 돌아갈 것인가.
 
항로 변경의 조짐은 지난해 11월 말 화성 15호 발사 이후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데서도 보였다. 이어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이를 성취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 무력 완성을 믿지 않는다. 미국도 수백 번의 실제 거리 발사 실험을 하고서야 얻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북한이 고각을 포함한 몇 번의 발사 실험만으로써 확보했을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렇게 서둘러 ‘미완성’의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하고 남북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정은이 그 이유를 털어놓을 리 없지만 우리는 데이터로 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2년 전 4차 핵실험 이후 지금까지 가장 달라진 것은 대북 제재다. 4차 핵실험 이전의 제재는 핵과 무기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물품의 금수(禁輸)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그 이후는 북한의 돈줄을 죄려는 무역 제재가 핵심이 됐다. 따라서 김정은의 속내를 알기 위해선 이 제재의 효과를 따져 봐야 한다. 만약 제재 효과가 없었다면 평창올림픽을 위한 대화 제의는 군사·외교적 술수거나 ‘민족적 대사’를 축하하려는 김정은의 ‘통 큰 결단’으로 볼 수도 있다. 만약 경제가 무너질 정도로 큰 효과가 있었다면 항로를 완전히 바꿀 각오까지 하고 대화에 나온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 중간이라면 항로 우회 전술을 통해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일 것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폐쇄경제로서 무역의존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무역 제재는 효과가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 경제의 변화를 알지 못한 팩트(fact) 오류다. 그래픽을 보면 북한과 외국과의 무역액에 남북 교역 금액을 합한 다음 북한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수치, 즉 북한의 무역의존도는 2010년도 이후 많이 증가했다. 가장 높을 때인 2014년에는 52%에 이르러 같은 해 세계 모든 나라의 무역의존도 평균인 60%에 근접했다. 즉 북한은 더는 사회주의 폐쇄 경제가 아니라 무역을 통해 먹고 사는 나라다. 따라서 한국과 같은 개방 경제가 수출이 줄면 타격을 입는 것처럼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북한의 대중 수출이 2017년엔 전년도 대비 37% 감소했으며 제재가 완전히 작동하면 올해는 90% 이상 줄 수 있다.
 
 무역제재로 수출이 막히면 김정은에게 들어가는 충성 자금이 감소한다. 권력층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들은 무역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었다. 특히 총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던 광물 수출은 그 이윤율이 80%에 달한다고 추정될 만큼 많이 남는 장사였다. 또 북·중 무역에서 매출액의 7%에 달하는 킥백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업체가 북한 광물을 수입할 때 시가보다 낮게 결제하고 대신 킥백을 주는 것이다. 이 돈의 대부분은 수출 기업이 속한 국가 기관, 그중에서도 당·군의 권력층에게 돌아간다. 북·중 무역이 60억 달러에 달할 때, 한 해 최대 4억 달러가 이들에게 들어갔다는 말이다.
 
무역 제재의 효과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무역은 북한 주민의 생명줄인 시장 활동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동안 시장이 커왔던 것은 수출을 통해 번 돈이 구매력이 되고 수입한 물건이 공급으로 작용한 덕분이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총소득의 70% 이상을 시장에서 벌고 있다. 대다수 공식 직장의 임금은 북한 돈 3000원 정도이며 이는 암시장 환율로 40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네 식구가 생활하려면 월 30~50달러가 필요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주민은 시장 활동에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한다.
 
시장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 특히 다수의 관료는 주민 뇌물로 살고 있다. 가계 지출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북한 뇌물을 국민소득으로 나누어 보면 부패가 극심했던 소련 말기의 3배에 달한다. 따라서 시장 활동이 축소되면 뇌물이 줄어 관료의 생활도 어려워진다. 이처럼 무역 제재는 북한 정권(충성자금), 권력층(무역 수입), 관료(뇌물), 주민(시장 소득)에 동시에 타격을 주는 ‘벙커버스터’가 될 수 있다.
 
그럼 제재가 얼마만큼 효과를 거두었을까.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앞에서 설명한 대로 무역(무연탄 수출 물량, 광물 수출 비중, 북·중 무역총액)과 외화수입(수출과 수입의 차이), 그리고 시장(시장 환율과 쌀 가격)에 미친 충격을 종합하여 월별로 보면 그래픽과 같다. 2017년 1~2월에 10점에도 미치지 못했던 무역 제재의 실효성은 그 뒤 40~50점대로 뛰어올랐다. 이는 중국이 3월부터 무연탄 수입을 금지한 것이 주된 이유다. 12월에는 실효성 지수가 60점에 근접했다. 북한으로서는 수출은 많이 감소했지만 수입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동안 축적한 외화가 유출되고 있다.
 
북한 정권이 보유한 외환 규모는 30억 달러 정도로 추정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권력층(기관)과 민간이 보유한 외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년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북한이 보유한 외환은 17억 달러가량 감소했고 올해는 더 많이 감소할 수 있다. 그러면 올 하반기쯤에는 외화 부족을 보여주는 증상이 드러날 수도 있다.
 
시장(장마당) 환율과 쌀 가격을 볼 때, 무역 제재가 아직 북한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환율은 2013년 이래 큰 변동이 없고 쌀 가격도 안정적이다. 최근 북한은 경제의 달러화 혹은 위안화가 급속히 진전돼 액수가 큰 거래나 저축은 대부분 외화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전보다 제재가 환율 변동에 주는 영향이 적거나 늦게 나타날 수 있다. 또 북한 주민은 개방 경제의 충격을 접한 적이 없어 제재가 가져올 태풍 같은 효과를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이처럼 무역 제재는 북한 수출에 큰 충격을 주어 외화보유액을 급속히 줄이고 있으며 국가 기관과 권력층, 김정은의 돈줄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해외 파견 근로자의 철수, 합작기업 금지 등도 북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아직은 버틸 수 있지만, 제재의 효과가 앞으로 1년 이상 간다면 외환위기까지 갈 수도 있으며 시장까지 충격을 받아 무너지면 김정은이 인민 생활을 향상하겠다고 한 약속은 거짓말이 된다. 핵·경제 병진 노선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이다. 만약 실효성 지수가 지금의 50대에서 80 이상이 되면 김정은의 권력에 큰 타격이 가해질 수도 있다.
 
제재에 맞서는 무기로 김정은은 자립 경제에 희망을 걸고 있는 듯하다. 이를 반영하여 2012~2017년의 6년 동안 신년사에서 총 9번 등장했던 자립이란 단어가 올해에는 8번이나 들어갔다. 그러나 무역의존도가 높은 경제를 자립 경제로 탈바꿈시키기는 어렵다. 높은 무역의존도란 원자재와 부품의 조달, 기계 설비, 임금 지급 등이 무역과 연관돼 돌아갔다는 말이다. 이 연결고리가 끊어지는데 갑자기 이를 국산화와 정신 무장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도덕 기강’을 강조하고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뿌리 뽑자고 주장하며 ‘잡사상’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외치는 김정은의 신년사는 그 절박함의 단면을 보여준다.
 
김정은은 공포정치를 펴고 있지만, 그 스스로 제재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그에게 평창올림픽 참가, 악단 및 응원단 파견은 합리적 선택이다. 한국과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정상 국가’라는 이미지를 선전할 수 있음은 기본이다. 한미 갈등과 남·남 갈등을 야기해 제재 공조를 균열시키고 제재 동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기대도 할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그의 신년사도 이런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제재 실효성이라는 지표로 김정은의 마음을 읽었을 때 그의 항로 변경은 우회술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핵 협상에 진지하게 임할 정도가 되려면 제제 실효성이 80점을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50점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올해 더 높아질 수 있고 그 경우 북한 경제와 사회, 그리고 정권에 태풍이 몰아칠 수도 있다. 저기서 몰려오는 짙은 먹구름이 보이는데 이를 피해 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또 제재 때문에 구매가 어려워진 핵·미사일용 원자재 및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 했을 수도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통일분과장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통일분과장

우리 정부는 북한의 입을 믿지 말고 데이터를 보고 그들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 데이터는 완전한 제재 효과가 이미 온 것이 아니라 올 것을 시사한다. 대화에 나선 북한의 우회 전술을 영구적인 항로 변경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시간을 가지고 더 압박해야 한다. 대화하면서도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제재의 끈을 더욱 조여야 한다. 여기서 반대의 길로 간다면 민족의 운명을 그르치는 엄중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예전처럼 대북정책을 이념과 표 계산으로 오염시켜선 안 된다. 북한 주민을 살리고 우리가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도 객관적 분석을 통해 북한을 이해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리셋 코리아 통일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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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