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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만 마리씩 죽는 고라니…어쩌다 '민폐 동물'이 됐나

폐그물에 걸린 고라니가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사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폐그물에 걸린 고라니가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사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지난해 10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안병덕 재활관리사는 고라니가 쓰러져 있다는 신고 전화를 받았다. 현장에 가보니 농경지 한쪽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쓰러진 채로 고통스러운 듯 발버둥 치고 있었다. 산탄총에 맞은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온몸에 나 있었고, 꼬리도 잘려져 있었다. 재활관리사 안 씨는 “누군가 수렵의 증거로 꼬리만 자른 뒤에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라니는 치료를 받았지만, 사흘 만에 숨이 끊겼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가 총에 맞아 방치된 고라니를 구조했다. 포획단이 수렵의 증거로 꼬리를 자른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가 총에 맞아 방치된 고라니를 구조했다. 포획단이 수렵의 증거로 꼬리를 자른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요즘도 하루가 멀다고 고라니 구조를 요청하는 신고가 들어온다. 지난달에만 21마리의 고라니를 구조했는데 야생동물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차량에 충돌했거나 농수로에 갇힌 경우도 많지만, 최근에는 이른바 ‘고라니망(網)’이라고 불리는 그물에 걸려 방치되는 고라니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안 재활관리사는 “언제부턴지 농작물 피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농촌에 급속도로 고라니망이 퍼지면서 그물에 걸린 채로 굶어 죽는 고라니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총에 맞아 도망가다가 차에 치여 쓰러진 고라니. 신고자가 그늘과 물을 마련해줬다. [사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총에 맞아 도망가다가 차에 치여 쓰러진 고라니. 신고자가 그늘과 물을 마련해줬다. [사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고라니는 농작물 피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시·군의 허가를 받은 포획단이 쏜 엽총·산탄총에 희생되는 경우도 많다.
안 씨는 "납탄이 박혀 쓰러진 고라니를 먹은 독수리가 납 중독으로 죽는 2차 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영남대 장갑수(생명과학과) 교수 등이 국립생물자원관이 제출한 ‘유해동물 구제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 해동안 전국에서포획된 고라니는 11만3800마리에 이른다. 2012년 2만9800마리에서 4년 만에 3.8배로 증가했다. 멧돼지(3만3300마리)는 물론 까치(6만2400마리)보다도 압도적으로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라니는 도로에서 차량에 치여 죽는 이른바 ‘로드킬(Road-Kill)’의 가장 흔한 피해 동물이다.
국립생태원의 ‘우리나라의 고라니 로드킬 발생 건수 추정’ 논문에 따르면, 한국에서 연간 최소 6만 건 이상의 고라니가 로드킬을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한 해에만 17만 마리의 고라니가 인위적으로 사라진 셈이다. 고라니는 언제부터 한국에서 없어져야 할 ‘민폐 동물’로 전락했을까.
멸종위기종 또는 유해 야생동물
한국에 주로 서식하는 고라니. 긴 송곳니가 특징이다. [사진 국립생태원]

한국에 주로 서식하는 고라니. 긴 송곳니가 특징이다. [사진 국립생태원]

고라니는 토착종으로 한국과 중국에만 서식한다. 물을 좋아해서 영어로는 ‘물사슴(Water Deer)’이라고 한다. 특유의 긴 송곳니 때문에 ‘흡혈귀 사슴(Vampire Deer)’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에서는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될 정도로 흔한 동물이지만, 국제적으로는 멸종위기 보호종으로 분류돼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고라니를 적색목록의 취약종(Vulnerable)으로 지정했다.
중국에는 현재 양쯔강 유역에 1만여 마리만이 살아남아 있어, 중국 정부에서도 자국 내 보호종으로 지정해 복원작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조영석 연구사는 “북한에서도 고라니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어떻게든 개체 수를 늘려보려고 하고 있다”며 “유일하게 건강한 고라니 개체군을 유지하고 있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눈 위를 걸어가는 어린 고라니. [사진 국립생태원]

눈 위를 걸어가는 어린 고라니. [사진 국립생태원]

고라니가 한국에서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된 건 1994년이다. 호랑이·표범 같은 상위 포식자가 없어지는 등 생태계가 달라지면서 늘어난 고라니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고라니는 허가만 받으면 수렵이 가능한 동물이 됐다.

특히, 2000년 이후 고라니의 서식밀도가 높아지면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 위한 포획 활동이 활발해졌다. 도로 확장과 경작지 증가로 고라니와 인간의 접점이 많아진 것도 ‘고라니는 유해동물’이란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지자체별로 농사철이 되면 고리나 한 마리당 3만~5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포획단이나 피해방지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라니 밀도가 높은 충남 서산시의 경우 지난해 3600마리를 포획·사살했다. 고라니는 식용으로 거의 쓰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매립 처리된다.
유해 야생동물 처리를 담당하는 지방의 한 공무원은 “콩 같은 새순을 뜯어 먹는 고라니 때문에 농사를 망쳤다는 민원을 많아져 몇 년 전부터 포상금을 올렸다”며 “고라니는 새끼를 몰고 다니는 습성이 있어 한 번에 여러 마리를 포획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농사철이 지나도 고라니의 수난은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매년 11월에서 2월까지 4개월 동안 수렵장을 운영하면서 적극적으로 고라니 등 유해 야생동물의 개체 수 조절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올 겨울에도 전국 18곳에서 수렵장이 운영되고 있다.

고라니와 같이 살아갈 수는 없을까
 고라니는 주로 새끼를 몰고 다니는 습성이 있다. [사진 국립생태원]

고라니는 주로 새끼를 몰고 다니는 습성이 있다. [사진 국립생태원]

현재 한국에 서식하는 고라니 개체 수는 50만~70만 마리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라니 포획 개체 수가 급증하면서 고라니 집단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생물자원관 조 연구사는 “지자체별로 피해 대응 중심으로 고라니 포획 활동을 벌이다 보니 체계적인 개체 수 관리가 힘든 게 현실”이라며 “수렵장 운영을 통해 고라니 개체 수를 조절하고, 이를 통해 마련한 수익으로 고라니의 생태 환경을 관리해주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라니는 유해 동물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고라니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과 마찰을 줄이기 위해 일부 지역을 고라니의 서식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연구를 진행한 장 교수는 “단순히 ‘유해 야생동물’이라는 오명 외에 고라니가 생태계에 미치는 순기능까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휴경농경지를 활용해 고라니가 자연 생태계 내에서 활동하도록 유인하는 등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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