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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문학] 아바나를 ‘경험’하다

김형중 조선대 교수·문학평론가

김형중 조선대 교수·문학평론가

“세계의 가장 경이로운 기적들을 마주했을 때 압도적인 다수는 그것을 경험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오히려 카메라로 하여금 그것을 경험하게 하기를 선호한다.”(『유아기와 역사』) 1978년에,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했던 말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에서, 저 말은 마치 무슨 예언이었던 것처럼 읽힌다. 흔히 여행이란 낯선 세계와 조우하는 경험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타인이 이미 경험한 것들, 그래서 충분히 낯익은 것들(음식, 길거리, 건물)을 ‘확인’하러 여행을 떠난다. 여정은 익숙한 장소들을 겉돌았을 뿐이므로, 긴 여행에서 돌아와도 ‘자아의 확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쿠바에서의 체류 경험을 기록한 백민석의 장편소설 『교양과 광기의 일기』가 출간되었단 소식이 이례적으로 반가웠던 것도 그런 이유다. 거칠면서도 지적인 작가이니, 그가 전하는 아바나의 풍경 속에서 어쩌면 ‘여행’의 모범을 읽을 수도 있으리라. 펼쳐보니 실제로 이 책은 기이한 쿠바 여행기라고 해도 무방했다.
 
백민석의 『교양과 광기의 일기』 책 표지. [사진 한겨레 출판사]

백민석의 『교양과 광기의 일기』 책 표지. [사진 한겨레 출판사]

기이하다는 말은 무엇보다도 이 책의 구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 소설을 백민석은 일기 형식으로 썼다. 그러나 이 일기는 그간 우리가 좀처럼 써보지도 읽어보지도 못했던 생소한 일기다. 한 인물의 두 자아가 번갈아 쓴 일기이기 때문이다. 교양 있는 자아가 아바나를 거닐며 데리다와 손탁과 혁명과 쿠바와 미술작품과 사진에 대해 사색한다. 그러고 나면 “뒷면에 일기를 쓰는” 다른 자아 차례다. 스스로를 “내 안에는 전쟁놀이와 광란의 섹스를 좋아하는 10대 소년이 살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하는 이 자아는, 거리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백인 포주를 두들겨 패고 하루키의 계급성을 비판한다. 전자가 ‘중심에 대한 강박’ 속에서 일정한 동심원의 궤도를 그리며 낮의 아바나를 산책한다면, 후자는 탈중심의 욕망에 따라 규칙 없이 밤의 아바나를 배회한다.
 
낮의 아바나와 밤의 아바나, 이성이 관찰한 아바나와 몸이 접촉한 아바나, 자아의 아바나와 이드의 아바나, 『교양과 광기의 일기』는 그런 식으로 아바나를 여러 겹으로 ‘경험’하게 한다. 그 많은 여행 블로그의 천편일률적인 사진들, 패키지 상품 카탈로그의 최적화된 관광일정들 따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아바나가 소설 속에 있다. 소설은 ‘되찾은 경험’이다.
 
 
김형중 조선대 교수·문학평론가
 

◆약력: 전남대 영문학과, 동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문예중앙’, ‘문학들’ 편집위원 역임. 소천비평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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