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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혁명 7주년…먹고 사는 문제 해결 없이 아랍의 봄은 오지 않는다

독재자를 축출한 재스민 혁명 7주년을 기념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날이 저물자 폭력적인 시위대로 변했다. 정부가 부가가치세 등을 올리고 저소득층을 돌보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이다. [AFP=연합뉴스]

독재자를 축출한 재스민 혁명 7주년을 기념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날이 저물자 폭력적인 시위대로 변했다. 정부가 부가가치세 등을 올리고 저소득층을 돌보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이다. [AFP=연합뉴스]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외과 의사 파디 알페키(30)는 오는 3월 독일로 이주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튀니지가 ‘아랍의 봄'의 진원지였던 2011년 이후 수 년에 걸쳐 그는 의학 공부를 마쳤다. 하지만 열악한 근로 조건과 침체에 빠진 경제, 무엇보다 조국의 민주주의 실험이 기대와 다르게 실패했다는 생각에 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알페키는 “억압이 난무하고 불의가 판을 치는 정권이어서 당시 혁명을 지지했고, 우리가 힘을 합치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겼다"며 “하지만 지금은 모두 먹고 살기가 어려워 자신만 생각한다”고 씁쓸해 했다.

혁명 촉발한 튀니지서 실업난, 고물가, 세금 인상에 시위
이집트도 경제난에 테러로 관광 타격, 비상사태 선포
리비아·시리아·예멘은 내전과 IS 발호로 대규모 사망
독재자 쫒아냈지만 정체성 뒤섞여 새 질서 못만들어
민주화엔 시간 걸려…"아랍 혁명 성패도 더 지켜봐야"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아메드 벤 아메르(26)도 "불법 이민자가 이용하는 보트를 타고라도 유럽으로 갈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그는 “직장을 잡고 결혼하고 싶지만 여기선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튀니지 시민들이 정부의 세금 인상과 물가 상승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연합뉴스]

튀니지 시민들이 정부의 세금 인상과 물가 상승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연합뉴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독재 정권을 줄줄이 무너뜨린 ‘재스민 혁명'이 7주년을 맞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당시 시위가 시작된 튀니지 수도 튀니스의 하비브 부리기가 거리에 또다시 혁명의 불씨가 타올랐다.
 
 이날 거리로 나온 수천 명은 약 24년간 튀니지를 통치한 독재자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을 축출한 것을 기념했다. 하지만 날이 저물자 폭력적으로 변했다.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거리에 불을 피워 연기가 자욱했다. 경찰은 최루가스를 쏘며 진압에 나섰다. 내무부에 따르면 지난 7일부터 이어진 시위로 800여 명이 체포됐고, 보안군 90여 명이 다쳤다.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과정에서 최소 1명이 숨졌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튀니지 시위대가 진압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튀니지 시위대가 진압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랍이 꿈꿨던 봄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혹독한 겨울이 이어지는 중이다.
 아랍에서 유일하게 2014년 헌정이 출범해 민주주의가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은 튀니지조차 그렇다. 이달 초부터 경유 가격과 함께 자동차나 전화기, 인터넷 사용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가 오르고 사회보험 부담금이 인상되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시민들은 경제 실정을 비판한다. 튀니지의 실업률은 12%가량인데, 대졸자는 40%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정부는 긴축 재정을 약속했다. 수십 년 동안 사회안전망 역할을 해온 공무원 채용을 제한했다. 조기 퇴직과 임금 동결도 뒤따랐다. 세금 인상은 물가 폭등으로 이어졌고,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주머니가 비게 됐다.
  
 2011년 이후 급증한 대외 부채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71%로 뛰어올랐다. 상환 유예기간도 끝나 올해 국가 예산의 22%를 부채 상환에 써야 한다. 이 와중에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가 빈발하면서 외국인 투자와 관광 수입이 줄어들었다.  

 
튀니지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가 숨진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튀니지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가 숨진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거리에는 7년 전 구호가 등장했다. “일자리와 말할 자유, 존엄을 달라”는 당시의 외침이 그대로 터져나왔다. 정치적 자유는 개선됐지만 일자리 부족과 빈곤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위가 ‘제2의 아랍의 봄' 조짐을 보이자 베지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은 부랴부랴 매달 빈곤층 가구에 지급하는 지원금을 150디나르(튀니지 화폐)에서 180~210디나르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국민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저소득층에 집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민심은 싸늘했고, 시위대는 또다시 거리로 나왔다. 거리로 나선 이삼(30)은 “독재를 하긴 했지만 경제만 놓고 보면 벤 알리 시절이 좋았다”고 푸념했다. 교수인 포우드 엘라르비(48)는 빈 바구니를 막대에 끼워 든 채로 “가난한 이들이 가장 고통을 겪고 있고 정부 재원은 바구니처럼 비었다"며 “1984년 빵값 때문에 저항했고 2011년 독재자를 내쫓았는데, 이제는 바구니 혁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튀니지에 이어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끌어냈던 아랍 최대 국가 이집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IMF와 합의한 변동환율제를 이행하면서 2016년 중반까지 10% 전후였던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30%를 넘어 30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혼란기에 쿠데타로 집권한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은 국방장관 출신으로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반정부 인사를 체포, 고문할 뿐 아니라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인권 상황이 혁명 전보다 나빠졌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11월 300명 이상이 숨진 테러가 발생하는 등 관광업도 흔들렸다. 이집트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나마 이들 나라는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리비아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붕괴한 이후 다양한 무장세력이 경쟁하면서 정국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5일에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인근 미키가 국제공항에서 민병대와 반군의 무력 충돌로 최소 16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쳤다.
 
테러 공격이 끊이지 않는 리비아.[연합뉴스]

테러 공격이 끊이지 않는 리비아.[연합뉴스]

 예멘은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쫓겨난 이후 정권 이양 과정에서 내전에 휩싸였다. 2012년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선출돼 평화적 정권 이양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2014년 9월 연료비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연합군이 참전해 종파 간 내전으로 번진 이후 민간인 사망자 추정 규모만 1만명을 넘어섰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대리전 양상으로 흐르면서 폭격과 공습은 끊이지 않는다.  
 
 시리아에선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강압 통치에 반군들이 들고 일어나 6년간 내전이 벌어졌다. 시리아 북부를 점령하고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한 IS는 중동과 유럽에서 무차별 테러를 저질렀다. 시리아 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지난해말까지 어린이 1만9000명 등 민간인 10만 여명을 포함해 최소 34만3500여 명이 숨졌다. 탈출한 난민들이 유럽행에 나서면서 아랍의 봄은 유럽의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거점인 동부 구타지역의 메스라바를 공습해 25명 이상이 숨졌다. 사진은 한 아기가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거점인 동부 구타지역의 메스라바를 공습해 25명 이상이 숨졌다. 사진은 한 아기가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아랍에 훈풍이 지속되지 않은 것은 민주화를 추구했지만 독재 정권의 빈자리를 채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떠나고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독재자들이 장기 집권을 해온 터라 새 질서가 뿌리내릴 기반이 약했다.
 
 일각에선 아랍의 봄의 결과를 단언하는 것은 이르다고 주장한다. 미국 애틀란틱 카운슬 소속 헬리어 박사는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눈에 보이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며 "혁명이 실패했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유럽 민주화에 200년, 아시아에 50년 가까운 기간이 걸린 만큼 벌써 아랍의 봄의 성패를 논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아랍의 봄'이 촉발됐던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실업가 고물가 등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7년 만에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랍의 봄'이 촉발됐던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실업가 고물가 등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7년 만에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동 정세에 변화의 신호도 나타나고 있다. 시리아에선 IS가 격퇴됐고, 이집트의 정세는 안정을 되찾고 있다. 튀니지의 시위 역시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해진 시대에 정부를 질타하는 '아랍 시민'의 행동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랍의 봄은 어쩌면 느리긴 해도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건지 모른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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