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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번 두드리면 칡뿌리도 붓 되죠” 40년 붓쟁이가 그은 인생의 한 획

지난 14일 충북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의 한 붓공방. 9.9㎡(3평) 남짓의 방 안에 들어서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붓이 벽에 걸려있었다. 황토 옷을 입은 붓대 뭉치가 화로 앞에 놓여있고, 작업에 쓰인 밀랍 덩어리와 밀판도 보였다. 방 한편에선 ‘붓쟁이’ 유필무(58)씨가 붓털을 한 움큼 쥐고 빗질을 하고 있었다. 뻣뻣한 털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그래야 붓털이 부드럽고 획이 올곧게 나온다고 한다.
 

충북무형문화재 유필무 필장
등나무·칡 등 식물 섬유질 붓 제작
“흔한 재료도 정성 더하면 귀해져”
값싼 중국산 붓에 판매량 줄었지만
옛 방식의 붓 제조가 살길이라 생각

유씨는 “털이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면 불필요한 것들이 계속 남아 썼을 때 획이 고르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업을 붓털(초가리)을 고르는 ‘물끝보기’라고 소개했다. 털끝을 물에 적셔서 빗질하고 대나무 칼로 한올 한올 털을 선별한다. 붓이 완성되는 50여 가지 공정 중의 하나다.
 
충북 증평군 도안면의 붓공방에서 유필무 필장이 어린 말꼬리 털로 만든 목탁붓과 칡줄기를 수천번 두드려 만든 칡붓을 소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증평군 도안면의 붓공방에서 유필무 필장이 어린 말꼬리 털로 만든 목탁붓과 칡줄기를 수천번 두드려 만든 칡붓을 소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유씨는 최근 충북무형문화재 필장(筆匠)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필장은 붓을 만드는 장인이다. 초가리라 불리는 붓털부터 붓대와 각통, 붓뚜껑, 붓꼭지까지 유씨의 손끝에서 작업이 이뤄진다. 붓대에는 전통문양과 글을 새기고 옻칠도 세 번 한다. 충북도 문화재위원회는 “유씨가 전통 붓 제작 방법을 전승하고 또 계승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유씨가 붓과 인연을 맺은 건 41년 전이다. 열여섯 살이던 1976년 서울의 ‘예문당’에서 운영했던 붓공방에서 처음 붓 만드는 법을 배웠다. 88년 충북 음성에 셋방을 얻고 나서는 혼자서 붓제작 기법을 연구하고 구전해온 옛 방식을 복원했다.
 
그는 “값싼 중국산 붓이 밀려오면서 판매량이 급감했지만 이왕 붓 매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면 옛 방식의 붓을 만드는 것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씨가 지금까지 만든 붓 종류는 100가지가 넘는다. 양털이나 족제비 꼬리, 노루 앞가슴 털 등 다양하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서예용 붓은 대개 양의 털로 만든 모필(毛筆) 등 동물의 털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유씨가 붓 장인으로 세상에 알려진 건 그가 만든 갈필(葛筆·칡붓) 덕분이다. 칡 뿌리와 줄기를 5000~1만번까지 곱게 쳐서 붓털로 만든 것을 하나의 붓으로 만드는 데 3개월이 걸린다. 이 외에도 등나무·억새·질경이·볏짚·띠풀 등 다양한 식물 섬유질을 활용해 붓을 만들었다.
 
그는 ‘나만의 붓을 만들자’고 생각한 뒤 시행착오를 거쳐 96년 갈필을 완성했다.
 
칡 붓을 만드는 데는 3~5년생 칡 줄기를 사용한다. 칡에는 녹말과 기름이 뒤섞여 있다. 이 성분을 뽑아내기 위해 소금물에 찌고 건조하기를 9번씩 반복한다. 반쯤 말린 칡 줄기를 망치로 달래듯 5000번 이상 두드린다. 3개월 동안 이 작업을 마치면 칡 줄기가 잔털처럼 연해진다고 한다.
 
유씨는 “붓을 매면서 흔한 재료라도 많은 손길과 노력이 더해지면 더 귀한 존재가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증평군은 유씨가 사는 도안면 화성리에 선비와 전통 붓을 주제로 한 붓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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