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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과거 청산, 개헌, 비트코인: 혁명의 세 얼굴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저우언라이는 평생을 중국 사회주의 혁명에 헌신했고, 사후에도 중국인들의 큰 존경을 받았던 중국 현대 혁명의 2인자였다. 잔잔한 미소 뒤에 강렬한 역사의식과 혁명가로서의 냉혹함을 겸비했던 저우가 한 번은 혁명이 얼마나 어려운 과업인가를 밝힌 적이 있다. “프랑스대혁명(1789)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외국 기자의 질문에 대한 저우의 답변은 “그걸 평가하기에는 너무 이르다”였다. 중국 지도자들 특유의 유장한 역사관을 드러낸 발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70 평생을 혁명 현장에 몸 바쳤던 저우에게도 혁명이란 역시 지난한 과제였다는 고백이었다.
 

향후 개헌과 정치개혁을 위해
기득권 세력인 여야 정당과
국회를 개혁으로 이끌어내고
디지털 혁명 연착륙을 위해
공룡화된 정부 조직도 혁신해야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차에 접어든 요즘, 2016년부터 타오르던 촛불혁명은 한편에서는 여전히 밝게 빛나지만 다른 한편에선 적지 않게 흔들리고 있다. 모든 혁명적 변화의 제1장에 해당하는 과거 청산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시절의 부패와 권력 오·남용은 줄줄이 사법적 단죄를 받고 있고, 과거 청산 작업은 큰 저항 없이 순항 중이다.
 
문제는 새 질서의 창출이다. 최근 개헌 논의를 둘러싼 모호한 불협화음, 비트코인 열풍 앞에서 드러난 정부의 혼란상은 혁명적 기운을 새로운 질서로 안착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먼저 개헌부터 살펴보자. 얼마 전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개헌에 두 가지를 모호하게 남겨두었다. 첫째는 정부 권력구조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를 남겨두고 기본권과 지방분권에 초점을 맞춘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1987년 이후 30년간 진행된 방대한 사회적 변화를 생각해 보면, 헌법 기본권 조항이 업데이트돼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물론 기본권의 각론으로 들어가면 보수-진보의 대립은 첨예할 것이다). 하지만 2016년 촛불집회의 근본 요구가 “정부는 응답하라! 대통령은 시민들에게 응답하라!”였다는 점을 돌아본다면, 권력구조의 개편 없이 과연 응답하는 정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권력구조 개편 없는 개헌 논의가 과연 시민들에게 절박한 과제로 다가갈 수 있을까?
 
장훈칼럼

장훈칼럼

둘째로 지난겨울 수백만의 촛불시민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칠 때, 그 함성은 곧 ‘낡디낡은 정당과 무기력한 국회’ 역시 청산해야 할 과거임을 지목한 셈이다. 달리 말해 정당과 국회를 시민들의 의사에 잘 반응하도록 디자인하는 개헌과 정치개혁은 촛불혁명의 또 다른 주문이었다. 구체적으로 의원들에게 언제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국회의원 소환제, 정당과 국회를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후보경선제의 법제화, 시민 입법청원의 실질화 등은 촛불시민들의 개혁 요구에 응답하는 핵심 의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절실한 과제들이 여전히 여야 정당들의 ‘개혁 의지(?)’에만 맡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비트코인이라는 디지털 기술 혁명의 충격파에 대해 정부가 보여준 대응은 그저 총체적 혼란과 무질서에 가까웠다. 수백만 명의 젊은 네트워크 시민이 암호화폐 투자에 몰두하고 있을 때 정부가 한 일이라곤 수수방관이었다. 암호화폐 기반을 이루는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데이터 플랫폼이 어떤 창조적 파괴를 가져올지(혹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재정부 등의 규제 권력에 어떤 태풍을 몰고 오게 될지를) 숨죽여 지켜보면서 정부 부처들은 침묵했다.
 
정부가 팔짱을 끼고 있는 동안 네트워크 시민들(네트워크에서 접속하고, 공유하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촛불담론과 촛불집회를 이끌었던 바로 그 시민들)은 암호화폐 투자를 거대한 눈사람처럼 키워놓았다. 그리고 며칠 전 법무부 장관이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검토라는 무지막지한 카드를 내놓으면서 암호화폐 위에 쌓아올린 눈사람은 급격히 녹아내리고 있다(지금의 비트코인 열풍이 가라앉더라도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충격파는 다양한 양상으로 계속 다가올 것이다). 한때 우리 산업화를 견인하던 유능하고 헌신적인 조직이었던 정부가 오늘날 디지털 공유경제라는 혁명적 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은 오래전 사라진 선사시대 공룡을 떠올리게 한다. 거대한 덩치로 한 시대를 풍미했었지만 여러 변화 속에서 공룡들은 속수무책으로 사라져 갔다.
 
과거 청산을 통해 촛불혁명의 제1장을 열어 온 문 대통령의 과제는 무겁다. 시민들에게 응답하는 개헌과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기득권으로 똘똘 뭉친 여야 정당과 국회를 개혁의 길로 이끌어야만 한다. 또 디지털 공유경제의 혁명적 변화를 우리 경제에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는 공룡화된 정부 조직부터 혁신해야만 한다. 결국 혁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긴 시간을 요한다던 저우언라이가 옳았던 것인가?
 
장 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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