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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외환관리가 부른 '김프'의 역설

 “가상화폐 거래가 투기, 도박과 비슷한 양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어떤 상품 거래의 급등락과 비교했을 때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김치 프리미엄’이 언론에 등장하는 것도 한국 거래가 비정상적이라는 해외의 평가가 내려진 것이다.”(박상기 법무부 장관, 1월 11일)
 

규제에도 사라지지 않는 '김치 프리미엄' 왜?

“가상화폐 거래가 세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규제한다고 해서 세계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 30~40%까지 형성될 만큼 국내 가상화폐 거래가 비정상적으로 과열되고 있다.”(최종구 금융위원장, 1월 11일)
 
지금의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 시장을 바라보는 정부 당국의 인식이다. 당국도 암호화폐 시장이 글로벌 차원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국내 규제를 통해서 시장 전체를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안다. 목표는 최소한 과열의 증거인 ‘김치 프리미엄(김프)’의 제거다. 김프는 국내 암호화폐 가격이 글로벌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을 말한다.
 
[사진=중앙DB]

[사진=중앙DB]

16일 오전 1시 현재 코인마켓캡 기준으로 24시간 거래량이 42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거래소 업비트의 비트코인 가격은 약 1950만원이다. 코인마켓캡이 평균한 글로벌 시세는 1만4256달러(약 1520만원)다. 글로벌 시세보다 국내 가격이 430만원(약 28%) 더 비싸게 거래된다.
 
도대체 정부가 김프를 잡곘다고 연일 규제책을 내놓는데도 김프는 왜 사라지지 않을까.
 
◇작년 12월에는 평소에도 50% ‘김프’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김프는 10% 안팎에 불과했다. 글로벌 평균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 시장이 과열되면 김프가 30~40%까지 끼었다.  
 
예를 들어, 작년 5월 22일 비트코인 가격은 약 270만원이었다가 25일 490만원까지 뛰었다(국내 거래소 코인원 기준). 같은 기간 글로벌 시세는 2150달러(약 229만원)에서 2535달러(266만원)까지 올랐다. 국내 단기 투기 수요가 몰리면서, 김프가 18%에서 84%로 불어났다. 김프가 이렇게 부풀어 오르면 터지기 마련이다. 25일 490만원까지 급등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이후 폭락을 시작, 이틀 뒤엔 27일엔 249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김프가 커진다는 걸 조정 신호로 봤다. 김프가 부풀어 올랐다가 빠지기 시작하면 ‘패닉셀(panic sell)’이 나오면서 국내 시세가 해외보다 더 싼 ‘역(逆)프리미엄(역프)’ 현상까지 벌어졌다. 장이 다시 정상화되면 김프는 10% 안팎에서 유지됐다.
 
김프가 평상시에도 30% 수준으로 부풀어 오른 건,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규제책을 내놓으면서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말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 모집, 이른바 ICO(Initial Coin Offering)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공매도 및 가진 돈의 몇 배의 투자 효과를 볼 수 있는 마진거래 또한 금지했다.
 
때마침 글로벌 비트코인 가격은 9월 초 중국의 ICO 전면 금지 및 거래소 폐쇄라는 악재로 3000달러 선을 위협받다가 4000달러 선을 회복 상승 추세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정부 발표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관심없던 이들까지 시장으로 유입됐다.
*16일 오전 9시 45분 현재 '김치 프리미엄'. 출처: luka7.net

*16일 오전 9시 45분 현재 '김치 프리미엄'. 출처: luka7.net

 
여기에 카카오톡 플랫폼 기반의 업비트가 작년 10월부터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가입자라면 클릭 몇 번이면 가입이 가능하다. 카카오톡 단톡방을 통해 “누구는 비트코인 투자로 얼마를 벌었다더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나도 한 번 투자해 볼까’하는 ‘코린이(코인 어린이)’들이 시장에 신규 유입됐다.
 
절정은 지난해 12월이다. 정부가 그달 13일과 28일 규제책을 발표하고, 그 사이에도 언론이 암호화폐 기사를 쏟아내면서 암호화폐는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정부 의도와는 달리 정부 정책 발표로 되레 광고 효과가 난 셈이다.
 
물론, 대책 발표 직후에는 김프가 20% 이내로 줄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40~50%로 올라왔다. 특히 지난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 폐쇄 발언을 내놨을 때는 매물이 쏟아지면서 역프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역프 현상은 다른 거래소보다는 업비트에서 자주 목격된다. 코린이들이 시장이 오를 때는 너도 나도 매수해 김프보다 더한 ‘업프(업비트 프리미엄, 업비트 가격이 국내 다른 거래소 가격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가 생긴다. 반대로 시장이 떨어질 때는 너도 나도 매도해 역프가 가장 먼저 나타난다. 일부 투자자들은 “업비트의 비트코인 가격이 빗썸보다 싸면 그때가 매수 적기”라고까지 말한다.
 
정부의 강공책이 어쨌든 50%에 육박하던 김프는 30% 안팎으로 떨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격은 대책 발표 때마다 요동쳤다. 거래소 폐쇄 발언이 나왔던 지난 11일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최고 2189만원, 최저 1410만원에 거래됐다. 최고 가격에서 36%나 빠졌다. 이날 글로벌 최고 가격은 1만4942달러, 최저는 1만2837달러다(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데스크 기준). 최고점 대비 14% 빠지는데 그쳤다. 국내가 글로벌보다 가격 변동 차이가 22%포인트나 더 벌어진 건, 김프가 얼마나 더 끼고 덜 끼냐의 차이 때문이다.
 
◇"김프 없애려면 규제 아니라 시장으로 풀어야"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기본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듯이, 암호화폐의 가격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거래소 안에서의 매수-매도 호가의 균형을 통해 형성된다.
 
때문에 김프의 일차적인 원인은 비트코인을 사려는 사람이 팔려는 사람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대박 신화를 노리고 다들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든다. 과도한 투자 열기 때문에 업비트ㆍ빗썸 등이 글로벌 10대 거래소에 이름을 올리고, 전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선인데 암호화폐 원화 거래량은 10%를 웃돈다.
 
수요가 많아도 공급이 받쳐주면 가격은 정상 수준을 찾는다. 문제는 국내에는 마땅한 비트코인 공급처가 없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은 채굴(마이닝)에 대한 보상으로 생성된다. 채굴업자의 대부분은 중국계다. 중국이 지난해 10월 거래소를 폐쇄하기 전까지 중국은 암호화폐 투자 열기가 가장 뜨거운 나라였다. 한때 비트코인 거래의 90% 이상이 위안화로 이뤄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비트코인 시세가 글로벌보다 20% 안팎 비싼데 그친 것은 채굴업자들이 중국 내 비트코인을 공급해 줬기 때문이었다.
 
채굴을 통한 공급이 안 된다면, 남은 한 가지 공급책은 해외에서 들여오는 방법이다. 흔히 말하는 재정거래(arbitrage)다. 이론은 간단하다.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들여와 국내 거래소에서 팔면 김프만큼의 무위험 차익을 올릴 수 있다.  
 
현실은 그러나 간단치 않다. 일단,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기가 쉽지 않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거나 유학 경험 등이 없는 이상, 일반인들이 해외 은행 계좌를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해외 은행 계좌가 있더라도 1년에 송금할 수 있는 한도는 5만 달러다. 비트코인 3개 사면 끝이다. 5만 달러를 초과해 송금하려면 금융 당국에 구체적인 송금 목적을 서류로 입증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내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이 국내 은행 계좌를 개설하기 어렵다. 계좌가 있어 재정거래를 통해 비트코인을 현금화하더라도, 그 차익을 다시 해외로 가지고 나가기가 까다롭다.
 
일부 해외 거래소는 신용카드로도 비트코인 등을 살 수 있다. 해외에서도 비교적 구매가 쉬운 탓인지, 이들 거래소는 일반적으로 다른 거래소보다 비트코인 등 가격이 비싼 편이다. 또 신용카드로 결제할 경우 비자ㆍ마스터 등의 브랜드 수수료에 더해 국내 카드사 수수료까지 내야 한다. 하루 구입 가능 금액도 30만원 정도로 제한돼 있다.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데다 비트코인을 전송하는 동안의 가격 변동 리스크까지 감안해야 한다. 약 10%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작년 초반 형성됐던 10% 안팎의 김프는 재정거래로도 극복이 어려운, 당연한 시장 가격이었다.
 
사태가 심각해진 건 정부가 암호화폐 시장 규제에 나서면서 재정거래를 더 틀어막으면서 생겨났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은행권에 암호화폐 투자를 위한 해외 송금은 제한하도록 지시했다. 송금 목적으로 다른 사유를 대면 가능하겠지만 개인들 입장에서는 기존보다 재정거래 하기가 번거로워졌다. 또 올 들어부터 해외에서 신용카드로 600달러 이상의 물품을 구입하거나 현금을 인출하면 실시간으로 세관에 통보된다.
 
지난달부터는 외국인의 국내 거래소 이용을 전면 금지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소위 ‘보따리상’들이 해외에서 비트코인을 들여와 국내 거래소에 풀었다. 그러나 이런 공급 통로가 막히면서 김프는 더 부풀어 올랐다.
 
정부의 강경책에도 김프가 30%선은 유지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이 외환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외화의 유출입 통로를 강하게 틀어막아 갈라파고스식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형성됐다.
 
외부 입출금 없이 거래소 자체만으로 암호화폐 가격이 형성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국내 거래소인 코인원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골드 가격을 보면 된다. 16일 오전 9시 20분 현재 빗썸에서는 32만원선에 거래된 반면, 코인원에서는 65만원을 기록했다. 같은 재화인데도 두 배를 웃도는 가격차다. 비트코인골드는 지난해 10월 비트코인에서 하드포크된 암호화폐다. 아직 네트워크가 불안정해 외부 입출금이 자유롭지 못하다. 코인원은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하드포크 당시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던 이용자들에게 비트코인골드를 지급했다. 외부 입금도 출금도 안 되는 상황이라 코인원 자체의 매수-매도 균형에 따라 가격이 형성된다. 밖에서 얼마에 거래되건 관계없다. 빗썸은 출금은 안 돼도 외부 입금은 되기 때문에 글로벌 시세와 차이가 나면 재정거래 수요가 유입돼 가격 수준을 맞춘다.
 
전문가들 가운데선 그래서, 아예 비트코인 재정거래를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부가 글로벌 시세야 어쩔 수 없지만 김프는 빼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면 재정거래를 막을 게 아니라 풀어야 한다는 논리다. 시장의 문제는 규제가 아니라 시장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김프가 10% 이상 벌어지면 비트코인 재정거래 목적의 송금을 자유화하고 김프가 10% 안쪽으로 들어오면 다시 막는 식의 정책이 김프를 빼는 데는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재정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법인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의 재정거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재정거래를 통해 올린 수익에 대해서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해 김프로 올리는 수익을 국고로 상당부분 환수하면 국가 차원에서도 이익이라는 논리다. 업비트 관계자는 “재정거래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려는 이들이 회사(업비트)에 문의하기도 했지만 정부의 규제 강화 방침이 나오면서 모두 없던 일이 됐다”고 말했다.
 
한 암호화폐 전문가는 “김프를 잡으려면 더 누르는 게 아니라 재정거래라는 숨통을 트여 바람을 빼 줘야 한다”며 “외환위기 트라우마에 잡혀 있기보다는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에 이른 지금이 재정거래에 대해 유연하게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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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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