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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선배 사랑합니다”란 말, 과연 진심일까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나 좋다는 남자들보다 나 좋다는 여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해가 바뀌고 나이가 들며 생긴 뚜렷한 변화 중 하나다. 솔직히 좀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분명한 건 내가 일부러 의도한 바는 아니란 거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몇 가지 짚이는 구석이 있긴 하다.
 

자매애 확산되는데 일터에선 ‘여자의 적은 여자’?
후배들 ‘건강의 적’ 되지 말자는 새해 다짐 하시길

일단 호르몬의 변화 탓인지 갈수록 ‘쎈 언니’가 돼 가는 내 모습을 반기는 게 아닌가 싶다. 한 발짝 앞서 나가는 여자 선배가 ‘공주’보단 ‘전사’인 편이 그네들에게 여러모로 유익할 테니 말이다. 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장벽과 천장이 있다면 미리미리 깨뜨려 주길 바라는 거다. 그러다 장렬하게 전사한다 한들 혹시 작은 실금이라도 내준다면 고마운 일 아니겠나.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한 ‘미 투(#Me Too) 운동’ 역시 영향을 미쳤음 직하다. 나만 당한 게 아니라는 깨달음에 바야흐로 동병상련의 연대감이 밀물처럼 확산되는 분위기다. 너나없이 자매애로 대동단결하며 “여자의 적(敵)은 여자”라는 오랜 통념조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피차 성희롱을 염려할 필요 없는 여자 선후배들과의 스킨십이 요사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유력한 가설은 그동안 받은 달콤한 문자와 하트 뿅뿅 들어간 이모티콘이 모두 사탕발림에 불과하다는 거다. 인사와 고과의 권한을 쥔, 그래서 대놓고 무시했다간 후환이 걱정되는 선배이다 보니 ‘사회생활 잘하는 꿀팁’대로 영혼 없이 예의를 차렸을 뿐이란 얘기다. 숫기 부족한 남자 후배들로선 차마 하기 힘든 낯 간지러운 애정 표현을 엽렵한 여자 후배들은 눈 질끈 감고 해치웠을 가능성이 크다.
 
때마침 이런 짐작에 힘을 실어주는 충격적인 기사를 접하게 됐다. 직장에서 여자 상사와 일하는 여직원들의 고충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기사에 인용된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상사가 남자일 때보다 여자일 때 여성 근로자의 스트레스는 더 늘고 승진 확률은 더 떨어진단다. 이른바 ‘여왕벌 신드롬’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남성이 다수인 조직에서 힘겹게 성공한 여성 리더들은 흡사 여왕벌처럼 자신의 권력을 움켜쥐고 다른 여성과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다. 나 역시 여자 후배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적이 분명 한두 번쯤 있었던 듯해서다. 그게 여왕벌 같은 권력 독점욕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시집살이도 당해본 사람이 시킨다고 ‘나도 힘들지만 이만큼 해왔는데 너도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심리가 부지불식간에 작용했을 터다. 깐깐한 내 눈높이에 맞추느라 마음고생 했을 후배들에게 이제라도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문득 남자 후배들이라고 여자 선배와 일하는 게 마냥 쉬울 리 없을 거란 생각도 든다. 배려와 소통을 내세운 여성적 리더십이 각광받는 추세라지만 장점이 있다면 의당 단점도 있지 않겠나. 다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여자 말 알아듣는 걸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하는 게 남자들인데 집에선 물론 회사에서까지 감 못 잡고 머리를 쥐어뜯을 모습을 떠올리니 짠한 심정마저 든다.
 
무릇 직장인들에겐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가 건강의 최대 적이라고 한다. 개코원숭이들의 생태를 수십 년 간 살펴온 로버트 새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의 연구 결과, 서열이 낮은 원숭이들은 높은 놈들에게 언제 얻어맞을지 모른다는 스트레스 탓에 다들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단다. 마찬가지로 상사의 눈치를 끊임없이 살펴야 하는 직장인들 역시 체내에서 면역을 떨어뜨리는 호르몬이 분비돼 각종 질병에 취약해진다는 거다.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는 새해 덕담을 나누는 요즘, 우선 나부터 후배들 아프지 않게 하겠다는 결심을 다져본다. 그래서 알량한 권한이 죄다 사라진 퇴직 이후에도 후배들이 기꺼이 놀아주고 싶은 선배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어본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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