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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는 말한다, 손열음의 음악을

지난달 28일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작은 공연을 했다. 관객은 350명. 객석과 같은 높이에 피아노를 놓고 신청곡을 받아 연주한 송년 음악회였다. 이날 손열음은 까만 벨벳으로 된 민소매 상의에 까만 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허리 부분부터는 빨간 프릴이 달린 상의는 디자이너 서정기가 이 날 공연을 위해 만든 것이다. 손열음은 2004년부터 서정기의 드레스를 입었다. 서정기는 “손열음의 연주 스타일은 무르익었다고 본다. 그 스타일에 맞춰 드레스를 만든다”고 했다. 연주자와 디자이너는 이렇게 영감을 주고받는다. 연주할 작품을 듣고, 연주자의 변화를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거기에 맞는 드레스를 만들어낸다. 오래된 연주자-디자이너 커플 세 쌍이 영감을 주고받은 방식에 대해 들었다.
 

무대 의상도 또 하나의 악기
음악가·디자이너 속속 손잡아
곡에 따라 디자인도 달라져
손열음·서정기 14년 함께해

대담하고 물 오른 연주에 맞춘 디자인
 
20세기 음악을 연주할 때 입었던 시퀸 드레스. 디자이너 서정기가 음악에 맞게 제작한 드레스다.

20세기 음악을 연주할 때 입었던 시퀸 드레스. 디자이너 서정기가 음악에 맞게 제작한 드레스다.

2016년 2월 손열음이 20세기 초반의 음악을 연주할 때 서정기는 반짝이는 까만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클래식 음악과 재즈가 본격적으로 섞여들었던 이 시대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었다.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 ‘라 발스’ 등을 연주했던 손열음은 “복고적이면서 현대적이라는 어려운 키워드를 드렸는데 음악의 내용과 딱 맞는 드레스가 나왔다”고 했다. 서정기는 “연주라고 꼭 드레스를 입을 필요는 없다. 특히 손열음은 대담하고 자유롭게 연주하기 때문에 캐주얼한 옷도 좋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할 때 입었던 한복 변형 드레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할 때 입었던 한복 변형 드레스

2016년 손열음이 유럽에서 KBS교향악단과 모차르트 협주곡 21번을 연주할 때 서정기는 한복을 변형시킨 디자인을 선보였다. 서정기는 “모델들이 옷의 가장 빛나는 면을 드러내주길 바라는데, 손열음이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는 손열음에게 비용을 받지 않고 드레스를 준다. 2004년엔 손열음이 찾아와 돈을 주고 샀다. 하지만 몇 년 후 그 드레스를 닳도록 입어 수선하러 온 것을 본 후로 무상으로 후원하고 있다. 서정기는 “드레스 디자인은 연주자가 옷에 대해 신경 쓰지 않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했다.
 
어른스러운 연주 듣고 바이올렛 떠올라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 무반주로 바흐를 연주할 때 디자이너 정윤민은 단순한 흰색 상의를 디자인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 무반주로 바흐를 연주할 때 디자이너 정윤민은 단순한 흰색 상의를 디자인했다.

디자이너 정윤민은 “연주자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면 드레스 디자인을 시작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처음 만난 건 2016년이다.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연주를 일주일 앞두고 찾아왔다. “음악을 방해하지 않는 옷을 원한다”는 얘기에 정윤민은 바흐의 정돈된 음악을 망가뜨리지 않는 흰색 상의를 일주일 만에 내놨다. 그는 “연주자와 청중이 음악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도 무대 의상의 역할 중 하나”라고 했다.
 
정윤민은 김수연의 음반과 동영상을 수도 없이 봤다. “음반과 유튜브를 통해 다 들어본 후 떠오른 빛이 바이올렛이었다”고 했다. 김수연은 지난해 11월 뮌헨에서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와 글라주노프 협주곡을 연주할 때 정윤민의 바이올렛 드레스를 입었다. 김수연은 “연주자의 취향 뿐 아니라 성격까지 파악해 디자인에 반영한 드레스”라고 했다.
 
중요한 유럽 데뷔 무대를 위해서는 바이올렛 빛깔의 드레스를 제작했다. 사진 왼쪽이 김수연.

중요한 유럽 데뷔 무대를 위해서는 바이올렛 빛깔의 드레스를 제작했다. 사진 왼쪽이 김수연.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검은색의 단순한 드레스를 입었다. 정윤민은 “김수연의 베토벤은 진지하고 성숙했다. 또 다른 악기와의 조화를 고려하며 튀지 않는 연주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무늬가 없는 검은 드레스를 제작해줬고 김수연은 경기필하모닉과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할 때 이 옷을 입었다.
 
정윤민은 “연주자의 체형 뿐 아니라 연주할 때의 자세와 습관까지 고려해 디자인한다”고 했다. 미리 만나 연주를 들으며 자세를 체크한다. “특히 바이올리니스트는 발로 무대를 차는 버릇이 있으면 너무 긴 치마를 피한다.”
 
오페라 인물 성격 파악하고 동선도 고려
 
소프라노 임선혜가 오페라 ‘코지 판 투테’의 콘서트 오페라 공연에서 입었던 빨간 상의.

소프라노 임선혜가 오페라 ‘코지 판 투테’의 콘서트 오페라 공연에서 입었던 빨간 상의.

말러 교향곡 4번의 4악장에 등장하는 소프라노는 천국의 넘치는 기쁨과 평화를 노래한다. 소프라노 임선혜가 유럽에서 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을 듣고 디자이너 이경임은 이 음악을 수도 없이 들었다. 거의 모든 소프라노의 버전으로 동영상도 찾아봤다. “천상의 느낌을 구체화 할 수 있었고 구름과 같은 흰색에 디테일이 들어간 드레스를 제작했다.”
 
임선혜와 이경임은 2008년부터 함께 작업했다. 임선혜가 국제 무대에서 자주 공연하면서 이경임의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도 늘어났다. 이제는 오페라 속 인물에 대해 빨리 파악하고 연출에 따른 움직임도 예상한다. 지난해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 공연에 임선혜가 참여했을 때도 그랬다. 영리하고 재치있는 하녀 데스피나 역을 맡은 임선혜를 위해 이경임은 빨간 레이스의 상의를 디자인했다.
 
지난해 수원 국제음악제에서 한국 가곡을 부를 때 입었던 드레스. 디자이너 이경임의 옷이다.

지난해 수원 국제음악제에서 한국 가곡을 부를 때 입었던 드레스. 디자이너 이경임의 옷이다.

원래는 앞치마를 변형한 드레스를 제작하려 했다. 하지만 지휘자 르네 야콥스는 임선혜가 연습 때 입고 온 청바지를 무대에서 입을 것을 제안했다. 디자이너는 급하게 계획을 수정했고 젊고 기민한 하녀의 톡 쏘는 매력을 담은 빨간 레이스를 떠올렸다. 임선혜는 이 옷을 청바지와 함께 입고 무대에 올랐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 속 현명한 여성 아디나의 결혼식 장면을 위해서는 짧은 길이의 단순한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임선혜는 “무대 위에서 움직임이 많은 아디나 역할에 딱 맞는 드레스였다”며 “작곡가, 작품 배경, 컨셉을 간단히 설명하면 음악과 맞아 떨어지는 의상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이경임은 “원래는 웨딩드레스로 경력을 시작했는데 이제 성악가의 드레스 제작이 주업이 됐다”며 “클래식 음악은 잘 몰랐는데 지금은 내게 가장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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