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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 vs 제도 충돌의 시대 … ‘선허용 후규제’로 전환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에 없던 신기술과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며 기존 제도·규제와 충돌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정보기술(IT) 산업의 속도를 관련 제도·규제가 따라가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법규·제도 , IT 발전속도 못 따라가
업계선 “규제에 대한 원칙 없어”
혁신 수용 정도에 사회적 합의 필요
부작용 명확할 땐 제동 필요 의견도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슈는 암호화폐다.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가 투기·도박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된다고 판단하고 전방위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암호화폐를 가능하게 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기술이라는 점에서 IT업계의 반발이 만만찮다. 어설픈 규제로 한국이 블록체인 기술 발전 및 플랫폼의 주도권을 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우려다.
 
신기술과 제도가 충돌하고 있는 주요 분야

신기술과 제도가 충돌하고 있는 주요 분야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 업계에서는 ‘카풀’로 불리는 라이드셰어링(승차공유)을 둘러싼 규제 논란이 한창이다. 승차공유 기업 ‘풀러스’는 운전자가 하루 24시간 중 출·퇴근 시간 각각 4시간씩 하루 8시간을 자유롭게 골라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주 5일 카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 ‘출퇴근 시간 선택제’를 선보였다. 서울시는 이를 ‘자가용 불법 유상운송 알선’이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문제는 ‘출퇴근 시간’에 대한 시간대, 그리고 요일·횟수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풀러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81조에서 허용한 출퇴근 카풀 범위에 해당하는 서비스”라고 반박했다.
 
포털 등 인터넷 업계에서는 이른바 ‘ICT 뉴노멀법’(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 법안은 네이버·카카오 같은 대형 인터넷 포털에 대해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부과하는 등 통신사에 준하는 수준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터넷 환경이 변하고 이들의 시장 지배력이 커진 만큼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인터넷 기업들은 이 법이 새로운 플랫폼의 출현과 산업 혁신을 막고, 해외 사업자에게는 실효성이 떨어져 ‘역차별’을 일으킨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신기술과 제도의 갈등은 드론·자율주행차·숙박공유서비스·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다른 분야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장)는 “산업 영역을 파괴하는 신기술은 계속 쏟아지고, 기존 산업의 테두리 안에서 작동하던 제도·규제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IT 기술은 기존 제도와 갈등하고 타협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최종적으로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새롭게 등장한 서비스와 콘텐츠에 규제만 가한다면, 이는 기술 발전 기회를 잃고 상용화를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런 규제 문제를 단순히 ‘혁신의 거부’로 해석하는 것도 단편적인 접근이라는 시각도 있다. 부작용이 명확한 상황에서 섣부른 규제 완화는 되레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암호화폐가 그렇다. 10대 중·고생은 물론 20~30대 청년층, 직장인, 가정주부, 군인까지 거래에 뛰어들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거품이 꺼지면 개인 파산과 가계 빚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암호화폐 투자가 비이성적인 투기 양상으로 전개되는 만큼 정부 개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IT업계에서는 규제 방안에 대한 정부의 원칙과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경우 큰 파장을 미칠 사안에 대해 법무부가 불쑥 방침을 내놓고 청와대가 금방 이를 뒤집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막대한 금전 손실을 보며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오락가락 대책으로 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졌고, 정부 정책도 집단 반발하면 바뀔 수 있다는 나쁜 선례까지 남겼다는 것이 IT업계의 평가다.
 
정부에서는 기술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를 없애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내놓았지만, 일선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 효과는 크지 않다. 국내 심야버스 공유서비스인 ‘콜버스’, 부동산 중개 법률자문서비스 ‘트러스트 부동산’ 등이 이해 관계자와의 갈등이나 규제로 사업을 미뤄야 했다. ‘벨루가’ 등 수제 맥주 배달 스타트업들도 국세청이 직접 조리한 음식만 배달을 허용하면서 줄줄이 서비스를 중단했다.
 
풀러스의 김태호 대표이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선 적극 관심을 보이고 응원하는데, 다른 부처에선 불법이라고 고발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고 검증할 기회조차 주지 않아 안타깝다”며 “새로운 서비스가 기존 제도와 충돌하더라도 생활에 더 큰 편리함을 줄 수 있다면 한 번쯤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이 기술-규제 간의 갈등을 풀 대안으로 제시하는 해법은 ‘네거티브 규제’다. 금지된 것 외 모든 것을 허용하는 식의 제도로 허용사항만을 나열하는 ‘포지티브 규제’보다 완화된 방식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유환익 본부장은 “신산업·신기술 분야에 대해 사업을 우선 허용한 뒤, 문제가 생기면 규제하는 식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술혁신을 어디까지 인정하고 얼마나 수용할지 사회적 합의를 조기에 도출하는 것도 부작용을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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