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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일본판 쉰들러가 아베 총리에게 바라는 건

 심각한 얼굴로 TV 카메라 앞에 선 그가 이렇게 말했다. "스기하라씨의 용기있는 인도적 행동은 전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같은 일본인으로서 정말로 자랑스럽습니다."
 
 유럽을 방문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1900~1986)'기념관을 찾은 건 현지시간 14일 오전(이하 현지시간)이었다. 부인 아키에 여사도 함께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부인 아키에 여사와 함께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 있는 스기하라 지우네 박물관을 찾았다. 스기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의 박해를 피해 리투아니아로 몰려온 폴란드인들에게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비자를 발급해줘 '일본판 쉰들러'로 불리는 인물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부인 아키에 여사와 함께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 있는 스기하라 지우네 박물관을 찾았다. 스기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의 박해를 피해 리투아니아로 몰려온 폴란드인들에게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비자를 발급해줘 '일본판 쉰들러'로 불리는 인물이다. [로이터=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때 카우나스 주재 일본 총영사 대리였던 스기하라는 ‘일본판 쉰들러’로 불리는 인물이다. 
나치 독일의 박해를 받고 폴란드에서 도망쳐온 유대인들에게 일본으로 갈 수 있는 비자를 발급해 줬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일본 외무성의 훈령에는 반하는 행동이었다. 그가 1940년 7월~9월 집중적으로 발행한 비자의 갯수는 번호가 붙어 기록에 남은 것만 2000장이 넘는다. 비자 한 장으로 함께 탈출한 가족들까지 감안해 그가 구한 유대인의 수를 6000명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13일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사울리우스 스크베르넬리스 리투아니아 총리는 스기하라를 "관용과 인도주의,정의의 거울"이라고 극찬했다.  
지난 2000년에 개설된 스기하라 박물관을 찾은 일본 총리는 아베 총리가 처음이었다.
 
우리에겐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걸로 찍혀있지만 역설적으로 아베 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들 중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관련 시설을 가장 열심히 방문해왔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절묘하게도 그 중 대부분은 아베 총리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된 주변국과의 갈등으로 코너에 몰렸던 시기였다. 
  
리투아니아의 '스기하라 지우네 박물관'을 찾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리투아니아의 '스기하라 지우네 박물관'을 찾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3년 12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로 한국·중국이 반발하고, 미국까지도 실망감을 표출하자 아베 총리가 이듬해 3월 찾아간 곳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의 집’이었다.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2년간 숨어지냈던 그 곳에서 아베는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마주하겠다"고 했다. 
 
 2차 대전 종전 70년을 맞은 2015년 '아베=역사 수정주의자'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대두되자 그해 벽두부터 아베 총리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했다.
  
 그 다음은 전세계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던 2015년 4월 미국 방문때였다.  
 그는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찾아 스기하라 지우네의 비자 덕분에 목숨을 구했던 생존자와 함께 묵념을 하며 "일본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이번과 똑같은 얘기를 했다. 미국 방문 내내 독일 나치에 대항했던 일본인 스기하라를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하면서도, 일본군에게서 피해를 당한 위안부들엔 너무나 냉랭했다.  
 당시 상ㆍ하원 합동연설에선 "아시아 국가 국민에게 고통을 줬다"며,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선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인신매매를 당해 고통을 겪은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판에 박힌 답변만 반복했다.
 
아베 총리는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한일간 갈등이 거세지는 와중에 스기하라 박물관을 찾았다. 
 
 물론 일본 정부의 주장처럼 아무리 전 정권에서 이뤄진 합의라고 해도 국가간 약속은 존중하고 실행하는 게 국제적인 상식이다. 사실상 합의 이행을 거부한 정치적 책임은 한국 정부에게 있다. 하지만 스기우라의 인도적 행동을 그토록 소중히 여긴다는 아베 총리가 유독 위안부문제에서만 "1mm(밀리미터)도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나치 피해자를 애도하는 아베 총리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그 진심의 일부만이라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여달라고, 스기하라는 자신의 박물관을 찾은 아베 총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서승욱 일본지사장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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