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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연극, 네 가지 이야기 … 당신의 선택은

희한한 연극이 나왔다. 하나의 제목 아래 70분짜리 공연 2편이 매일 차례로 진행되고 각 공연은 다시 두 개의 방으로 나뉜다. 제작사에 의하면 “4개의 대본, 4개의 공간을 가지고 4개의 공연을 만들어 낸” 연극 ‘더 헬멧’은 “당신이 원하는 만큼, 당신이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있는 혁신적인 연극”을 표방한다. 쉽게 말해 두 개의 방에서 총 4개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는데, 그중 1개만 봐도 되고 4개를 다 볼 수도 있다. 회당 관객수는 100명. 하룻밤에 한 극장에서 함께 공연을 본 100명 사이에도 4가지 조합의 관극 경험이 발생하고, 단 1개의 이야기를 본 사람부터 4개를 다 본 사람 사이에는 십여가지 조합이 발생하는 셈이다.
 

연극 ‘더 헬멧’
기간: 3월 4일까지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문의: 1544-1555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관객 참여형 공연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등 다양한 연극적 실험으로 정평난 김태형 연출·지이선 작가 콤비가 또다시 실험에 나섰다. 3~4년 전부터 ‘영국의 천재 연극 콤비’ 제스로 컴튼 연출과 제이미 윌크스 작가의 ‘카포네 트릴로지’‘벙커 트릴로지’‘사이레니아’ 등을 들여와 밀폐된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이 경계없이 밀착되는 독특한 관람 형식을 소개해 온 이들이 이번에 ‘밀폐된 방’의 개념으로 직접 창작극을 시도한 것이다.
 
공연은 ‘하얀 헬멧’을 연결고리로 대한민국 서울과 시리아 알레포, 두 시공간을 아우른다. ‘룸 서울’과 ‘룸 알레포’라는 두 공연은 각각 빅 룸과 스몰 룸으로 나뉘는데, 객석은 가변형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합쳐졌다 쪼개졌다 하며 서로 절반쯤 다른 극을 보게 된다. ‘룸 서울’에서는 1987년과 1991년 대학생 시위대와 백골단의 추격전이 펼쳐지고, ‘룸 알레포’에서는 시리아 민간 구조대 화이트 헬멧과 정부군의 대립을 보여준다. 각각의 빅 룸은 찾는 자의 조바심이 부각되고, 스몰 룸은 갇힌 자의 불안과 공포가 극대화된다.
 
요컨대 하나의 공연에 두 가지 시점이 생기는데, 어느 쪽을 택해도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모인다. 시작과 중간, 엔딩에 벽이 열리는 지점이 있고, 벽이 닫혀도 어렴풋이 들리는 소음과 그림자를 통해 반대쪽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핵심은 한꺼번에 다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요즘 뉴욕에서 가장 핫한 연극이라는 ‘슬립 노 모어’로 대표되는 공연계 첨단 트렌드다. 관객이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적극 참여하는 형식은 아니지만, 대규모 예산과 인력이 동원되는 이머시브 씨어터에서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장점만 취한 셈이다. 방이 나뉘어 있고, 어떤 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포맷이 결국 회전문 돌기를 유발하는, 상업적으로 영리하게 고안된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틀 안에 담긴 내용은 결이 좀 다르다. 시리아 내전과 1987년 서울의 유혈 사태와 같은 극한 대립의 상황에서 ‘헬멧을 쓴 쪽’과 ‘쓰지 않은 쪽’, 그 어느 쪽도 절대악이 아니라 각자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란 얘기다. 공포의 상징 ‘백골단’과 구원의 상징 ‘화이트 헬멧’의 포지션도 겉으론 상반되지만, 알고보면 화이트 헬멧으로 인해 고통받은 정부군도 있고 시위대를 도운 백골단도 있다. 결국 우리는 나와 입장이 다른 쪽을 다 아는 듯 쉽게 비난하지만, 실은 벽 너머의 소음과 그림자처럼 짐작만 가능할 뿐, 직접 벽을 넘어가 보지 않는 이상 반대쪽의 사연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자못 심오하다.
 
그런데 그 디테일이 궁금해 굳이 회전문을 돌 의향은 생기지 않는다는 게 맹점이다. ‘슬립 노 모어’가 반복 관람을 유발하는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가 교묘하게 다층적으로 믹스된 스토리를 스스로 다양하게 구성해갈 수 있는 롤플레잉 게임과 같은 구조 때문이다. 다른 관객은 어떤 스토리를 경험했는지 궁금해 서로 소통하고, 다른 겹의 스토리도 경험하고 싶어 거듭 극장을 찾는다. ‘더 헬멧’의 스토리는 진지한 생각거리를 던지긴 하지만, 중독성 강한 게임의 형식과는 괴리가 있다. 새로운 형식에 잘 밀착되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아이엠컬처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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