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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에서 맞닥뜨린 유고 출신 피아니스트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해안 언덕의 포고렐리치 저택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해안 언덕의 포고렐리치 저택

“어휴, 알바니아에서 쓰레기가 얼마나 떠내려 왔는지, 몇 톤이나 건져냈는지 말도 못해요. 저기 봐요. 아직도 바닥에 쓰레기가 보이죠?”
 

an die Musik: 이보 포고렐리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선착장을 떠나는 조그만 낚싯배 사공은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자기 휴대폰에 저장된 쓰레기 사진까지 보여주며 알바니아 사람들을 비난했다. 선착장 바닥엔 건져내지 못한 쓰레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두브로브니크는 궁금한 곳이었다. 문명여행가 권삼윤은 세계문명 명소를 두루 방문한 뒤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는 책을 냈다. 얼마나 인상적이었기에 달마티아 해안의 이 성채 도시를 제목으로 올렸을까? 그런데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두브로브니크에 와 쓰레기 이야기를 듣고 나니 환상이 반쯤 깨진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두브로브니크는 물 위에 떠 있는 돌덩어리다. 지중해에서 유일하게 베네치아와 경쟁하며 천년 역사를 써 온 통상국가. 지금은 주변에 고급 호텔과 빌라가 들어서 세계 부호들이 휴양을 즐기는 곳으로 이름 높다.
 
사공이 또 나선다. “저기 보이는 빌라, 하룻밤에 얼만지 아세요? 무려 7000유로(약 896만원)에요. 예전엔 중산층이라는 게 있었지만 요즘엔 가진 자들만 배부르죠.”
 
며칠 면도를 안 했는지 턱 밑이 꺼칠한 젊은 사공이 그렇게 말하자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환상은 이제 다 깨졌다. 버나드 쇼는 “두브로브니크를 보기 전에는 천국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했다지만, 그가 말한 천국도 가진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앞바다에 조그만 섬이 있다. 사공이 배를 가까이 댄다. 인적은 없는데 낮은 소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다. 사공은 사뭇 밝아진 얼굴이다. “저 비싼 빌라보다 이곳이 진정한 천국이죠. 섬 뒤쪽 해안이 누드비치거든요. 아쉽게도 지금은 겨울이라 아무도 없어요. 한국 손님들을 모시고 비치를 가까이 통과하면 많은 분들이 휘파람을 날리죠. 하하.”
 
비어있는 누드비치는 볼 필요가 없다면서 사공은 뱃머리를 육지로 돌린다. 가파른 경사에 소나무와 사이프러스가 빽빽하고 그 사이에 저택과 빌라들이 숨어 있다. 달마티아 해안은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어 동화의 한가운데로 들어온 느낌을 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이곳에서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아드리아해를 스케치한 게 아닐까.
 
그때 사공이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한다. “언덕에 하얀 집이 보이죠? 피아니스트 포고렐리치의 집입니다. 저 집에서 태어났죠.”
 
이보 포고렐리치(Ivo Pogorelich).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의 혼혈로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난 걸로 알고 있는데, 사공은 별장과 생가를 혼동하고 있다. “아직도 저 집에 살고 있나요?” “지금은 가끔 오고 안 올 때는 렌트를 합니다. 수영장도 있는 아름다운 집이죠.”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공은 제 임무를 훌륭하게 해냈다. 그는 유고연방 출신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포고렐리치를 자랑스러워했다.
 
포고렐리치는 1980년 쇼팽 국제콩쿠르가 탄생시킨 스타다. 그가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심사위원장이던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천재를 몰라본다’며 사퇴해 버린 것. 이 해프닝으로 콩쿠르 우승자 당 타이손보다 포고렐리치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그의 피아니즘은 자유분방하다. 다른 연주자와 매우 다르며, 많은 청중이 낯설어 한다. 하지만 연주를 들어보면 기교와 타건 방식, 음악성이 천재적이라는 것은 바로 느낄 수 있다. 58년생 개띠니까 그 미소년이 벌써 환갑이다. 나는 그의 음반이라곤 쇼팽의 전주곡집 하나다. 돌아가서 귀 기울여 들어보고 다른 음반도 구해야겠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사공이 외친다. “한사람씩, 천천히!” 문명 연구자나 오던 두브로브니크에 요즘 한국인이 쏟아져 들어온다.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이후에 생긴 현상이다. ●
 
 
글·사진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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