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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빵의 비밀? 겉은 바삭, 속은 촉촉

새벽잠이 없다는 건 나이 먹었다는 얘기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다. 이 예외없는 노인 증상은 어느새 매일 반복되고 있다. 남들 잘 때 깨어있고 활동할 때 잠드는 도깨비 같은 일상이 생활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일찍 일어나 하릴없이 거실을 배회하고 습관처럼 아침 신문을 읽는다. 그것도 아주 꼼꼼하게. 별지인 경제면과 광고 페이지까지 몽땅 다 봐도 창문 밖이 컴컴할 때도 있다.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74> 발뮤다 더 토스터

갑자기 배가 출출해진다. 이젠 곤히 잠든 마누라를 깨워 기세 있게 밥 달라는 주문을 할 처지가 못 된다. 이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식빵을 먹게 된 출발이다. 구석에 처박혀있던 토스터기를 꺼내 빵을 굽고 커피를 내렸다. 부산한 손놀림이 귀찮긴 하지만 혼자 먹는 조촐한 한 끼는 신선했다. 요즘 유행하는 혼밥족도 처음엔 이런 느낌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몇 번 반복하니 빵 맛에 이런저런 불만이 쌓여갔다. 전기열선을 쓰는 여느 토스터의 구조와 성능의 한계로 벌어진 일이다. 빵을 노릇하게 구우면 말라 비틀어져 푸석거렸고 덜 구우면 씹는 맛이 모자랐다. 빵 특유의 향도 뭔가 빠진 듯했다. 맛있다! 란 감탄은 맛과 향, 씹을 때의 식감이 어우러져야 나오는 법인데.
 
갓 구운 빵의 풍미는 먹어본 이들만 안다. 유럽의 도시에서 아침마다 줄 서 기다리는 빵집의 빵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빵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 공감하는 것은 당연하다. 쌀로 만든 최고의 음식이 밥이듯, 밀로 만든 최고의 음식은 빵이다. 다른 것이 섞이지 않아 별맛이 없으며 색깔도 없는 밥과 빵이 인류의 식탁을 지켜왔다.  
 
다이얼로 맞추는 직관적 디자인
밥과 빵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대체할 맛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역설이 질리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줄지 모른다. 매일 먹는 음식이 맛없다면 지루한 반복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다. 결국 밥과 빵의 맛이 가장 진하다. 오랜 세월의 판정으로 선택된 모두의 입맛은 뒤집힌 적이 없다. 더 맛있는 밥과 빵을 먹기 위한 기대로 솥과 오븐, 토스터는 온갖 형태와 방식의 새로운 제품으로 진화한다.
 
우리 집엔 이미 두 대의 토스터가 굴러다닌다. 하지만 더 좋은 맛을 내는 토스터가 있다면 모두 과감하게 버릴 용의가 있다. 어느 날 홈쇼핑 채널에서 토스터를 팔고 있는 걸 봤다. 구워낸 빵이 클로즈업되어 화면을 채웠을 때, 덩달아 먹고 싶어 군침이 돌았다. UHD TV의 섬세한 화질로 비친 노릇한 빵에서 나는 향은 화면까지 뚫고 나올 듯했다. 능수능란한 진행자의 말솜씨 때문이 아니다. 보자마자 물건임을 직감했다. 마누라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슬그머니 카드를 그었다. 당장 맛있는 토스트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새 토스터가 담긴 택배 박스를 받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흰색의 깔끔함이 정갈했다. 시험 삼아 식빵 두 개를 넣어 구워봤다. 사용법대로 5cc의 물을 넣었음은 물론이다. 빵의 향과 함께 맞추어둔 3분에 작동 종료 벨이 울렸다. 최신 토스터란 물건이 요즘 가전제품에 필수라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조작부가 없다. 직관적 조작법으로 다이얼을 돌려 원하는 기능과 시간을 맞추면 된다. 사용법을 몰라도 알아서 쓸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구조다. 디자인 또한 간결하다. 유럽의 빵집에서 봤던 화덕의 느낌이랄까. 벽에 사각의 구멍만 낸 형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토스터에서 꺼내든 빵의 촉감과 향이 남달랐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상태가 손과 코로 전달되는 느낌이랄까. 한 입 베어 문 순간 입 속의 온갖 기관이 반응했다. 기존 토스터로 구워먹던, 같은 빵이 전혀 다른 맛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빵 맛이 시원찮은 건 모두 토스터 탓이었구나. 위에서 빵을 집어넣고 버튼을 눌러 시간 지나면 툭 튀어나오는 기종 말이다. 가볍고 얇아 보이는 인상만큼 기존 토스터의 성능에 근본적 문제가 있었던 거다. 그동안 죄 없는 빵에게 온갖 혐의를 뒤집어씌웠던 셈이다.
 
토스터가 다 거기서 거기란 지레짐작은 잘못됐다. 빵의 맛은 아직도 끄집어낼 구석이 많다. 빵 속 밀가루 입자의 깊숙한 곳에 채 빠져나오지 못한 향과 쾌감으로 다가올 적당한 굳기의 성분이 남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토스터는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다. 이전에 없던 새로움을 구워진 빵 맛으로 증명해야 할 테니까. 세상에! 빵이란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 아저씨의 호들갑은 과장 아니다.  
 
직원 회식에서 비결을 찾아내다
발뮤다 더 토스터(BALMUDA The Toaster)는 대단한 물건이다. 20년 넘는 세월동안 기억 속의 빵 맛을 재현하고픈 한 인간의 갈망이 실현되어서다. 발뮤다의 창립자인 테라오 켄의 이력을 훑어봐야 순서다.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성장의 방황을 겪던 젊은이가 제 갈 길을 찾아 성공한 주인공이다. 주체적 인간의 성장 사례로 이야기될 만큼 일본 청소년들의 우상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테라오 켄은 2003년 회사를 설립한 후 승승장구한다. 내놓는 제품마다 화제를 뿌리며 히트를 쳤다. 남들과 같은 물건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철칙을 지켜온 결과다. 가전제품의 애플로 불리는 혁신의 아이콘인 발뮤다는 진정한 좋은 물건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새로움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테라오 켄은 향수를 느끼게 하는 단순한 디자인으로 발뮤다만의 독창성을 담는 데 주력했다.
 
더 토스터는 2015년 처음 만들어진 발뮤다의 최신작이다. 테라오 켄의 지울 수 없는 짙은 체험으로 완성시킨 물건이기도 하다. 방황하던 젊은 시절 스페인의 한 도시에서 먹어보았던 갓 구운 빵맛의 강렬함이 발단이다. 춥고 배고프고 잠잘 곳 없는 가난한 여행자의 막막한 처지에 어머니의 밥처럼 다가온 한 조각 빵의 감동은 누구라도 울컥했을 것이다. 문제는 누구나 겪었을 체험을 발전시켜 모두의 감동으로 바꾸어놓은 테라오 켄의 뚝심에 있다.
 
쓸 만한 토스터를 만들어보겠다는 목표는 지워지지 않았다. 우연히 열게 된 직원들과의 야외 파티가 막연한 구상에 불을 지르게 된다. 예정된 파티 날 비가 쏟아졌고 연기할 수 없게 된 사정으로 행사를 강행했다. 우연히 바비큐 화로에 빵을 구워먹게 된다. 유난히 맛있었던 그날의 빵이 화제가 되었다. 직원들의 원인분석이 이루어졌고, 참숯의 향도 화력의 세기도 아닌 비 오는 날의 습도가 빵 맛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테라오 켄은 그날의 재미있는 결과에 주목했다. 이후 직원들은 도쿄에서 제일 맛있다는 빵집의 갓 나온 빵을 맛보았다. 그리고 비결을 추적했다. 명장의 비밀은 의외로 싱거웠다. 성능 좋은 장비가 아니라 빵 굽는 오븐에 습도 조절장치를 달았을 뿐이었다. 빵맛과 습도의 연관성은 분명해졌다.
 
작은 아이디어로 출발한 토스터는 습도의 완벽한 조절로 초점이 모여졌다. 물로 증기를 만들어 빵에 뿌리는 방식은 발뮤다 토스터만의 특징이다. 반사판의 크기와 방향까지 신경 쓴 정밀한 열 제어 기술과 결합시켰다. 맛있게 구워지는 빵은 ‘정말 맛있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란 근원의 의문을 해결한 결과다. 지긋지긋할 만큼 끈질긴 한 인간의 집념으로 완성된 토스터에 열광하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사람들은 이미 혀로 그의 생각을 확인했을 터이니. ●
 
 
윤광준 :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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