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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나도 절박 … 선수로 더 뛰고 싶은 데얀 마음 이해를

[스포츠 오디세이] ‘유다’ 데얀 품은 ‘원조 유다’ 서정원 감독
수원 삼성 서정원 감독(왼쪽)과 데얀이 지난 12일 눈밭으로 변한 제주시 애향운동장에서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선수들은 이날 오전 내내 그라운드에 쌓인 눈을 치웠다. 제주=정영재 기자

수원 삼성 서정원 감독(왼쪽)과 데얀이 지난 12일 눈밭으로 변한 제주시 애향운동장에서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선수들은 이날 오전 내내 그라운드에 쌓인 눈을 치웠다. 제주=정영재 기자

스포츠에서 스타 선수가 라이벌 팀으로 옮기는 것을 ‘유다 신드롬(Judas Syndrome)’이라고 한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다가 스승을 팔아넘긴 배신자 가롯 유다의 이름에서 따왔다. 유다가 된 선수는 전 소속 팀 팬들의 비난과 조롱, 심지어 저주를 감수해야 한다. 그가 뭇매를 맞음으로 리그의 스토리는 더 풍성해진다.

‘LG 복귀’ 약속 깨고 삼성 유니폼
라이벌 구도 불붙어 ‘수퍼매치’로
K리그 스토리 만들게 돼 다행

골잡이 데얀도 라이벌 수원으로
선수생활 지속 걸려 양보 못해
더 집중하고 부족함 느껴야 프로

 
새해 벽두에 프로축구 K리그 팬들은 빅 뉴스를 접했다. K리그 외국인 선수 최다득점(303경기 173골) 기록을 가진 데얀(37·몬테네그로)이 팀을 옮긴다는 소식이었다. 지난 시즌 FC 서울에서 19골을 넣었던 데얀이 이적한 팀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 FC 서울의 라이벌 팀이다.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리던 두 팀은 2004년부터 ‘수퍼 매치’라는 이름으로 라이벌전을 공식화했다. 지난 시즌까지 수퍼 매치 통산 전적은 수원이 35승 18무 30패로 근소하게 앞선다. 하지만 최근 10경기에서 서울이 5승 5무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수원을 상대로 수퍼 매치 최다인 7골을 넣은 선수가 데얀이다.
 
서울 팬들은 “FC 서울의 영혼이 팔려나간 느낌”이라며 격앙했다. 그러다 현실을 인정하며 “전성기가 지났고, 황선홍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왜 하필 수원이냐”는 말은 빼놓지 않는다. 수원 팬들은 적장(敵將)을 빼 왔다는 기쁨에 들떠 있다. “한 명이 왔는데 두세 명이 온 느낌”이라며 은근히 서울 팬들의 부아를 돋운다.
 
K리그 원조 ‘유다 신드롬’ 주인공은 서정원(48) 수원 삼성 감독이다. 안양 LG(FC 서울의 전신) 소속이던 서정원은 구단의 배려로 1998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진출한다. 그리고 1년을 뛴 뒤 국내에 복귀하면서 약속을 깨고 수원 삼성에 입단한다. 격분한 안양 팬들은 서정원 유니폼 화형식을 했고, 구단은 서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 삼성과 LG, 수원과 안양이라는 라이벌 구도, 김호(수원)-조광래(안양) 감독의 불편한 관계까지 맞물려 수퍼 매치라는 히트 상품이 탄생했다.
 
수원 삼성은 제주도에서 전지훈련 중이다. 지난 10일 애향운동장을 찾았을 때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쳤다. 연습경기를 하다가 중단해야 할 정도였다. 그 눈보라를 뚫고 데얀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을 쫓았다.
 
선수단 숙소인 신라스테이에서 서 감독과 마주 앉았다. 그는 “선수로 더 뛰고 싶어하는 데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도 프랑스에서 복귀할 당시 엄청난 마음고생을 했다. 나도 데얀도 프로다. 프로답게 처신하면 된다”고 했다.
 
 
몸 좋은데 기용 안 해주니 미칠 지경
데얀은 어떤가.
몸을 잘 만들어 왔다. 며칠 봤는데도 훈련 태도와 동료를 대하는 게 역시 프로페셔널이었다. FC 서울의 레전드가 우리 팀을 선택해 줘서 고맙다.
 
감독과 선수가 똑같은 ‘가롯 유다의 길’을 걸어왔는데.
(파안대소하며) 그런가? K리그 인기가 예전만 못한 시점에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다. 유럽은 이런 스토리가 너무나 많다. 쌓이고 쌓여서 폭발할 정도다.
 
서 감독은 왜 유다가 됐나.
내 별명인 ‘세오’가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말하자. 내가 시즌 중간인 12월에 입단했는데 당시 스트라스부르는 2부로 강등될 위기였다. 오자마자 연속골을 넣으며 강등을 막아냈다. 감독이 바뀌면서 새 시즌에 나를 잘 기용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피치 밖에서 몸을 풀고 있는 날 보면서 3만 관중이 일제히 ‘세오(SEO)’ ‘세오’를 외치는 거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감독이 마지못해 나를 기용했지만, 나중에는 다른 팀으로 임대를 보내려고 했다.
 
복귀하면서 왜 수원으로 갔나.
몸이 워낙 좋았는데 다른 팀으로 가라고 하고, LG에서는 들어오라고 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즈음에 수원에서 ‘1년 뒤에 보내 주겠다’고 해서 방향을 틀었다. 다시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펄펄 날아다녔다. 그런데 9월에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절망하고 있는데 수원에서 5년짜리 계약서를 다시 만들어 왔다. 1년 가까이 쉬어야 하는 나를 믿고 기다려 주는 마음이 고마워 뼈를 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양 팬 입장에서는 배신감이 컸을 텐데.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데얀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선수생활 지속’이 달린 문제라면 양보할 수 없는 거다. 충분히 더 뛸 수 있는데 은퇴하라고 한다면 팬들 때문에 이적을 안 할 수 있을까. 팬들이 선수의 생계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넌 아마추어야”라는 말이 가장 심한 욕
눈보라가 몰아치는 애향운동장에서 데얀(왼쪽 셋째)이 몸을 풀고 있다. 제주=정영재 기자

눈보라가 몰아치는 애향운동장에서 데얀(왼쪽 셋째)이 몸을 풀고 있다. 제주=정영재 기자

FC 서울 관계자는 “황선홍 감독이 데얀 때문에 시즌 내내 고민을 했다. 성적이 좋지 않아 변화가 필요한데 외국인 선수 쿼터 하나를 데얀을 위해 쓸 수는 없었다. 코치직을 제안했으나 본인이 선수로 더 뛰고 싶어했다. 돈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그렇지만 수원으로 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서정원 감독은 2012년 12월 수원 사령탑에 오른 이후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삼성이 스포츠단 경영 효율화 차원에서 지속해서 운영비를 줄였기 때문이다. 2016년에는 축구단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득점왕 조나탄(28·브라질)을 중국 톈진 테다에 판 돈(70억원)으로 데얀을 포함한 필요 자원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 서 감독은 “5년 동안 정말 힘들었다. 그 경험이 내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거다. 하지만 돈 주고 사라면 사지는 않겠다”며 웃었다.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이 돈 몇 푼 아끼려고 축구단에 투자 안 해 10년 동안 리그 우승 한번 못했다”며 비판하는 사람이 많은데.
축구만 그런 게 아니라 5년 연속 우승한 야구 삼성 라이온즈도 9등 하지 않았나. 모기업의 방향이 그렇다면 따라야 한다. 문제는 ‘그래도 삼성인데’라는 외부의 기대치가 줄지 않았다는 거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감독이 떠안아야 한다. 나도 전북(현대자동차 소속)처럼 원하는 선수 데리고 경기 하고 싶지 않겠나.
 
다른 팀으로 간다는 말도 있었다.
작년 시즌 끝난 뒤 재계약이 늦어지고 있다는 기사가 뜨자 일본과 중국 팀들로부터 오퍼가 쏟아졌다. 솔직히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주위 분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떠나라고 하더라. 그런데 염기훈을 비롯한 베테랑 선수들이 찾아와 ‘선생님 가시면 저희도 모두 다른 팀 갈 겁니다’며 만류했다. 5년 동안 나보다 더 희생한 선수들을 두고 혼자 떠날 수는 없었다.
 
선수들에게 바라는 것은.
더 부지런해져야 하고 나쁜 버릇을 고쳐야 한다. 1시간 반 훈련하면서 패스 하나하나 트래핑 하나하나 집중해야 하는데 100% 집중하는 선수가 많지 않다. 선수는 은퇴하는 날까지 부족하다고 느껴야 한다. 난 골 넣고 이긴 날도 90분 경기 상황을 복기하면서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다음에 이 정도 못하면 어떡하지’ 고민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서 감독이 한 마디를 남겼다. “프로는 프로다워야 한다. ‘넌 아마추어야’ 하는 말이 가장 심한 욕이다.”
  
jerry@joongang.co.kr
제주=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99년 서정원, 친정팀 안양 울리자 유니폼 화형당해
‘가롯 유다 신드롬’에 갇힌 선수들은 어떤 대접을 받을까. 2000년 10월 2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 경기장. 코너킥을 하러 가는 루이스 피구(포르투갈)를 향해 라이터·맥주병·동전 등이 날아들었다. 삶은 돼지머리를 던진 사람도 있었다. 피구는 당시 세계 축구 이적료 최고 기록(6100만 유로·780억 원)을 세우며 FC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두 클럽은 그냥 라이벌이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원하는 카탈루냐 사람들의 아이콘이 FC 바르셀로나다.
 
서정원이 수원 삼성으로 이적(사진)한 뒤 전 소속팀 안양 LG와 처음 만난 경기가 1999년 3월 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퍼컵이었다. 서정원은 도움 2개를 기록하며 5-1 대승을 이끌었다. 이날 서정원 유니폼 화형식이 벌어졌다. 이 사건의 ‘단순가담자’였던 당시 안양 서포터는 “그 날은 날씨가 꽤 추웠다. 관중석 뒤쪽에서 선배가 ‘이것 좀 잡아’라며 유니폼을 건네주더니 시너를 살짝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어서 사진도 찍은 게 없다”고 회상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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