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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 비평’으로 30년 전 시대 증언

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신학철 작 ‘모내기’, 캔버스에 유채 112.1X162.2cm, 1987. [중앙포토]

신학철 작 ‘모내기’, 캔버스에 유채 112.1X162.2cm, 1987.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29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례적으로 미술 작품 한 점을 언급했다. 신학철(74) 화가의 그림 ‘모내기’다. 1987년 제2회 통일미술전에 출품된 ‘모내기’는 남북통일에 대한 희망을 농사꾼의 모내기에 비유해 그린 소박한 풍경화였다. ‘이발소 그림’의 형식을 부각한 독특한 화풍의 이 작품은 아무 문제 없이 전시됐다.
 
2년 뒤인 1989년, 이 그림으로 부채를 만들어 나눠 줬던 인천 지역 한 재야청년단체를 수사하던 서울시경 대공과는 엉뚱한 색안경을 끼고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해 갑자기 북을 찬양하는 그림으로 바꿔 버렸다. 그림 위쪽은 풍요롭고 평화롭게 보이고, 아래쪽은 힘겨운 노동 장면과 미국 쓰레기가 가득하니 이를 한반도 지형으로 보면 북에 동조하는 암시 아니냐는 얘기였다. ‘공안비평’이란 신조어가 나올 법했다.
 
30년 전 대법원은 ‘모내기’를 이적표현물로 판단해 몰수 명령을 내렸고, 압수된 작품은 서울 경찰청 압수물 보관창고에 들어갔다. 1989년 8월, 기소된 신학철씨가 구속되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졌는데 당시 재판을 참관한 이들 증언을 들어 보면 판사와 화가 간에 오간 대화가 코미디 버금가는 내용이었다. ‘모를 찌는 모습’이라는 설명을 알아듣지 못하는 판사, 소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우리 6촌 형님입니다”라는 화가 대답에 방청석에선 떠나가라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2000년 특별 사면된 신학철 화가는 작품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2004년 유엔인권이사회가 그림을 작가에게 반환하라고 권고했으나 법무부는 몰수 처리된 물건을 원소유자에게 반환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로부터 13년이 흐른 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중재안을 낸 것이다. 박 장관은 “보관 장소와 방법이 좋지 않아 현재 작품이 일부 훼손된 상태로 적절한 처분이 필요한 때”라며 “검찰에 국립현대미술관 위탁관리 등 처분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모내기’는 압수할 당시 접어서 보관하는 바람에 접힌 부분의 물감이 떨어져 나가고 구긴 자국이 생기는 등 크게 망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학철 화가는 “작품을 꼬깃꼬깃 접어 복사지 상자에 넣어 버렸으니 원작은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돌려받는다면 이 그림을 상자에 넣은 그대로 ‘흔적’이라는 제목을 붙여 1980년대 정부의 문화 탄압을 상징하는 새 작품으로 발표하겠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그림의 운명이 시대를 타고 ‘모내기’에서 ‘흔적’으로 전환 중이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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