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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남을 도울까

공감 共感
2013년부터 다섯 해 동안 두산아트센터와 함께 인문극장을 공동기획하고 있다. 매해 새로운 주제를 골라 걸고 다양한 학문적 방법과 입장을 가진 연사들을 모셔 이야기를 듣는다. 이 주제와 연관된 공연, 전시, 영화 상영 등도 함께 한다. 그리고 그 여정의 결과를 책으로 묶기도 한다. 두산인문극장을 진행하는 봄마다 서너 달은 한 주제에 푹 빠져 지내기 일쑤다. 토정비결이나 오늘의 운세를 보지도 믿지도 않는 내게 지난 인문극장의 주제를 돌아보고 새해의 주제를 고르는 작업은 반성과 전망을 함께 하는, 드문 시간이다. 재난이 겹치던 시절엔 상궤에서 벗어난 ‘예외’를 다루었고 절망과 슬픔으로 힘든 해에는 희망을 가지고 ‘모험’을 떠나 보려고 했다. 작년에 ‘갈등’을 다룬 것은 서로 설득할 수 없는 대치 상황이 곳곳에서 발생하는데, 그 이유와 역사를 따져 긴장을 줄일 방법을 찾을 수 없을지 고민한 것이다.
 

커피 농사 짓는 가난한 이들 돕자고
공정무역 제품 마셔도 농부몫은 1%
열심히 번 돈 기부하는 게 낫지 않나
인공지능과 어울려 살아갈 미래
이타적 행위의 의미를 찾아볼 것

새해, 여섯 번째 인문극장은 ‘이타주의자’라는 제목을 걸고 여행을 시작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이타주의자’들을 만난다. 역사책이나 교과서에 이름을 올린 위대한 사람들은 위대한 ‘이기주의자’들 보다는 남들을 위해 기꺼이 한 몸을 희생한 사람들이 많다. 남들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을 ‘의사자’로 삼아 기리고 그들을 따르라고 배운다. 실제로는 제 한 몸 어찌해 보려는 ‘이기주의자’들이 우글대는 현실 속에서 멀리 있는 ‘이타주의자’들은 따르고 존경해야 하는 존재이다. 부조리한 상황.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참고 희생하는 것의 미덕을 배웠지만 여전히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스스로를 발견해야 하는 비루한 현실 속에서 ‘이타주의자’들은 과연 누구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남을 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남이 누구인지 알 수는 있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그를 위하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가능한가? 이 시대에, ‘이타주의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때마침, 피터 싱어나 윌리엄 맥어스킬 같은 공리주의에 기반한 철학자들이 보여 준 ‘이타주의’에 대한 다른 시각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동정과 열정에 따라 남을 위한다고 한 행동들이 실제로는 별로 쓸모없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냉정하게 계산을 해 보면, 거대한 자선 단체는 남을 돕는 것보다 단체를 움직이는 데 더 큰 돈을 쓰는 경우가 많다. 쓰지 않을 때 전기 플러그를 뽑는 ‘좋은’ 습관을 1년 실천해도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것을 한번 참는 것보다 효과가 미미하다. 공정무역 커피를 마셔도 농부에게 돌아가는 것은 1% 미만이다. 노동을 착취하면서 만든 제품을 피하면 그나마 있던 개발도상국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이들은 생활 구석구석을 조금씩 바꾸는 것 보다 그런 노력을 기울일 시간에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기부하는 쪽이 세상을 바꾸는 훨씬 더 유리한 방식이라는 주장을 한다. 정말 그럴까?
 
진화적으로 따져 본다면, 어느 시대에나 ‘이타주의자’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의 어떤 지점에서 이타적인 행위가 생존에 유리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하는 것이 어떻게 스스로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내가 남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 남이 나의 등을 긁어줄 것이라는 호혜적인 관계가 ‘이타주의’의 유일한 기반인가? 그렇다면 생명을 내던져 남을 돕는 사람들은 무언가에 세뇌당한 채,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 허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자신과 유전적인 관계가 깊은 사람들을 위하는 행동을 해서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생존하게 만드는 자연의 법칙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생존 기계일 따름인가?
 
이런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보려는 올해의 인문극장에서는 합리적인 인간을 상정하고 계산 가능한 세계를 꿈꿨던 경제학과 자연과학이 ‘이타주의자’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해 보려고 했던 시도들을 모두 검토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동서고금,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이타주의자’들의 내밀한 사정들을 들여다 볼 예정이다. 결국 이런 노력은 ‘이웃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여행이다. 이 길에서 역사상 처음 등장한 새로운 지성, 인공지능까지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미래에 어떤 행위를 이타적인 것이라고 볼 것인지, 희생은 어떤 지점에서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 희생을 진정으로 값어치 있는 것으로 만들 방법은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일우
과학잡지 ‘에피’ 발행인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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