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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만 억울하진 않다 … 내 역할은 문 대통령 퇴임 후 준비

일시 귀국하는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오른쪽)이 2011년 7월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문재인의 운명’ 북콘서트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그는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어떤 공직도 맡지 않고 백의종군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연합뉴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오른쪽)이 2011년 7월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문재인의 운명’ 북콘서트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그는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어떤 공직도 맡지 않고 백의종군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연합뉴스]

대선 캠프 시절 문재인 후보(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는 양정철 전 비서관. [사진 메디치미디어]

대선 캠프 시절 문재인 후보(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는 양정철 전 비서관. [사진 메디치미디어]

문재인 대통령은 양정철(54)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고마운 사람” 또는 “양비”(2012년 1월 북 콘서트에서)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그 ‘양비’는 지금 대통령 곁에 없다. 지난해 5월 16일 “내 역할은 끝났다”며 스스로 “퇴장”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8개월. 뉴질랜드 형의 집, 일본 도쿄의 집필실을 거쳐 그는 12일 현재 미국 서부 지역을 떠돌고 있다. 양 전 비서관은 17일 잠시 귀국한다. 책 『세상을 바꾸는 언어』가 출간되는 시기에 맞춰 북 콘서트를 하기 위해서다. 출판사(메디치미디어) 측은 “수백 명 규모의 미니 북 콘서트”라고 했지만 ‘양비’ 입장에선 퇴장을 선언한 이후 대중과의 첫 만남이다. 중앙SUNDAY는 “언론의 구설에 오르기 싫다”며 한사코 거부하는 양 전 비서관을 설득해 e메일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정치 현안에 대해선 의견이 없다는 전제로.
 
10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봤나.
“외국에 있으면서 의도적으로 국내 뉴스를 끊고 살려고 해도 잘 안 된다. 자꾸 눈길이 간다. 인이 박인 데다 일단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 온라인 기사로 쭉 봤는데 어떤 현안에도 막힘 없이 잘 말씀하신 것 같더라. 노무현 대통령 때 신년 기자회견이나 문재인 후보의 회견은 항상 내 일이었는데 관찰자로 지켜보니 편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백의종군을 선택한 후 8개월째다.
“백번 천번 잘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분들이 철저하게 시스템과 팀워크로 청와대를 운용하면서 대통령을 잘 보좌하고 있지 않은가. 또 패권, 친문, 문고리 얘기는 누구도 말할 수 없게 됐다. 보잘것없는 사람이 하찮은 선택으로 그런 분위기가 잡히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면 역사적으로 그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도 대통령이나 권력과 거리를 두고 있으니 그나마 동정이나 받지 안에 있었으면 얼마나 미움이나 견제를 많이 받았을까 상상하며 매일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도 청와대 생리나 권력의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뭘 맡았어도 주목을 받으며 마음고생 했을 것이다. 하루하루 안분지족 살아간다.”
 
문 대통령이 잡았을 텐데 어떻게 설득했나.
“대통령 성격이나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일에 대해선 단호하고 분명한 분이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표현을 안 해 그렇지, 정이 많은 분이다. 지난해 5월은 누란의 상황에서 취임했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먼저 부담을 덜어 드려야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참여정부 시즌2’는 안 되게 하려면 우리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안 가기로 같이 약속한 선배들도 고맙고, 갔어도 십 몇 년 전 청와대 직급 그대로 자리 맡아 고생하는 백원우(민정비서관), 김수현(사회수석), 정태호(정책기획비서관) 같은 분들이 더 고맙다. 내 거취도 그 연장에서 대통령을 설득했다. 특히 강하게 말씀드린 건 인적 부채였다. 선거 때 신세 지고 기여한 분들을 어찌 다 챙기나. 누가 어떤 자리 부탁해도 ‘양비도 못 들어오지 않았냐’고 하면 핑계가 되지 않나. 그런 논리를 들어 면탈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래도 타지에서 홀로 있으면 외롭지 않나.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 하나.
“왜 안 외롭겠나. 외롭고, 애절하게 그리운 것도 많다. 하지만 억울한 건 없다. 대선 훨씬 이전부터 마음먹어 왔고 준비했던 진로인데. 처음부터 ‘저건 내 것이 아니다’ 생각하면 간단하다.”
 
경제적 어려움은 없나.
“다행히 그 전에 벌어놓은 것도 있고 부인(고교 교사)이 벌기도 하고. (외국에서) 친척, 친지, 학교 선후배 집에서 동가식서가숙 신세 지며 머물고 있다.”
 
17일 귀국한다는데.
“책 출간 때문에 출판사 요청으로 한국 들어간다. 저자로서 몇 가지 의무 방어전이 있는 모양이더라. 책 관련 일 다 마치면 아무래도 다시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대선 1년, 그리고 지방선거는 끝나고 나야 내 복귀설이나 역할론 같은 얘기가 없어지지 않겠는가.”
 
민주주의와 언어에 관한 책을 썼다.
“내가 책 쓴다고 하니까 문 대통령 집권 비사 같은 걸 쓰는 줄로 예상하더라. 대통령 임기 중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께 도리가 아니다. 언어를 매개로, 우리 생활 속 비민주주의적 의식과 문화를 돌아보고 싶었다. 한 예를 들면 개인 병원 간판에 출신 대학 이름이나 마크를 새겨 넣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무심코 쓰는 말이나 글에서 우리가 더 채워가야 할 민주주의적 가치를 살펴보는 책이다. 언어라는 매개로 두 분 대통령 얘기가 간간이 들어가기는 한다.”
 
지방선거 후 2선으로 물러나 있던 핵심 측근들이 전면에 설 것이란 관측이 있다.
“대통령에게 인적 풀이 많은 건 좋은 일이다. 릴리프와 마무리 투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감독의 전술 운용이 한결 여유 있는 법 아닌가. 흑묘백묘 가릴 게 뭐 있는가. 유능하면 새 인재든 측근이든, 보수든 진보든 데려다 쓰는 거지. 대통령은 그런 실용적 합리주의자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르다. 원치 않게 상징성이 커져 버렸다. 팔자라 생각한다. 내 역할은 문 대통령 퇴임 이후를 혼자 일찌감치 그리고 묵묵히 준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은 퇴임하시면 대통령도 나도 다 자유로워지니까. 역사에 평가받을 전직 대통령 문화도 우리가 처음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런 일에 다시 도움을 드릴 것이다. 내가 첫 비서니까 마지막 비서로 의리와 도리를 지키는 게 목표다.”
 
문 대통령이 임기 중 ‘나 좀 도와줘야겠다’고 손을 내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혹시 그런 상황이 와도, 그때 가서 또 설득하는 한이 있어도 선을 긋고 싶다.”
 
정부의 업적은 미래형에서 결정될 텐데 너무 적폐청산에만 매달린다는 비판도 일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장차 어떤 정부였다고 평가받길 바라나.
“지금 하고 있는 불법, 부패, 비리 청산(적폐청산이란 말이 정확지 않다고 생각한다)은 국민적 요구고 지난 대선에 담긴 민의다. 미래로의 전환도 절차가 있고 때가 있다. 지방선거 이후를 두고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주주의를 면면이 이어지는 하나의 여정으로 본다면, 역대 민주적 대통령들의 누적된 공로가 있다. YS(김영삼)는 없는 길을 냈다. DJ(김대중)는 그 길을 넓혔고 포장해 도로의 개념을 만들었다. 노 대통령은 그 도로를 사통팔달 연결했다. 문 대통령은 그 도로에 차와 사람의 왕래를 활발하게 해 도로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 내 삶에 힘이 되는 민주주의 개념을 임기 동안 구체화할 것이다. 사견이다.”
 
문 대통령의 최대 장점은 뭔가.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철저한 복기, 2012년 패배 후 4년 반에 걸친 집권 준비 아닐까. 대한민국에서 청와대 경험을 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그걸 간단히 보면 안 된다. 학습 속도와 꼼꼼함이 무서운 분이다.”
 
본인이 영입한 사람들 중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내가 영입했다고 표현하는 건 아주 적절치 않다. 대통령 주문으로 나는 심부름만 했을 뿐이다. 대선 때 어렵게 와서 고생해 준 임종석 실장 포함, 송영길 선배와 박영선 선배에겐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당내 외연이 크게 넓어졌다. 총선 때 응해준 표창원·조응천 등 영입 의원들도 다 고맙다. 인생의 어려운 결단을 내려줘 총선 승리와 당 체질 개선에 큰 역할을 하셨다.”
 
정치가 뭐라고 생각하나.
“연애? 국민을 상대로 한 연애 같다. 진심으로 대해야 하고, 믿음을 줌으로써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갖게 만들어야 하는….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것도 같다고 본다.”
 
 
박승희·박신홍 기자 pmas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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