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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실리콘밸리 264점, 서울 2.4점

손해용 산업부 차장대우

손해용 산업부 차장대우

지난해 연수차 머문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라몬은 인구 8만 명의 소도시다. 언덕에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눈을 돌리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주민들은 벤츠·포르셰 같은 고급차를 끌고 마트를 오간다. 커뮤니티센터에선 명품을 두른 사모님들이 자원봉사에 나선다.
 
한가롭던 시골 마을을 부촌으로 만든 건 여기서 50여㎞ 떨어진 실리콘밸리다. 애플·구글·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에 고급 인력이 모여들었고, 상대적으로 집값이 싸고 여유로운 곳을 찾다 이곳에 살게 된 것이다. 실리콘밸리를 가까이 둔 덕분에 인근 광역 도시권인 ‘베이에어리어’는 완전고용 수준을 유지하고, 투자금이 계속 모여든다. 실리콘밸리의 ‘낙수 효과’다.
 
연수 기간 1년 동안 왜 실리콘밸리에서 혁신적인 기업이 많이 탄생했는지 궁금했다. 여러 실리콘밸리 기업인을 만나며 내린 결론은 60여 년간 자생적으로 구축한 창업 생태계가 원동력이라는 점이다.
 
기업이 망하고, 새로운 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일이 반복하면서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를 다음번 창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자산으로 간주한다. 될성부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은 기업이 자리 잡을 때까지 각종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인수합병(M&A)이 활발하다 보니 회사를 매각해 자금을 회수하기도 쉽다. 스탠퍼드·UC버클리 등 인근 대학에는 기업 창업 교과목이 따로 있을 정도로 젊은 인재의 ‘기업가 정신’도 충만하다. 다양한 인종·문화가 섞이면서 색다른 아이디어가 싹트고, 격의 없이 소통하며 시너지를 낸다.
 
한국은 창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인위적으로 실리콘밸리를 흉내 냈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 활성화에서부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까지 다양한 정책이 나왔지만 스타트업 특유의 자생력을 떨어뜨리고, 도덕적 해이라는 부작용만 키웠다. 규제도 많다. 세계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57곳은 현재 사업모델로는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스타트업 지놈’이 세계 주요 도시별 창업 생태계 가치를 평가한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1위인 실리콘밸리는 264점을 얻었지만 서울은 100분의 1도 안 되는 2.4점을 받는 데 그쳤다.
 
한 기업인은 성공 원인을 “정치·행정의 중심지인 수도 워싱턴DC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료·정치인을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3시간의 시차로 메인 뉴스에도 둔감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겁 없이 기존 질서·통념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반은 농담 섞인 얘기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막힌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답변이었다.
 
손해용 산업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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