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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중반의 언니가 80·90대 언니들에게 …

“권(옥연)이 중환자실에 드러누워서 날 보고 그러는 거야. ‘여보 미안해 미안해’. 그래서 내가 덥석 엎드려서 ‘왜 미안해? 뭐가 미안해?’ 그랬지. 갑자기 그렇게 눈 감고 갔어. 가는 복도 타고 난 사람….”
 

박영숙 사진전 ‘두고 왔을 리가 … ’
명창·화가 등 여성 7인 걸어온 길
기업가 아내, 식당주인도 초대

지난달 29일 향년 90세로 작고한 무대미술가이자 극단 자유 대표를 지낸 이병복(1927~2017)씨가 생생한 목소리로 서양화가이자 남편인 고(故) 권옥연 작가가 눈 감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책이 빽빽이 꽂혀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이야기에 취해 큰 몸짓을 섞어 말하던 그는 금방이라도 화면 밖으로 걸어 나올 기세다.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영숙 사진전 ‘두고 왔을 리가 없다’에서 만난 이병복 선생의 모습이다.
 
고(故)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91)씨. [사진작가 박영숙]

고(故)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91)씨. [사진작가 박영숙]

박영숙(76) 작가가 이번 전시에 풀어놓은 것은 80·90대 여성들 7인의 이야기다. 판소리 명창 최승희(81), 고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91), 화가이며 패션 디자이너인 김비함(89), 종갓집 며느리이자 갤러리 대표인 이은주(84), 기업인의 아내 박경애(84) 등이다. 사진과 함께 각 5~22분짜리 인터뷰 동영상도 곁들였다.
 
7인의 여성에겐 공통점이 있다. 나이 팔십을 훌쩍 넘긴 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거리에서 만났으면 ‘노인’ ‘할머니’로 여겨졌을 거란 점이다. 그러나 박씨가 렌즈를 들이대자 우리네 여느 어머니처럼 “책 한 권으로 써도 모자랄” 사연들이 쏟아져 나온다. 박씨는 이들을 스튜디오로 불러내지 않고 이들의 집 안방이나 부엌, 마당, 작업실 혹은 식당 등 그들이 가장 편안해 하는 공간에서 촬영했다.
 
김비함 패션 디자이너(89). [사진작가 박영숙]

김비함 패션 디자이너(89). [사진작가 박영숙]

화려한 한복 차림의 최승희 명창은 어렸을 때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던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주고, 북촌 한옥의 안방에서 포즈를 취한 서호미술관 이은주 대표는 종갓집 며느리로 살아오며 셀 수 없이 제사 지낸 얘기를 들려준다.
 
고(故) 김수영(1921~1968) 시인의 아내 김현경(90)씨는 자신의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보이는 자신의 집 거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아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형형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김(수영) 시인은 천재였다. 정신적으로는 정직하고 성인 못잖았다”는 얘기를 전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가까운 사람과 추억에 대한 담담한 사연이다. 작가는 7인의 여성들과 마주한 카메라 밖에서 그들에게 맞장구를 쳐주고,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하고, 또 듣는다.
 
고(故) 이병복 극단 자유 대표. [사진작가 박영숙]

고(故) 이병복 극단 자유 대표. [사진작가 박영숙]

그렇게 포착한 그들의 몸짓과 표정은 자연스럽다. 당당함도 엿보인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장남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이 만든 아들의 발 모양 작품을 손에 들고 어루만지는 이병복씨의 표정은 웃는 듯, 눈물이 고여 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는 박씨의 ‘여성 서사(敍事) 여성 사물(事物) 시리즈’의 첫 번째 프로젝트다. 박씨는 앞으로도 나이 든 여성들의 모습을 그들의 사물과 연계시켜 정체성을 탐색하는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1975년부터 사진 작업을 해온 그는 ‘마녀’ ‘우리 봇물을 트자’ ‘미친년 프로젝트’ 등 그동안 여성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 왔다.
 
이은주 서호미술관 대표(84). [사진작가 박영숙]

이은주 서호미술관 대표(84). [사진작가 박영숙]

박씨는 “어느 날 갑자기 나이 듦을 받아들인다는 게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왔다”며 “앞서 살아계신 선배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내 경험으로 아직 알지 못하는 것들을 새롭게, 다르게,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의식이자, ‘70대 중반의 언니’가 ‘80~90대 언니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양효실 비평가는 “작가는 ‘언니들’에게 한없는 애정을 보이며 그들의 삶을 경축한다. 그들을 보며 우리는 노인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존재’들에 대해 다시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두고 왔을 리가 없다’는 전시 제목은 “그녀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작가의 해석을 담고 있다. 박씨는 “그들은 일제 강점기와 4·19와 5·16, 낯선 산업사회를 모두 거쳤다. 그들이 험난한 여정을 지나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감동”이라고 말했다. 2월 17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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