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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00㎞ 행군, 레펠 강하까지 … 신입사원 “입사했지 입대했나”

한국전력에 근무하는 A씨는 신입사원 교육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주변의 부러운 시선 속에 꽁꽁 언 취업시장을 뚫고 공기업 입사의 꿈을 이뤘지만 신입사원 교육 때부터 군복을 입고 얼차려를 받아야 했다. 연수 프로그램에 해병대 1박2일 캠프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신입사원 연수 시작부터 얼차려를 받는데 ‘내가 입사를 했지 입대를 했나’ 싶더라. 고무보트를 머리 위에 올리고 기합을 받고, 군대에서도 유격훈련 때나 할 정도로 강도 높은 레펠 강하도 했다”면서 “연수 담당자가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라고 하는데 마음이 착잡했다”고 말했다.
 
포스코에 입사한 B씨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B씨는 “입사 당시 1박2일 해병대 캠프를 다녀왔다. 일부 여성 신입사원들은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면서 “이후 캠프를 건너뛴 기수가 있고, 훈련 강도도 우리 때보다 약해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생리 조절용 피임약 지급하기도
 
최근 국민은행이 신입사원에게 100㎞ 행군을 시키고, 여성들에게 피임약을 제공한 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적지 않은 기업들은 여전히 군대식 신입사원 연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직무능력 향상 교육보다는 정신력을 강조하는 방식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다수의 신입사원들은 직무능력이나 업무와 무관한 무리한 체력훈련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하지만 입사 직후라 대놓고 불평하기는 어렵다. 한국전력 A씨의 사례처럼 일부 공공기관은 신입사원 및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꾸준히 해병대 캠프를 실시했거나 여전히 실시 중이다. 한국전력은 2017년 입사자(399·400기)까지도 해병대 캠프를 진행하다 최근에 없앴다. 한국전력 홍보 담당자는 “팀워크를 다지고 정신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시행했었고 군복을 입긴 하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 없어 실제 신입사원들의 거부감이 적었다고 들었다”면서도 “낡은 교육이라는 지적이 있어 최근 입사자(401기)부터는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12월 국민은행 신입사원들이 무박 2일 행군을 하는 모습. [KB국민은행 유튜브 캡처]

지난해 12월 국민은행 신입사원들이 무박 2일 행군을 하는 모습. [KB국민은행 유튜브 캡처]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 한국투자증권 등은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 때 지리산·한라산 등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오전 4시에 출발해 오후 4시에 내려오는 12시간 등반 훈련이나 오후 7시에 출발해 다음 날 오전 7시에 내려오는 무박2일 행군이었다.
 
해당 신입사원 연수 참가자 C씨는 “가벼운 등산으로 볼 수 없는 강행군이었다”며 “일부 구간에선 구급차가 뒤따라왔다”고 기억했다. 그는 “다리를 다쳐 응급처치를 받은 동기도 있었다”며 “창의성이 강조되는 최근 추세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 D씨는 “그런 등산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하지만 눈치가 보여 안 갈 수가 없다”면서 “행군과 직무능력의 상관관계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기업 “팀워크 다지고 정신력 강화”
 
현대자동차 홍보팀 관계자는 “다양한 직군이 입사하다 보니 협업이라든가 어려움 극복 과정을 가르치기 위해 등산 프로그램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힘든 수준은 아니다”며 “몸이 안 좋거나 체력이 달리는 사원은 꼭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무래도 신입사원이다 보니 대부분 참가는 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신입사원 연수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는 대구은행 신입사원 64명이 100㎞ 행군을 경험했다. 2014년에는 신한은행이 신입사원에게 기마자세로 도산 안창호 선생 글 암송을 강요했다가 논란이 됐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나오는 연례 행사가 됐지만 기업들의 행태는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신입사원 296명을 대상으로 ‘신입사원 연수’에 관해 실시한 조사(중복응답 허용) 결과에 따르면 74%의 신입사원들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이 신입사원 연수의 필요성으로 첫 번째로 꼽은 건 ‘기초적인 업무지식을 배울 수 있어서’(66.7%)였다. 어디까지나 직무역량 제고와 관련된 연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인 셈이다. 반면 연수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들의 54.5%가 ‘실제 업무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지식 성장시대 시대착오적 교육법”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기업들의 인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무박2일 행군, 강압적인 단체 등산, 해병대 캠프 등 군대식 조직문화를 덜어내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주로 임원급 이상 고위직에서는 아직까지 신입사원은 강인하게 단련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대부분 ‘원하지 않으면 안 시킨다’는 조건을 걸지만 신입사원들에게는 사실상 강제나 다름없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군대식 연수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본인의 선택에 따라 실시했다’고 해명한다.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 국민은행 측도 “여성 직원들에게 상황 설명을 한 뒤 자의적 요청에 따라 피임약을 준비해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작 연수에 참여한 이들은 “인사팀이 연수기간 내 생리주기를 조절하라고 피임약을 나눠줬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군대식 인재상을 갖고 개인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도외시해 일어나는 일”이라면서 “독창성이 강조되는 4차 산업혁명, 지식사회의 가치에 배치되고 자율성이 미덕인 요즘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기업에서 군대식 훈련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일본에서도 사라진 기업문화”라며 “산업화의 시기에 일사불란한 조직문화가 필요했고 일부 그 도움으로 압축성장이 가능했던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엔 맹목적 충성, 군대식 집체교육이 통했다 하더라도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며 “기업들이 직원의 창의적 역량을 어떻게 길러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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