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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규제 안 먹히는 암호화폐 … ‘구원투수 최종구’ 불 끌까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암호화폐 투기 광풍을 잡기 위한 구원투수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등판했다.
 
지난해 12월 13일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 28일 ‘특별대책’을 연이어 발표했던 정부가 식을 줄 모르는 암호화폐 열풍을 진정시키기 위해 전면에 내세운 건 금융위원회였다. 암호화폐 거래의 길목인 은행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8일 최종구 위원장은 기자브리핑을 열고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이 합동으로 암호화폐 취급업소(거래소)에 가상계좌를 제공하는 6개 은행에 8일부터 현장점검을 시행한다”며 "은행이 충분한 검토 없이 수익만을 좇아 무분별하게 가상계좌를 발급한 것은 아닌지 철저히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점검 은행은 암호화폐 거래소에 지급결제서비스를 제공 중인 농협·기업·신한·국민·우리·산업은행이다.
 
초점은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이행했느냐다. 일부 은행은 불법거래 위험이 있다는 내부 지적 때문에 암호화폐 거래소와 거래를 안 한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따라서 은행이 이런 위험을 충분히 확인하는 내부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아니면 수수료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이런 위험을 간과했는지를 들여다본다.
 
최 위원장은 "은행의 법령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예고했다. 상응하는 조치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엔 한층 톤을 높여 이렇게 답했다. "점검 결과 부적절하거나 불법적인 행위가 적발되면 그 부분을 일부 영업 중단, 즉 가상계좌 서비스 제공을 중단시키도록 하겠다. (거래소에 대한) 직접 규제는 아니지만 사실상 (암호화폐) 거래를 차단하거나 거의 봉쇄하는 효과까지 있을 수 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금융위가 암호화폐 거래의 몸통인 거래소가 아닌 꼬리인 은행에만 압박을 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규제할 법적 권한이 없어서다. 암호화폐 자체의 법적 지위가 모호하기 때문에 현행 금융 관련 법이나 공정거래법으로 거래소를 상시 감독·감시할 수가 없다.
 
최 위원장은 "제대로 된 규제는 입법을 통해 해야 하지만 입법엔 상당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며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당장 쓸 수 있는 효과적인 카드로 은행에 대한 단속을 택한 것이다. ‘기본(자금세탁 방지)이 되지 않으면 거래를 못 한다’는 이번 메시지는 은행으로선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최 위원장이 이날 브리핑에서 암호화폐 규제의 목표를 이렇게 잡았다. "최소한 한국 시장의 불법행위로 다른 나라 (암호화폐 시장)까지 견인하는 일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는 "한국에 유독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불릴 정도로 열풍이 불고 있는 건 규제 미비뿐 아니라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이라며 "더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비정상적인 거래를 주도하는 시장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은 점점 커져서, 최근 국내 거래소의 비트코인 시세는 해외보다 40%가량 비싸게 형성돼 있다.
 
최종구 위원장은 줄곧 암호화폐를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봤다.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가상통화를 금에 비유하기도 하고, 심지어 튤립 광풍에도 비유하는데 어떠한 관점을 가질지 고민할 단계”라며 "거래 과열 문제점과 함께 소비자보호, 불법 거래, 범죄 악용 등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어 규제 대상으로 삼을지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국회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 인가제’를 위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최 위원장은 줄곧 이에 반대했다.
 
그는 "가상통화(암호화폐)에 공신력을 인정할 생각이 없다. 금융업으로 포섭하기 어렵고 불법거래와 피해방지에 정책 초점을 두겠다”(2016년 10월 16일 국정감사)고 밝혔다. "암호화폐는 금융이 아니다”라는 것은 이후 금융위 공식 입장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2월 4일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 주무부처가 금융위에서 법무부로 바뀌었다.
 
정부가 8일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현장 점검에 나선 가운데 한 행인이 서울 시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세표를 보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8일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현장 점검에 나선 가운데 한 행인이 서울 시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세표를 보고 있다. [뉴시스]

비트코인 가격이 1코인 당 2400만원을 돌파하면서 투기 열풍이 정점이던 시기다. TF는 "암호화폐가 투기화해 보다 강도 높은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교체 이유를 설명했다.
 
법무부 주도 체제는 오래 가지 않았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8일 TF 회의에서 암호화폐 거래소를 아예 폐쇄하는 강경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관계기관 논의 끝에 이 안은 보류됐다. 재산권 침해 논란 등 검토할 것이 너무 많은 안이어서다.
 
정부가 같은 달 13일 내놓은 ‘긴급대책’에는 대신 금융위가 9월부터 제안한 유사수신법 개정안이 담겼다. 암호화폐 거래를 유사수신으로 보고 금지하되, 일정 요건을 갖춘 거래소에 한해 예외를 인정하는 온건한 방안이다.
 
정부가 같은 달 28일 추가로 발표한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 역시 금융위 정책이다. 이에 따라 각 은행이 ‘실명확인 시스템’을 구축해 이달 22일부터는 암호화폐 거래는 가상계좌가 아닌 실명확인이 된 일반 계좌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금융위는 지난 2일엔 5명 규모의 ‘가상통화대응팀’도 신설하면서 암호화폐 규제의 주도권을 되찾아왔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 위원장이 8일 직접 암호화폐 관련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이유를 "모든 대안을 검토해 할 수 있는 최대 수준까지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문종진 명지대 경영대 교수는 "현행 법규 안에서 (규제를) 하려면 은행을 통해서 하는 길밖에 없다”며 "더 빨리 금융당국이 예방조치를 하는 게 나았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나서서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과연 구원 등판한 최 위원장이 암호화폐 투기 열풍을 매조지할 수 있을까. 시장은 숨죽이며 그가 어떤 결정구를 던질지 지켜보고 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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