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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거리던 개, 그 녀석들이 사람을 선택했다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개의 진화
늑대는 사회성이 높은 동물이다. 수컷이 양육에 참여하고 청년 늑대가 교대로 집을 지키며 동생들을 보살피는 등 가족애가 넘친다. 개는 이런 성질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사람과 살 수 있게 됐다.

늑대는 사회성이 높은 동물이다. 수컷이 양육에 참여하고 청년 늑대가 교대로 집을 지키며 동생들을 보살피는 등 가족애가 넘친다. 개는 이런 성질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사람과 살 수 있게 됐다.

올해는 개의 해 무술년(戊戌年)이다. 십이지지 동물 가운데 사람과 교감하는 것은 개가 유일하다. 개는 한때 애완동물로 불리다가 이제는 같이 살아가는 반려동물로 불린다. 실제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자기를 개아빠, 개엄마라고 부르고 개를 자기 자식처럼 여긴다. 개는 어떻게 사람과 통하게 되었을까?

1만8000~3만2000년 전 일부 늑대
턱 작고 이빨 약한 개로 슬슬 진화
사람이 먹다 버린 고기 얻어 먹어
인류 정착하자 함께 주거지 안으로

사람과 같이 살면서 유전자도 변해
녹말 분해 아밀라아제 효소 많아져
반려견은 이제 자연에선 생존 못해

 
 
개와 늑대 유전자는 99% 이상 일치
이미 1억~1억2000만 년 전 북반구에는 ‘살을 가를 수 있는 이빨(裂肉齒)’이 있는 육치류(肉齒類)가 살고 있었다. 물론 몸은 작았고 밤에만 돌아다녔다. 괜히 덩치를 키워 낮에 활동했다가는 공룡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6600만 년 전 다섯 번째 대멸종 시기에 공룡들이 사라지자 그들에게 기회가 왔다. 5500만 년 전에 육치류는 고기를 뜯어먹기에 적합한 턱이 달린 늑대 비슷한 동물로 발달했다. 북아메리카와 유럽에 살았던 미아키스(Miacis)가 바로 그것. 발톱은 다섯 개고 30㎝ 정도의 몸 크기에 꼬리는 길고 다리는 짧은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미아키스는 모든 늑대와 개·족제비·너구리·곰의 공통조상이다.
 
3000만~4000만 년 전 미아키스에서 늑대의 조상 시노딕티스(Cynodictis)가 갈라져 나왔다. 시노딕티스는 현생 늑대보다 훨씬 작았다. 다리는 짧고 몸통은 유연했으며 주둥이는 좁고 길었다. 아무리 봐도 늑대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족제비나 몽구스를 닮았다. 하지만 기후가 변하면서 숲이 사방이 탁 트인 초원으로 변하자 몸통에 변화가 생겼다. 숨어 있다가 사냥하는 동물에서 추격해서 덮치는 동물로 바뀌어야 했던 것이다. 1500만 년 전에야 현생 늑대처럼 짧은 꼬리와 긴 다리 그리고 단단한 몸통을 가진 키노데스무스(Cynodesmus)와 토마르크투스(Tomarctus)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늑대는 언제 늑대가 되었을까? 불과 450만~900만 년 전의 일이다. 이때 여우와 늑대가 갈라섰다. 그리고 180만 년 전에는 코요테가 갈라져 나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늑대는 180만 년 전 늑대와 같은 모습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화석이 말해 준 것이다.
 
그렇다면 개가 늑대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이야기도 화석에서 시작했을까? 아니다. 사람들은 굳이 화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개가 늑대에서 온 줄 눈치챘다. 늑대는 북아프리카, 유라시아, 북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다양한 종으로 분포하며, 생김새와 무리를 이루는 습성 같은 특징이 개와 비슷하다. 게다가 개와 늑대의 유전자는 99% 이상 일치한다. 따라서 개의 조상이 늑대라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게 없는 듯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간단치 않다. 늑대가 사람에게 온 후에 개로 진화했을까, 아니면 늑대가 개로 진화한 후에 사람에게 왔을까?
 
 
개와 사람 가운데 누가 먼저 선택했을까
회색늑대(Canis lupus). 회색늑대는 개와 적어도 3만 년 전에 공통조상에서 분리되었다. 개(Canis lupus familiaris)는 갯과 개속에 속한 회색늑대 종 안에 속한 아종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개의 종류는 품종에 해당한다.

회색늑대(Canis lupus). 회색늑대는 개와 적어도 3만 년 전에 공통조상에서 분리되었다. 개(Canis lupus familiaris)는 갯과 개속에 속한 회색늑대 종 안에 속한 아종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개의 종류는 품종에 해당한다.

불과 7년 전까지만 해도 1만 년 전의 신석기인들이 늑대를 개로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1만8000~3만2000년 전에 이미 개가 존재했다는 증거들이 나타났다. 북아메리카와 시베리아 그리고 중국에서 지금의 개와 비슷한 모양의 두개골을 가진 개의 화석이 인류의 유물과 함께 발견되는 일이 잦아진 것. 이것은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 이전에 개가 등장했다는 것을 말한다.  
 
늑대는 구석기시대에 이미 개로 사람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진화했다. 개는 늑대보다 이빨이 작고 턱이 약했다. 이 개들은 늑대와 비슷한 생활을 하다가 구석기시대에 수렵활동을 하던 사람들 주변에 배회하기 시작했다. 늑대보다 턱이 약하고 이빨이 작은 개들은 불과 무기를 소유하고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먹다 버린 고기를 얻어먹는 게 안전하고 유리했다. 사람들은 초식 포유류의 이동경로도 잘 알고 있었으니 그들을 쫓아다니면 직접 사냥을 하기도 좋았다. 수렵채집인의 입장에서도 개는 유용했다. 곰 같은 대형 육식동물의 접근을 알려 주는 경보장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착하자 개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주거지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유순한 개들을 내쫓지 않고 먹이와 안식처를 제공했다.  
 
일단 사람과 함께 살게 된 개는 유전자도 변했다. 특히 뇌의 발달과 탄수화물 대사에 필요한 부분이 크게 바뀌었다. 농사는 사람들에게 녹말을 섭취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 주었다. 사람에게 얻어먹는 형편이 된 개 역시 여기에 적응해야 했다. 늑대의 유전체에는 염색체마다 녹말 분해 효소인 아밀라아제(amylase) 유전자(AMY2B) 복사본이 한 개씩 들어 있는 데 반해 개의 경우에는 같은 복사본이 2~15개 있으며 늑대보다 평균적으로 일곱 개 더 있다. 올리고당을 소화하는 효소와 장에서 포도당을 흡수하는 단백질 유전자 활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사람과 달리 개의 침에는 아밀라아제 효소가 거의 없다. 개는 제대로 씹지 않고 꿀꺽 삼킨다. 아무리 씹어 봐야 화학적 소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화학적 소화가 일어나지 않으니 녹말이 단당류나 이당류로 분해되지 않는다. 따라서 작은 크기의 당 분자를 먹고사는 충치균이 발생하기 어렵다. 덕분에 개는 양치질을 하지 않아도 충치가 생기지 않는다. 만약 개의 아밀라아제 유전자가 사람처럼 많아졌다면 개는 사람과 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뇌의 발달과 관련된 유전자도 늑대와는 많이 달라졌다. 석기인들이 길들이기 쉬운 동물들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개가 등장한 시기가 신석기시대든 구석기시대든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사람이 개 또는 늑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개 또는 늑대가 사람을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개 품종은 150년 사이 인간 작품  
신석기시대에 인구가 급증했다. 잉여가 생기자 다양한 전문가들이 나타났다. 모두가 농사와 축산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계급도 등장했다. 사람 집단이 커지고 다양화되는 것처럼 개의 쓸모도 점차 늘어났으며 개도 전문화돼야 했다. 사냥에 적합한 개, 집을 잘 지키는 개, 똥을 많이 먹어 치우는 개, 그냥 귀엽기만 한 개로 나뉘었다.
 
우리가 알고 있고 키우고 있는 개들은 불과 최근 150여 년 사이에 사람들이 만들었다. 현대의 개 품종은 무려 400여 종에 달한다. 엄청나게 다양하다. 개와 고양이, 족제비, 사향고양이, 물개와 바다코끼리 같은 육식 포유동물을 식육류라고 한다. 식육류의 다양성은 6000만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자연선택이 만든 결과다. 그런데 고양이와 바다코끼리 사이의 두개골 차이보다 불과 150년 동안 인위선택(人爲選擇)으로 등장한 개 품종 사이의 두개골 차이가 더 크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경비견, 목축견, 애완견은 용도가 다르니 생김새도 다르다. 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두개골의 차이보다 애완견 안에서 나타나는 두개골의 차이가 더 크다. 사람들이 개를 육종하고 고를 때 용도보다는 생김새를 더 많이 염두에 둔다는 뜻이다.
 
늑대가 개가 되는 자연선택의 과정은 최소 450만 년이 걸렸다. 그런데 150년밖에 걸리지 않은 인위선택으로 개는 수백 종이 되었다. 자연보다 인간의 힘이 더 세다. 문제는 우리가 키우고 있는 개는 결코 자연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 매년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개가 10만 마리다. 수만 년 전 개가 사람을 동반자로 선택했을 때 이런 장면을 상상이나 했을까? 자연선택 대신 인위선택에 맡겨진 개의 운명은 너무나도 씁쓸하다.
 
 
늑대가 한국서 멸종위기 아닌 까닭
갯과에는 개속(Canis), 승냥이속(Cuon), 여우속(Vulpes), 너구리속(Nyctereutes) 등 다양한 동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개속에는 코요테와 회색늑대(Canis lupus)가 있다. 이리와 말승냥이는 회색늑대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나라에 살던 늑대, 인도늑대, 히말라야늑대뿐만 아니라 개(Canis lupus familiaris)와 딩고(Canis lupus dingo)도 회색늑대의 아종이다. 딩고는 원래 동남아시아에 살던 개였는데 3000~4000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야생동물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여우는 1급 멸종위기종인데 반해 늑대는 멸종위기종이 아니다. 왜냐하면 늑대는 1967년에 마지막 개체가 포획되고 멸종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멸종해서 멸종위기에서 벗어난 셈이다. 호랑이가 천연기념물이 아닌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정모 서울 시립과학관장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안양대 교수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역임. 『달력과 권력』『공생 멸종 진화』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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