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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왕 임종 이틀 전…“내 머릿속 큰 돌멩이 좀 빼줘”

[스포츠 다큐 - 죽은 철인의 사회] 프로레슬링 전설 김일
김일기념체육관 백종호 관장이 스승의 박치기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일기념체육관 백종호 관장이 스승의 박치기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새 연재 ‘스포츠 다큐-죽은 철인(鐵人)의 사회’를 시작한다. 불꽃처럼 살다 간 스포츠 영웅·스타들을 추억하고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그들의 묘소와 흔적을 찾아보고, 생전에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고인이 남긴 삶의 자취, 당시 시대상, 우리 사회에 끼친 족적 등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첫 여행지는 ‘박치기왕’ 김일(1929∼2006) 선생이 태어나고 묻힌 전남 고흥군 거금도다. 한반도 남단에 고구마처럼 불쑥 튀어나온 고흥반도, 그 아래 국내 일곱째로 큰 섬 거금도가 있다. 한센인들의 눈물과 희망이 서린 소록도를 거쳐야 거금도로 들어갈 수 있다. 지금은 고흥반도-소록도-거금도가 연륙교로 연결돼 있다.
 
 
#반칙왕#은행원#송강호
씨름대회 우승 부상으로 받은 송아지와 함께한 김일(가운데).

씨름대회 우승 부상으로 받은 송아지와 함께한 김일(가운데).

 
김일기념체육관에 도착하자 백종호 관장이 반갑게 맞았다. 그는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반칙왕’의 실제 모델이다. 영화에서는 무기력한 은행 직원 송강호가 상사의 폭력(헤드락)에 대처하기 위해 레슬링 도장을 찾는다. 하지만 한일은행(현 우리은행) 직원이었던 백종호는 1972년 예금 유치를 위해 김일 관장을 찾아갔다가 레슬링에 입문하게 된다. 고향 후배이자 씨름 선수 출신인 백종호가 레슬링을 해 보고 싶다고 하자 선생은 “몸부터 만들게”라며 헬스클럽을 소개해 준 뒤 해외로 나가 버린다.
 
백 관장은 “은행에 다니면서 새벽과 밤에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어요. 6개월 뒤에 선생님이 돌아오시자마자 저한테 박치기 한 방을 먹이시는 겁니다. 눈에서 불꽃이 번쩍 튀었죠. 보통 레슬링 지망생들이 선생님 박치기 한 방 맞으면 다음날 안 나오는데 저는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덕분에 박정희 대통령의 하사금 3억5000만원을 예치할 수 있었죠”라고 회고했다. 그는 은행에서도 지점장까지 승승장구했고, 프로레슬러로 뛰면서 통산 112전 55승57패를 기록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고향 거금도에 전기가 들어오게 해 주십시오”라는 김일 선수의 부탁을 들어줘 제주도를 빼고 국내 섬으로는 처음으로 전기를 가설한 게 1968년이었다. 1975년에는 서울 정동에 김일체육관을 지어줬다. 지금은 사라진 문화체육관이다.
 
김일 선생은 2006년 10월 26일 숨을 거둘 때까지 10년 이상을 서울 을지병원에서 지내며 병마와 싸웠다. 스승의 곁을 지킨 백 관장은 “운명하시기 이틀 전에  ‘백군아, 나 머릿속에 큰 돌멩이가 있는데 그거 좀 빼주라’고 하셨어요. 그게 스승과의 마지막 대화였죠”라고 회상했다.
 
 
#역도산#밀항#필살기
역도산의 1기 문하생인 자이언트 바바(왼쪽), 김일, 안토니오 이노키(오른쪽). 고흥=정영재 기자

역도산의 1기 문하생인 자이언트 바바(왼쪽), 김일, 안토니오 이노키(오른쪽). 고흥=정영재 기자

 
김일기념체육관에는 선생의 유품과 일대기를 정리한 전시실이 있다. 김일은 어릴 적부터 기골이 장대했고 힘이 남달랐다. 씨름대회에서 우승해 송아지를 끌고 오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는 함경남도 출신 역도산이 레슬링계를 주름잡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역도산을 동경한 김일은 부산에서 열린 씨름대회에 출전했다가 밀항을 감행한다. 경찰에 잡혀 1년형을 선고받은 김일은 구치소에 들어간 날부터 역도산에게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는 편지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낸다. 김일의 정성에 감복한 역도산은 그를 1기 문하생으로 받아준다. 2m8의 거한 자이안트 바바(작고)와 정치인으로 변신한 안토니오 이노키가 김일의 동기생이다.
 
역도산은 김일에게 혹독한 수련을 시켰고, 이북에서 필살기로 통하던 박치기를 전수했다. 이마에 피가 나도록 머리를 나무에 문지르고, 몇 미터 밖에서 뛰어와 벽에 부딪히게도 했다. 모진 훈련을 이겨낸 김일은 1963년 세계챔피언에 오르며 전성기를 연다.
 
1965년 김일이 돌아오면서 한국 프로레슬링은 중흥기를 맞는다. TBC(JTBC의 전신)의 흑백 화면으로 중계된 프로레슬링은 온 국민의 거의 유일한 오락이었다. 김일이 반칙을 일삼던 일본 선수를 박치기 한 방으로 눕히는 순간 전국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진돗개#일제#부끄러움
챔피언 벨트를 맨 김일. 오른쪽은 어린시절 일본 순사에게 잡혀갔다 탈출한 진돗개에 대한 사연과 미안함을 담은 동상.

챔피언 벨트를 맨 김일. 오른쪽은 어린시절 일본 순사에게 잡혀갔다 탈출한 진돗개에 대한 사연과 미안함을 담은 동상.

 
김일체육관 입구에는 김일 선생 부부를 모신 묘와 공적탑이 있다. 공적탑 옆에 진돗개 한 마리를 새긴 동상이 눈길을 끈다. 사연은 이렇다.
 
김일의 어린 시절 자신을 유독 잘 따르던 진돗개가 있었다. 일제가 군용 방한복을 만든다며 개들을 잡아갔다. 일본 순사의 강압에 못 이겨 진돗개의 목에 줄을 걸어 순사에게 넘겨준 김일은 하염없이 울었다. 그런데 개 죽이는 다리로 끌려간 진돗개가 1시간 만에 탈출해 김일의 품에 안긴 것이다. 그 일을 평생 부끄러워 하던 김일 선생은 1994년 10월 비석을 세워 진돗개에게 바쳤다. 비문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는 나의 친구 진돗개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던 그 일은 오늘도 한없이 울고 싶어지는 나와 우리 민족 모두의 한과 비애로 남아 있습니다. (중략) 다시는 이땅에 풀 한 포기 개 한 마리도 외세에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30억원#배구장#스토리텔링
김일기념체육관은 2012년 고흥군 금산면민들과 출향 인사들의 모금으로 세워졌다. 대지 매입과 체육관 건립에 약 30억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체육관은 배구 코트 두 개가 나올 정도로 넓다. 실제로 가운데 배구 네트가 설치돼 있었다. 체육관은 주로 동네 청년들이 배구와 족구를 하는 용도로 쓰인다. 수도권 배구·농구팀이 전지훈련을 오기도 한다. 프로레슬링 경기는 딱 두 차례 열렸다. 김일 선생이 일본에서 뛰었던 링도 해체해서 가져왔지만 아직 복원이 안 되고 있다.
 
체육관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녹동항에는 선생의 둘째딸인 김순희씨와 사위 박순오씨가 산다. 박씨는 장인의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와 고향에 자리를 잡았다. 박씨는 “장인은 은퇴 후 고흥의 수산물을 일본에 수출하는 사업을 했는데 귀가 얇아 큰 재미를 못 봤다. 그렇지만 늘 베푸는 분이어서 고향 분들의 절대적인 추앙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분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지자체에서 좀 더 세심하게 스토리텔링을 해 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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