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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TV속의 삶 이야기] [단독] “해외주재관은 김일성·김정일 배지 달지 않아도 괜찮다”

 
2018년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은회색 양복 깃에 김일성·김정일 배지가 보이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018년 육성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은회색 양복 깃에 김일성·김정일 배지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 노동신문 캡처]

2018년 육성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은회색 양복 깃에 김일성·김정일 배지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 노동신문 캡처]

김정은이 공식적인 자리에 배지를 달지 않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4월 15일 김일성 105회 생일에 맞춘 군사퍼레이드뿐 아니라 지난해 4월 25일 강원도 원산에서 열린 북한군 창건 85주년 합동타격시위 사열식 등에도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지 않았다.
 
이에 앞서 2013년 12월 김정일 사망 2주기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도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착용하지 않아 그 배경이 궁금했다.  
2013년 12월 김정일 사망 2주기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는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착용하지 않았다. [사진 노동신문 캡처]

2013년 12월 김정일 사망 2주기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는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착용하지 않았다. [사진 노동신문 캡처]

김정은·이설주 외에도 지난해 4월 김인룡 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뉴욕 유엔 본부에서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가진 언론브리핑에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지 않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중국 내 복수 소식통은 “단둥의 봉제공장·식당 등에서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들과 무역 일꾼들도 배지를 달고 있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백두혈통 우상화의 핵심도구인 김일성·김정일 배지는 북한에서 ‘초상휘장’이라고 불린다. 70년대 초 김정일의 발기로 제작·지급된 김일성 배지와 김일성이 사망한 94년 이후부터 공식적으로 허용 된 김정일 배지는 북한에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의 표시다.  
 
그런 이유로 빨간색 바탕에 김일성·김정일 얼굴이 새겨진 이 배지는 모든 북한 주민이 일상적으로 달고 다녀야 하며 착용 위치도 함부로 할 수 없다. ‘김일성·김정일을 심장으로 모신다’는 충성결의의 상징으로 배지는 심장 위에 달아야 하므로 반드시 왼쪽 가슴에 달도록 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조용한 변화가 일어났다. 김정은 정권 시기 해외대사관에서 근무한 고위 탈북민 김모씨는 “김정일 사망 후 2012년 ‘외국에서 활동할 때 업무의 편의성에 따라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지 않아도 괜찮다’는 김정은 지시가 각국 대사관 당조직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고 있으면 주재국 인사들이 오히려 북한을 독재국가라고 평하는 경우가 더 많아 곤란했다”며 “‘배지를 통한 우상화 방식이 낡았다’는 것을 판단한 김정은의 새로운 조치는 당시 북한 외교관들 속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착용하지 않은 것도 대외적으로 북한을 더욱 자유롭고 개방된 국가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연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이러한 조치는 철저히 대외용이고 대내적으로 충성심 고취는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김씨는 “김정일도 권력을 완전히 잡기 전에는 김일성 배지를 꼬박꼬박 달았지만, 영도자로서의 위상이 확고해진 다음부터는 배지를 떼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김정일도 권력을 완전히 잡기 전에는 김일성배지를 꼬박꼬박 달았지만 영도자로서의 위상이 확고해진 다음부터는 배지를 떼는 경우가 많았다. 1976년 3월 평양교예단 제1기 졸업생들의 졸업 작품발표회에 나온 김정일(왼쪽 사진), 1987년 4월 4.15문학창작단을 시찰하는 김정일 [사진집 우리의 영도자]

김정일도 권력을 완전히 잡기 전에는 김일성배지를 꼬박꼬박 달았지만 영도자로서의 위상이 확고해진 다음부터는 배지를 떼는 경우가 많았다. 1976년 3월 평양교예단 제1기 졸업생들의 졸업 작품발표회에 나온 김정일(왼쪽 사진), 1987년 4월 4.15문학창작단을 시찰하는 김정일 [사진집 우리의 영도자]

 
김씨는 “김정은이 김일성 배지를 떼버리고 신년연설에 나선 것은 최고통치권자로서의 그의 자신만만함과 최고 영도자로서의 배짱·당당함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정은의 은회색 정장과 뿔테 안경,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지 않은 점 등은 그의 자신감과 여유로움·안정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수연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kim.suye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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