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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세상을 혼자 살 수 있다는 이들에게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23) 영화 '오베라는 남자'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냉장고를 정리하고 깔끔한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백발의 중년 남자.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점검한 뒤, 거실로 내려갑니다. 천장에 박힌 고리, 그 고리에 연결된 밧줄. 의자에 올라 밧줄에 목을 걸고 조이는 찰나… 
 
주인공 오베(롤프 라스가드 분)가 자기 집에서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주인공 오베(롤프 라스가드 분)가 자기 집에서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갑자기 앞마당에 들이닥친 불청객들. 오늘 이사 온 사람들 같은데, 주차금지 구역에 차를 대다니. 설상가상 주차실력도 영 형편없습니다. 기어이 우편함을 박살 내고야 말죠. 아, 정말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힘드네요.
 
이 할아버지의 이름은 '오베(롤프 라스가드 분)'. 하루하루 언제 죽을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까칠한 할아버지입니다. 죽으려는 시도는 이 외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데요(차에 가스 채우기, 철도에 뛰어들기 등). 하지만 그때마다 들이닥치는, 절대 반갑지 않은 '이웃'들이 있습니다.
 
오베와 그가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인 와이셔츠 부대(공무원)가 다투고 있다.

오베와 그가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인 와이셔츠 부대(공무원)가 다투고 있다.

 
새로 이사 온 부부, 껄렁껄렁한 학생들, 먹는 것만 좋아하는 청년, 한때 친구였지만 그를 배신(?)한 남자, 강아지를 끼고 사는 아가씨, 그가 와이셔츠 부대라 부르는 공무원 그리고 고양이까지(나만없어ㅜㅜ).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가 죽으려는 순간마다 찾아오기까지 하니 더 반가울 리 없죠.
 
그가 이렇게 '열심히' 죽으려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가기 위해서죠.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좋아한' 아내가 6개월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삶의 이유를 잃어버렸달까요. 40년 다닌 회사에서도 나가라 하니 잘됐죠. 뭐. 알아서 정리되었으니. 
 
6개월 전 세상을 떠난 아내 소냐(이다 엥볼 분)의 무덤에 매일 같이 꽃을 선물하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6개월 전 세상을 떠난 아내 소냐(이다 엥볼 분)의 무덤에 매일 같이 꽃을 선물하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는 그가 죽으려는 순간(진짜로 죽진 못했지만)마다 왜 이렇게 까칠해졌는지 보여주는데요. 왜 사람이 죽을 때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들 하잖아요. 오베도 마찬가지였죠.
 
과거 좋은 성적으로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던 바로 그 날, 직장동료들에게 아들의 성적을 자랑하던 아버지는 사고로 죽게 됩니다. 그가 살던 집 마저 화재로 없어지죠. 집도 가족도 없는 상태에서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 소냐(이다 엥볼 분). 그녀 덕분에 직장도 얻고 결혼도 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기 전 떠난 여행에서 불의의 사고로 아이와 그녀의 다리를 잃게 됩니다. 
 
오베와 소냐의 젊은 시절. 첫 아이가 태어나기 전 떠난 여행에서 마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베와 소냐의 젊은 시절. 첫 아이가 태어나기 전 떠난 여행에서 마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 말이 오베에겐 너무나 가혹하게 적용되는 걸까요? 인생 최고의 순간들에 들이닥치는 최악의 사건들. 이러니 그의 사정도 이해가 됩니다. 괴팍한 성격에 큰소리치기 일수지만, 불평하면서 끝까지 거절하진 못합니다. 애초에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거죠. 그를 달라지게 만든 것 역시 이웃들 때문인데요.
 
특히 옆집에 이사 온 아기 엄마 파르바네(바하 파르스 분) 영향이 가장 큽니다. 운전은 가르쳐 달라, 아이들 좀 봐 달라 등 각종 민원(!)들로 그를 귀찮게 하지만, 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았던 오베를 처음으로 웃게 한 것도, 그의 속 사정을 말할 수 있던 것도 모두 그녀의 덕뿐이죠. 숱한 구박(?)에도 끊임없이 그에게 다가갔던 이유가 뭘까요? 
 
(왼쪽)옆집에 이사 온 이웃 파르바네(바하 파르스 분)와 아이들. 오베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병원에 다녀왔지만 오베는 경찰들에게 잡혀있다.

(왼쪽)옆집에 이사 온 이웃 파르바네(바하 파르스 분)와 아이들. 오베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병원에 다녀왔지만 오베는 경찰들에게 잡혀있다.

 
저는 나름대로 이 '오베라는 남자'에게 숨겨진 반전매력을 찾았습니다. 
먼저, 오베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파이터'입니다. 아내가 단지 휠체어가 학교 구조상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로 채용이 되지 않자, 관련 단체, 정부 할 것 없이 민원을 넣고 고소를 하는 등 끝까지 싸워 냅니다. 결국 학교 입구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다리를 직접 만듦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죠. 
 
또, 다른 '꼰대'들과는 달리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합니다(모든 사람을 싫어하는 게 문제지만). 아내의 제자였던 청년이 '자신은 남자에게 더 끌린다'는 말에 '뭐가 어떠냐'고 반문하는 한편, 가족들에게 커밍아웃 한 것 때문에 쫓겨난 청년을 집에서 재워주죠. 알고보면 따뜻한 남자에요. 
 
오베와 그의 달콤 살벌한 이웃들.

오베와 그의 달콤 살벌한 이웃들.

 
이렇게 불편한 이웃들과 어울리며 차츰 웃음을 찾아가던 그는, 지병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요. 이때도 그의 옆에 있었던 건 바로 그의 이웃들(과 고양이)이었습니다. 생전 옆집 이웃 파르바네에게 남긴 편지에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장례식에 불러 조용히 치러달라 부탁을 했는데요.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죠. 마지막까지 외롭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여러분 주변에도 '세상 혼자 사나' 싶을 정도로 까칠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의 가슴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베라는 남자
영화 <오베라는 남자> 포스터.

영화 <오베라는 남자> 포스터.

원작: 프레드릭 배크만
감독·각본: 하네스 홀름
출연: 롤프 라스가드, 바하 파르스, 필립 베리, 이다 엥볼
촬영: 괴렌 홀버그
음악: 가우트 스토라스
장르: 드라마, 코미디
상영시간: 116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일: 2016년 5월 25일
 
현예슬 멀티미디어 기자 hyeon.yeseul@joongang.co.kr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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