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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세 부총리의 수감…정상서 추락까지 불과 2년이었다

부총리 지낸 실세에서 ‘영어의 몸’으로, 최경환의 인생유전
 
정치 인생의 정점에서 심연으로 추락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년이었다.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마친지 2년 만에 자유를 잃은 그에 대해 여의도에선 “권력이 얼마나 덧없는지 보여주는,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이란 얘기도 나온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4일 구속된 최경환(63) 자유한국당 의원 얘기다.
 
역대 정치권에서 실세로 꼽힌 인물은 많지만, 최 의원만큼 공식ㆍ비공식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발휘한 이는 많지 않다. 그는 친박계 핵심 중의 핵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한 신뢰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사석에서 그에게 "성이 최씨라 최측근이냐"는 농담도 했다.
 
최 의원은 연세대 재학 중에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경제기획원 근무 중에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공무원 생활이 답답하다. 다른 일을 하겠다"며 한국경제신문에 들어갔다. 그의 부친은 사직서를 내겠다는 아들의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렸다고 한다. 그는 "더 잘될겁니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를 정치권으로 이끈 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이회창 전 총리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이 전 총리의 경제특별보좌관이 됐다. 2004년 17대 총선 때 고향인 경북 경산ㆍ청도에 출마해 배지를 달았고, 20대까지 네 번 내리 당선됐다.
 
본선보다 예선이 더 치열했던 17대 대선 전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그는 박근혜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당시 캠프에서 그와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한 김무성ㆍ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통령과 멀어졌지만, 그는 초지일관 ‘최측근’이자 ‘실세’였다. 보스 기질이 있어 단순 참모 역할 그 이상을 했다. 적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를 눈여겨봤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로 발탁했다가 2009년엔 아예 지식경제부 장관에 앉혔다. 당시 친이계가 친박계를 배려하는 상징성을 가진 인사로 평가받기도 했다.
경제부총리를 지낼때의 최경환 의원. 2015년 청와대 회의를 앞두고 뇌물 수수 혐의로 먼저 구속된 당시 현기환 정무수석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제부총리를 지낼때의 최경환 의원. 2015년 청와대 회의를 앞두고 뇌물 수수 혐의로 먼저 구속된 당시 현기환 정무수석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친박계의 ‘좌장’답게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다. 2012년 대선 때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 자연스레 박근혜 정부 출범 뒤엔 최고 실력자가 됐다.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5월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가, 그 1년 후엔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됐다. 명실상부한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였다. 당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지경부 장관 시절 기획조정실장), 서승환 국토해양부 장관(연세대 경제학과 75학번 동기), 최양희 미래부 장관(지경부 산하 R&D 전략기획단원) 등은 모두 최 의원과 인연이 있었다.
 
시중에선 최 의원의 이름을 빗댄 ‘초이 노믹스(Choinomics)’란 말이 등장했다. 장관의 이름을 딴 경제 정책은 사상 처음이었다. 주택담보 인정비율(LTV)ㆍ총부채 상환비율(DTI) 완화 등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41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등 부동산 살리기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서울중앙지법에 나온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 장진영 기자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서울중앙지법에 나온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 장진영 기자

20대 총선때 그는 이른바 '진박 감별사'가 됐다.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도록 해주시기 부탁드린다"고 발언한 뒤, 최 의원이 지원유세를 간 후보는 진실한 친박, 곧 진박 후보가 됐다. 총선 결과는 자유한국당의 패배. 이후부터 최 의원의 정치 인생도 내리막길을 탔다. 탄핵국면이 시작되면서는 추락하는데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해 3월 검찰은 최 의원이 자신의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이를 채용토록 중소기업진흥공단에 강요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자유한국당에선 그를 적폐로 몰아가며 출당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국가정보원이 경제부총리이던 최 의원에게 특수활동비 1억원을 뇌물로 줬다는 의혹은 결정타가 됐다. 그는 “사실이라면 동대구역에서 할복자살하겠다”고 버텼지만, 법원은 “범죄 혐의 소명되고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될 경우 그의 화려한 정치 인생은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1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았을 경우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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