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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쏭부부의 잼있는 여행]48 달빛 반사된 설산을 본적 있나

유럽 최고봉 코카서스산맥 엘부루스산에서 바라본 일몰.

유럽 최고봉 코카서스산맥 엘부루스산에서 바라본 일몰.

엘브루스(Elburs)산은 러시아의 남서쪽 끝부분에 있는 휴화산이에요.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가장 높은 동쪽 봉우리의 높이는 5642m죠. 이 산이 유명한 이유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 때문이에요.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로인 코카서스 산맥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로, 여름 시즌이면 유럽의 꼭대기에 발 도장을 찍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고 있어요.  
5000m급 고봉을 자랑하는 엘브루스산.

5000m급 고봉을 자랑하는 엘브루스산.

우리 부부가 엘브루스 베이스캠프 마을인 테스콜(Terskol)에 도착한 시기는 10월 초.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대의 마을이라서 벌써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어요. 그래도 한겨울은 아니라서 엘브루스로 향할 수 있었죠. 

엘브루스는 해발 3750m 지점까지 케이블카와 리프트가 운행 중이라 하루만 걸어 올라가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어요. 대신 5000m가 넘기 때문에 고소 적응을 위해 3~4일 일정으로 오르는 게 일반적이에요. 우리 부부는 인도 북부 히말라야에서 한 달 이상 지내다 와서 고소 적응 없이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오기로 했어요. 대신 안전을 위해 가이드를 고용했어요. 가이드 비용으로 미화 350달러를 지불했어요.
 3500m 지점까지 운행 중인 케이블카.

3500m 지점까지 운행 중인 케이블카.

 3800m 지점까지는 1인용 리프트를 타고 오른다.

3800m 지점까지는 1인용 리프트를 타고 오른다.

첫날 일정은 간단했어요. 오전 10시에 장비 점에서 미리 빌려 놓은 장비를 찾아 가이드 차량으로 케이블카 입구로 이동한 뒤 케이블카와 리프트를 타고 3750m까지 올랐어요. 숙소에 짐을 풀고 일정 끝! 리프트에서 내려서 걸은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어요. 정상에 가지 않아도 케이블카와 리프트를 타면서 빙하를 볼 수 있었어요. 빙하를 조금도 걷지 않고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죠. 게다가 이곳은 겨울에 스키장이 운행돼서 스키 곤돌라가 빙하 옆에 매달려 있었어요. 빙하 옆, 해발 4000m의 스키장이라니, 굉장히 이국적인 풍경이었어요.

 해발 3900m에 자리한 숙소.

해발 3900m에 자리한 숙소.

대부분의 등산객은 리프트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있는 원통 모양 배럴 산장에서 묵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우리는 가이드가 소개해 준 3900m 지점에 있는 개인 산장에서 머물렀어요. 1박에 1000루블(약 1만8000원). 도미토리 치고는 비쌌지만, 방에서 보이는 경치는 끝내줬어요. 코카서스 산맥의 파노라마 전망이 다 내려다 보였거든요. 

방에서 내다 보이는 뷰가 일품이다.

방에서 내다 보이는 뷰가 일품이다.

저녁을 먹고 서둘러 눈을 붙였어요. 정상에 가려면 자정부터 걸어야 해요. 정상까지는 걸어서 10시간이 걸리는데, 스노캣(snowcat)이나 스노모빌(snow mobile)을 타면 최대 4900m 부근까지 걷지 않고 올라갈 수 있어 3시간 가량을 절약할 수 있어요. 하지만 편도 1인당 10만 원이나 하는 비용이 부담돼 우리는 걸어가기로 결정했어요. 다행히 보름날이라서, 한밤 중인데도 낮처럼 주변이 환했어요. 설산 정상이 달빛에 반사돼 선명했어요. 
한밤에도 밝은 엘브루스산.

한밤에도 밝은 엘브루스산.

출발지점부터 눈이 쌓여있어서 크램폰(아이젠)을 신발에 장착했어요. 정상까지 끊임 없는 오르막 눈길을 걸어야 해요. 힘들긴 했지만 맑은 날씨 덕에 앞에 뚜렷이 보이는 정상과 하늘을 수놓은 별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파노라마로 펼쳐진 코카서스 산맥을 바라보며 다시 힘을 내서 걸었죠.

출발한 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아래에서 눈부신 불빛이 다가왔어요. 스노캣(설상차)이에요. 스무 명 정도의 사람을 태운 스노캣은, 우리를 앞질러 우리가 한 시간쯤 더 걸어야 하는 높이에 사람들을 내려줬어요. 부러움이 솟구치던 차에, 스노모빌 한대가 다가오더니 3만 원만 내면 사람들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네요. 솔깃했지만 벌써 두 시간 걸어온 게 아까워서 그냥 걸어가기로 헀죠.
스노우 캣이 부러운 재민.

스노우 캣이 부러운 재민.

올라갈수록 경사가 급해져서 쉬는 빈도가 잦아졌어요. 쉴 때마다 간식을 먹고 물을 마셔줬어요. 그런데 점점 고도가 높아지니 페트병에 담긴 물이 꽁꽁 얼어버리고 말았어요. 다행히 보온병에 차를 담아와서 차라도 마실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정상에 오를 땐 꼭 보온병에 물을 담아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달빛을 벗 삼아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어느덧 동쪽에서 붉은빛이 서서히 올라왔어요. 드디어 일출이에요! 해가 뜨니 하얀 설산은 분홍빛으로 빛났어요.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나니.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나니.

엘브루스산의 일출. 설산이 분홍빛으로 변했다.

엘브루스산의 일출. 설산이 분홍빛으로 변했다.

안 그래도 6시간 째 걷기만 하다 보니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는데 햇빛의 따스함을 받아 에너지를 재충전했어요. 해가 뜨니 주변 경치도 더 잘 보여서 감탄이 절로 나왔죠. 내려다보니 출발지점이 코 앞인 것 같은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정상도 가까워 보이는데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서 조금 걱정되기도 했어요.

잊지 못할 엘부르스산에서의 라면.

잊지 못할 엘부르스산에서의 라면.

출발 8시간째. 배가 고파서 점점 걷는 속도도 느려졌어요. 생각나는 건 오직 따뜻한 라면 국물! 힘 없는 발걸음으로 좀비처럼 걸어서 오전 9시쯤 새들(Saddle)지점에 도착했어요. ‘새들’은 두 봉우리의 가운데 부분으로 말 안장처럼 생겨서 새들(Saddle)이란 명칭을 얻었어요. 엘브루스 산의 새들은 해발 5416m지점으로, 여기서 동쪽 봉우리와 서쪽 봉우리로 나뉘게 돼요. 동봉이 서봉보다 20m 더 높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쪽 봉우리로 향하죠. 우리 부부도 역시 새들에서 잠시 쉬고 동쪽 봉우리로 향했어요. 나머지 200m를 더 힘내서 오르기 위해 따뜻한 라면도 끓여 먹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어요. 

엘부루스산 정상에서 잼쏭 깃발을 흔들다!

엘부루스산 정상에서 잼쏭 깃발을 흔들다!

라면의 힘을 받아 정상으로 출발했어요. 마지막 200m 구간은 경사가 급해서 안전장치를 하고 가야 해요. 2016년에 두 명의 벨기에 여행자가 목숨을 잃은 구간이기도 해요. 얼음길이라서 아이스 엑스(Ice axe)와 크램폰(아이젠)은 필수이고요. 다행히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서 안전장치를 걸고 갈 수 있어 안심이었어요. 가파른 오르막에 오르니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코카서스 산맥이 모두 내 발밑에 있었거든요. 게다가 저 멀리 조지아의 유명한 산 중 하나인 우쉬바(Ushba)산도 보였어요. 엘브루스에서 조지아 국경까지는 2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산 건너편의 조지아 땅도 내려다보였죠. 

뾰족한 엘부루스산 정상.

뾰족한 엘부루스산 정상.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완만한 언덕이 이어지고 그 앞으로 드디어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어요. 아래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조그마한 정상이었어요. 고도가 높아서 숨은 점점 가빠졌지만,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정상 도착시각은 정오 무렵. 생각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정상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감사했어요. 360도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12시간의 수고을 잊게 해줬어요 어렵게 도착한 정상이라 좀 더 오래 머물며 사진도 많이 찍고 싶었지만 바람도 점점 세지고 다시 돌아갈 길도 멀어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하산하기로 했어요.
올라온 길을 따라 하산하는데 긴 시간 걷다 보니 다리에 힘도 풀리고 신발도 불편해서 내려가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어요. 여기서도 스노모빌을 타면 금방 내려갈 수 있다는 말에 잠시 흔들렸어요. ‘오르막에서도 타지 않은 스노모빌을 내리막에서 탈 수는 없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이번에도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엘브루스산 등반 인증서.

엘브루스산 등반 인증서.

오후가 되니 칼바람이 몰아쳐서 몸은 더 지쳐가고 쉬다 걷기를 반복하길 여러 번.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일 무렵 출발한지 18시간 만에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바로 테스콜 마을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리프트와 케이블카 운행이 끝난 시간이라서 어쩔 수 없이 1박 더 머물고 가기로 했어요. 몸이 너무 지치기도 했고요. 전날 3시간 밖에 못 자고 출발한 터라 숙소로 돌아와 저녁도 먹지 않고 바로 뻗어 자버렸어요. 배고픔보다 졸림이 더 컸거든요.
엘부루스산 고도 5642를 이름으로 단 지역 맥주.

엘부루스산 고도 5642를 이름으로 단 지역 맥주.

엘브루스 산 등정을 기념하는 특별한 저녁.

엘브루스 산 등정을 기념하는 특별한 저녁.

다음 날 테스콜 마을로 내려와 엘브루스 산 등정을 기념하는 특별한 식사와 맥주로 엘브루스 일정을 마무리했어요. 식당에서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식재료인 마요네즈로 엘브루스의 5642m를 그려줬어요. 그리고 이 지역에만 파는 특별한 ‘5642’ 맥주를 곁들였죠. 등반가이자 식당 주인인 아저씨가 등정 인증서도 만들어 줬어요. 
 피부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피부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렇게 엘브루스산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쳤어요. 단, 한 가지 지켜주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피부에요. 밤에 출발한 까닭에 선크림을 미처 바르지 못하고 출발했더니 낮에 눈에 반사된 강한 자외선으로 피부가 다 타버린 거예요. 엘브루스에 가신다면 꼭! 밤에 출발하더라도 선크림을 바르고 출발하길 바라며, 이상으로 잼쏭부부의 유럽 최고봉 엘브루스 도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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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