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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진심으로

축하와 질투
롤프 도벨리 『스마트한 선택』중에서

이윤정의 공감 대백과 사전

우리는 지난 세기에 살았던 기업가들을 질투하지 않는다. 식물이나 동물을 질투하는 일도 없다. 지구 반대쪽의 백만장자를 질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가까이 이웃은 질투한다.

그 여자의 사전
축하: 질투와 뒤범벅된, 때로는 질투를 가장한 마음
질투: 축하를 보내며 속으로 꾹꾹 눌러야 하는 마음

 
“시댁 조카가 ○○대학교 ○○과에 합격했다는데요. 여기 전망 있나요?”  
 
주부 카페에 이맘때면 종종 등장하는 질문이다. 진지하게 그 학교 졸업생이나 졸업생 부모가 해주는 조언이 몇 개 뜨지만 곧이어 물어본 사람 마음 뜨끔하게 만들 댓글이 훅 등장한다. “질투하지 마시고요. 그냥 진심으로 축하해주세요.”  
 
축하할 일들이 많아지는 연말 연시다. 합격과 승진 소식이 잇달아 들려온다. 그런데 우리는 남의 경사에 얼마나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걸까. 이런 일에 관해서라면 인간 관계나 심리학의 전문가들께서 분석하신 자료들이 많겠지만, 일개 비전문가인 나도 나름의 ‘썰’을 풀 수는 있을 것 같다. 살면서 수십 년 동안 이런 일을 적어도 수백 번은 몸으로 겪어왔기 때문이다. 남의 경사를 볼 때마다 속에서 솟아나는 축하의 마음과 질투심 사이의 모순과 갈등 때문에 솔직히 얼마나 많이 괴로워했던가.  
 
그러니 내 맘대로 축하와 질투의 변증법 이론을 풀어보자면, 질투와 갈등 사이 마음을 정하는 두 가지 잣대는 ‘경사’의 거리감과 ‘관계’의 거리감이라 하겠다. 먼저 남의 ‘경사’가 나와 거리가 먼 일일수록 축하하기가 쉬워진다.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축하할 수 있는 일로는 해마다 돌아오는 남의 생일, 혹은 남의 집 자녀의 출산이 있겠다. 질투해 봐야 따라 할 수도 없는, 나와는 ‘같은 지구별에서 태어나서 기쁜’ 정도의 상관관계만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같이 입시를 치른 집안 친척의 합격, 직장 동료나 동창의 승진처럼 남의 경사가 내 일이나 관심사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속 계기판의 바늘은 축하보다는 질투 쪽으로 기울어진다. 겉으로는 축하의 말을 보내면서도 속으로는 꼬투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다. ‘거기 나와 봐야 취직도 잘 안 될 텐데’ ‘어쩐지 상사에게 너무 비굴한 자세다 싶었어’….  
 
그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괜히 걱정인 듯 한 마디 붙이면서 질투의 속마음을 들키기도 한다. “학비가 비쌀 텐데”“일이 바쁠 테니 건강 관리 잘해야겠다” 심지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다른 사람 시기 안 받게 조심해야겠다.”  
 
물론 ‘경사’의 거리가 가까워도 결과가 세속적으로 자기보다 아랫단계다 싶으면 언제든 그건 100퍼센트 축하로 돌아설 수 있다는 예외가 있다. 유치하지만 대학의 소위 ‘랭킹’이 우리 아이보다 낮은 학교라든지, 먼저 승진한 나보다는 낮은 직위에 오른 다른 회사의 친구라든지.  
 
두 번째 요인은 그와 나의 관계다. 뭐니뭐니 해도 내가 가장 기뻐해 줄 경사란 내 부모나 자식의 경사겠지만 진짜 가까운 친구라면 조건없는 축하를 보내준다. 아마도 자신의 인간관계를 점검해볼 때 가장 소중히 여기고 싶은 사람들은 나의 경사에 자기 일처럼 온 마음을 다해 기뻐해 주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두 가지 요인을 다 종합해서 생각해보니 내가 진심으로 가장 큰소리로 기뻐해 주었던 일은 대학 동창이 암투병을 끝내고 셋째 아이를 가졌을 때였다.  
 
나는 물론 무슨 일에서는 축하의 마음보다는 질투심이 60퍼센트 정도로 앞서는 사람이다. 젊었을 땐 더 심했다. 그런데 온전히 건네지 못한 축하에 조금씩 후회가 쌓이는 걸 느꼈다.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일은 예전 직장 동료가 큰 상을 받았을 때 진심으로 축하의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것이다.  
 
또 살면서 내가 축하 받을 일을 몇 번 겪고 진심 어린 축하의 말을 들으면서 뒤늦게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알게 됐다. 그러면서 남을 축하하는 일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일부러 남의 경사에 호들갑을 떨면서, 축하의 말을 요란하게 하는 버릇을 들이려고 노력했다. 왠지 그러면서 나도 나이 들어 철드나 보다 싶었다.  
 
요즘 며칠 사이 유난히 주변에 축하할 일들이 많았다. 나는 열심히 축하의 말들을 건넸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왜 이렇게 내 진심이 변했나 곰곰 생각해보니, 그건 꼭 마음 훈련을 한 덕택만은 아니었다. 이제 내 주변의 사람들은 도저히 축하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아주 큰 성공들을 거두고 있었다. 질투심을 품는 것 따위로 따라잡을 수 없는, 나와는 아주 거리가 먼, 인생의 노력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를 아름답게 거둬들이는.  
 
말하자면 질투의 강제적 포기상태에 이르니 100퍼센트 순도의 축하가 가능해진 것이다. 어쩌면 허탈하기도 하지만 이제 해도 바뀌고 또 한 살 더 먹으니 더욱더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마음을 닦고 싶다. 축하의 음덕을 쌓다 보면 나에게도 축하 받을 일이 생기지 않을까 은근 기대하면서.
 
 
이윤정 : 칼럼니스트. 사소하고 소심한 잡념에 시달리며 중년의 나이에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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