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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칙령대로 올리브유 72% … 장인이 빚는 비누

마르세이유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지중해 연안의 항구 가운데 으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과 닮았다. 항구의 시끌벅적함은 생동감으로 넘치고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과 섞이는 개방성은 도시 분위기를 진취적으로 이끈다. 게다가 기후까지 좋다.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73>
마리우스 파브르

 
마르세이유와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은 찬란한 햇살과 풍광으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주변의 프로방스와 아를, 칸, 니스, 그라츠로 예술가들이 모여든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고흐가 살았으며 자살로 삶을 마무리 한 아를, 영화제가 열리는 휴양도시 칸과 니스, 향수의 본향이라 할 그라츠, 한 집 건너 비누 가게가 들어선 마르세이유….  
 
이들 도시의 축복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딜 가도 넘치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이를 잘 말해준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 예술적 품격으로 가득 찬 도시에 넘쳐나는 즐길 거리, 볼거리는 머무는 내내 그치는 법이 없다.  
 

인공 화합물 없이 올리브유와 소다와 바닷물로만
몇 년 전 마르세이유 마리우스 파브르 비누 박물관에서 본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관광지를 빗겨난 도심의 한 건물로까지 찾아온 일본인 아줌마들 때문이다. 도대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자신만의 특화된 관심을 추적해 확인하는 아줌마들의 표정은 자못 진지하고 흐뭇해 보였다. 몰스킨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 하던 아줌마들은 날카로운 질문으로 도슨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제 일본인들의 개별 관광은 특화된 영역의 전문성을 좇는 깊이 있는 탐구 여행으로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유럽을 이야기할 때 지중해 연안 도시들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그리스에서 이태리를 거쳐 프랑스, 스페인, 영국으로 이어지는 문명사의 이동 루트와 일치하는 까닭이다. 바다의 크기만으로 지중해를 얕잡아 볼 수 없는 이유다.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을 품고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지중해의 의미는 거대하다.  
 
중세엔 아라비아의 과학 역량이 유럽을 압도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산과 알칼리의 특성을 일찍부터 파악했던 이슬람 문화의 수준은 대단했다. 온갖 물건을 만들어낸 파급 효과가 지중해 연안으로 번졌다. 질 좋은 비누의 제법이 프랑스 남부 연안 도시로 전해진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올리브 기름에 소다를 섞고 바닷물을 이용해 비누로 만든 블랙 솝(Black Soap)은 이렇게 유행이 됐다.  
 
큰 도시인 마르세이유 일대가 비누 생산의 본산 역할을 자연스레 맡게 된다. 비누 원료인 올리브가 풍부하게 생산되고 면직물인 린넨 생산에 필요한 수요 역시 넘쳤던 까닭이다. 오리엔탈식 비누 제법은 오랜 세월 전승돼 마르세이유 비누로 정착된다. 길게 보면 천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마르세이유 비누다. 천 년의 세월이라면 유명세는 신화로 굳어지게 마련이다. 마르세이유 비누를 뜻하는 ‘Savon de Marseille’의 표식은 이제 고유명사로 통용된다. 마르세이유는 모르더라도 ‘마르세이유 비누’ 만큼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터다.  
 
오늘날에도 마르세이유 시내에서는 비누 가게가 많다. 여기서 거무튀튀한 비누 한 덩이를 샀다면 제대로 고른 거다. 인공 화합물이 섞이지 않은, 올리브유만으로 만들어진 비누만이 정통 마르세이유 비누다. 알록달록 화려한 색채와 좋은 향이 풍기는 비누는 미안하지만 짝퉁이다.  
 
전통의 마르세이유 비누는 얼핏 보면 빨래 비누와 똑같다. 향도 나지 않고 거칠게 자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막 비누처럼 보인다. 올리브를 착즙해 만든 기름이 원료이니 국방색 열매 색깔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공 향을 넣지 않았으니 당연히 냄새도 나지 않는다. 널따란 판에 부어 굳힌 비누를 잘라냈으니 공장에서 찍어낸 비누 같은 매끄러움도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전통 제법으로 만들어지는 비누만을 국가가 마르세이유 비누로 인정한다. 독일의 맥주 순수령 마냥 프랑스의 콜베르 칙령엔 비누 제법을 정해놓고 있다. 칙령의 내용이란 뻔하다. 과거의 재료와 제법만을 완고하게 지켜야 하는 강요뿐이다.  
 
이를 따르기엔 비누제조 업체의 부담이 너무 커졌다. 요즘 세상에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방식의 비효율을 대신 감당해줄 이들이 있을까. 점차 쇠퇴해 가는 마르세이유 비누를 되살려 낸 것은 바로 까다로운 일본의 소비자들이다. 그들은 비누의 진가를 알리고 생산을 독려했다. 죽어가던 프랑스의 비누 산업이 명맥을 유지하게 된 숨은 이유다.  
 
세안과 목욕은 물론 세차까지 가능
이제 정통 마르세이유 비누를 만드는 업체는 단 네 곳만 남았다. 프랑스 정부는 이들 업체를 살아있는 문화유산기업으로 지정했다. 제품엔 인증마크를 붙여 다른 제품과 구분시키고 있다. 원조의 자부심이 통용되도록 지원하는 국가의 섬세한 배려는 효과를 보고 있다. 진짜 마르세이유 비누엔 ‘마르세이유 비누’란 표식이 각인돼 있다. 수제 스탬프를 일일이 고무 망치로 두들긴 흔적은 여느 공장에서 찍어낸 그렇고 그런 비누가 아님을 보여준다.  
 
마르세이유에서 샀다고 모두 원조 마르세이유 비누가 아니다. 마치 장충동에서 먹은 족발이 모두 원조의 솜씨가 아니듯. 진짜는 요란하지 않다. 뒤편에 숨어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눈 밝은 소비자들만이 진짜를 알아본다. 진정 좋은 것을 향한 변치 않는 진심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원조 마르세이유 비누의 진짜를 찾고 싶다면 ‘마리우스 파브르(MARIUS FABRE)’가 우선이다. 관련 협회를 이끌고 있으며 마르세이유 비누 박물관도 직접 운영한다. 가족 경영으로 4대째 비누만 만들어온 전통은 프랑스 내에서도 화제다.  
 
마리우스 파브르의 올리브 비누는 몇 종류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누의 효능은 다양하다. 세안과 목욕은 기본이다. 물에 희석해 주방과 거실을 닦고, 차의 대시 보드를 청소하는 데도 좋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물론 심지어 말을 목욕시킨다. 비누 섞인 물을 화초에 뿌리면 진딧물도 없어진다. 지금과 같이 세제가 분화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쓰였던 마르세이유 비누의 용법이다.  
 
마리우스 파브르는 여전히 루이 14세 때 제정된 콜베르 칙령대로 비누를 만든다. 낡은 공장의 커다란 가마솥엔 올리브유와 소다가 섞여 끓고 있다. 비누 반죽은 오랜 경험의 장인들이 자극을 느낄 수 없을 때까지 혀끝으로 맛을 본다. 독한 화학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아 가능한 일일게다. 올리브유의 함량표시인 72%란 숫자가 들어있는 내용의 전부다.  
 
예전의 마리우스 파브르는 사용자가 원하는 크기로 잘라 쓰는 길다란 막대기 모양이었다. 나무상자에 담긴 비누는 철사와 전용 칼로 자르는 재미까지 줬다. 요즘 세상에 한가하게 비누까지 잘라 쓰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지금은 200g, 400g 단위의 정육면체로 재단해 판매한다. 평소 쓰던 것과 다른 이질적인 비누 형태가 낯설고 불편할 것이다. 불만을 털어놓아도 소용없다. 마리우스 파브르는 “정통 마르세이유 비누란 이렇게 생겼다”고 주장할 테니.  
 
마리우스 파브르의 진가는 처음부터 알아차리기 힘들다. 순수한 비누성분의 부드러움이 피부에 스며드는 자각이 있을 때까지. 얼굴과 피부는 저절로 느끼고 안다. 지금까지 얼마나 독한 화학물질에 시달려왔는지. 이제 마리우스 파브르 하나로 세수에서 목욕까지 씻는 걸 모두 해결한다. 진정 좋은 비누를 알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윤광준 :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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