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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걷는다 내일도 걸을 것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 특별전 가보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 II’ 석고원본 (1960)이 서울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설치된 모습.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 II’ 석고원본 (1960)이 서울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설치된 모습.

자코메티의 아내를 모델로 한 작품 위주의 ‘아네트 방’

자코메티의 아내를 모델로 한 작품 위주의 ‘아네트 방’

자코메티의 동생을 모델로 한 작품 위주의 ‘디에고 방’

자코메티의 동생을 모델로 한 작품 위주의 ‘디에고 방’

사진작가 엘리 로타르를 모델로 한 작품 위주의 ‘로타르 방’

사진작가 엘리 로타르를 모델로 한 작품 위주의 ‘로타르 방’

‘철사 같이 가늘고 우뚝 선 인물상을 만든 조각가’, 좀 심도 있게 표현하자면 ‘실존주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예술가’, 좀 속되게 표현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조각을 만든 작가’. 바로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다. 그의 국내 최초 회고전(12월 21일~2018년 4월 15일)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막을 올렸다.  

 
프랑스 파리 자코메티 재단이 주최하는 전시로, 지난 9월까지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과 겹치는 부분도 있고 다른 특징도 있다. 테이트모던 전시는 1930년대 초현실주의 조각을 비롯해 전시대를 아우른 반면, 서울 회고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홀마크가 된 철사 같은 인물 입상 및 눈빛은 형형하고 몸은 녹아내리는 듯한 인물 흉상에 집중한다. 전시장 구성도 시대별이었던 테이트와 달리 자코메티의 동생, 아내, 친구 등 모델이 된 인물 중심으로 구분했다.  
 
작품 수는 조각 40여 점, 회화 10여 점을 포함해 총 116점으로 테이트 회고전보다는 적은 편. 그러나 테이트 때와 달리 재단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는 석고 원본이 15점 나왔다는 것이 주최측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특히 자코메티의 걸작으로 꼽히는 188cm 높이 조각 ‘걸어가는 사람’(1960)의 석고 원본이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다. 이 작품의 브론즈 에디션 6점 중 하나가 2010년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약 1158억원에 팔려 세계에서 둘째로 비싼 조각이 됐다(첫째는 역시 자코메티의 조각인 ‘가리키는 사람’(1947)으로 2015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1575억원에 낙찰됐다). 중앙SUNDAY S매거진이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을 미리 찾았다.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 옆에서 포즈를 취한 프랑스 파리 자코메티 재단의 큐레이터 크리스티앙 알랑디트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 옆에서 포즈를 취한 프랑스 파리 자코메티 재단의 큐레이터 크리스티앙 알랑디트

“죽음과 살아있는 개인을 구별하는 것은 시선”
‘걸어가는 사람’ 석고 원형이 있는 마지막 방은 ‘묵상의 방’이라 불린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지고 팔다리가 기괴하게 긴 인간이 있다. 마지막 남은 근육까지 뒤틀리고 쪼그라진 모습에 보는 사람까지 고통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걸어갈 힘도 없을 것 같은 그 인간은 크게 보폭을 떼며 성큼 발을 내딛는다. 크게 뜬 눈에 두려움이 스며있지만, 형형하게 내쏘는 빛으로 마주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무너져내릴 듯 약하면서도 결의에 찬 모습이죠.” 파리 자코메티 재단 큐레이터 크리스티앙 알랑디트가 설명했다.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유럽인의 초상, 나아가 인류 전체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끔찍한 일들을 겪고도 인간은 계속 걸어서 전진할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있는 것이죠.”  
 
고백하건대 자코메티의 철사 같은 인간 입상을 보면서 그 수직성과 둘러싼 공간과의 관계, 울퉁불퉁한 표면에만 집중했을 뿐 조그만 얼굴의 눈은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건 큰 실수였다. “자코메티는 그림이건 조각이건 눈부터 시작했습니다. 모델의 시선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완성하는 사람 얼굴은 해골 같지요. 그런데 생생한 눈과 시선이 있기에 해골과는 다른 것입니다.”(알랑디트 큐레이터)  
 
실제로 자코메티는 이렇게 말했다.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것은 죽은 자의 해골에 불과하다. 결국 죽음과 개인을 구별해주는 것은 시선이다.”
 
자코메티의 벗인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역시 견해가 비슷했다. 그는 자코메티의 전시 서문으로 ‘절대의 추구’(1948)과 ‘자코메티의 회화’(1954)라는 중요한 글을 남겼다. 불문학자 지영래 교수에 따르면, 사르트르에 있어서 인간의 얼굴은 시선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의식이 가시화된 부분이다. “얼굴의 의미란 바로 ‘눈에 보이는’ 초월성이 되는 것이다”라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자코메티는 바로 그것을 구현해내는 작가이며, 그래서 “조각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것이다. 이번 ‘걸어가는 사람’은 거무스름한 브론즈가 아니라 석고 원본이기 때문에 그 형형한 눈빛을 더 제대로 볼 수 있다.  
 
“석고 원본은 충격에 약하기 때문에 사실 재단에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북핵 위기에다가 포항에서 지진이 나니까 바로 전화가 오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이렇게 왔습니다.”(전시 주관사인 코바나 컨텐츠 김건희 대표)
 
자코메티의 유화 ‘자크 뒤팽’(1965년경)

자코메티의 유화 ‘자크 뒤팽’(1965년경)

삐쩍마른 인체 조각으로 구현된 실존주의
자코메티의 아내를 모델로 한 브론즈 입상 ‘서있는 아네트’ (1954년경)

자코메티의 아내를 모델로 한 브론즈 입상 ‘서있는 아네트’ (1954년경)

자코메티에게 동생 디에고는 중요한 조수이자 자코메티의 아내 아네트와 더불어 가장 작품에 빈번하게 등장한 모델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전시는 디에고 방부터 시작하는데, 주로 흉상이 많다.  
 
한편 아네트의 방에는 흉상 석고원본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 미간의 주름으로 고뇌를 드러내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자코메티보다 22살 연하였고 아름다웠던 아네트의 당시 모습에 비해 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아침드라마식 해석을 하자면, 자코메티가 아네트의 속을 엄청 썩였기 때문에 그 내면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고행하는 불상처럼 금욕적으로 보이는 작품과 달리 자코메티는 여성편력이 심했고, 말년에도 아네트 대신 정부인 카롤린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수직 인간 조각들에는 고대 이집트 조각의 영향도 나타납니다. 그는 동서고금 다양한 문화에서 영감을 끌어냈습니다. 책을 통해 접한 동아시아의 조각들도 모작을 만들어보며 연구하곤 했지요.”(알랑디트) 그는 실존주의 철학을 연구하러 파리에 온 일본 철학자 야나이하라 이사쿠와 교유하며 동아시아의 미학도 간접체험했다.  
 
자코메티의 주요 벗들은 모두 실존주의 철학과 관련이 있었다. 전시장에서는 부조리극의 거장 사무엘 베케트와 찍은 사진,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1961년 파리 공연을 위해 자코메티가 만든 나무 조각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앙상하고 볼품없는 나무 한 그루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필수요소다. 베케트의 연극은 인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세상에 내던져진 비희극적인 상황을 미니멀하고 추상적이고 여백을 끌어안는 연출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모두 자코메티 작품의 특성과 절묘하게 연결된다.  

인간이 어떤 역할이나 사명을 본질적으로 갖고 태어난 게 아니라 그냥 어느 날부터 세상에 존재하게 된 상황을 사르트르 식으로 표현하면 “실존이 본질에 우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인간의 실존을 자코메티의 조각은 “질문을 던지는 출현의 형태”로 담아낸다고 사르트르는 평했다. 자코메티의 인간 형상은 관람자가 언제나 거리를 두고 보아야 하며, 더 가까이 간다고 해서 결코 본질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코메티의 유작 브론즈 ‘앉아있는 남자의 흉상(로타르 III)’(1965-66)

자코메티의 유작 브론즈 ‘앉아있는 남자의 흉상(로타르 III)’(1965-66)

자코메티의 브론즈 ‘자켓을 입은 남자(1953)

자코메티의 브론즈 ‘자켓을 입은 남자(1953)

‘앉아있는 남자’(1965) 둘이 마주보고 있는 방은 흥미롭다. 하나는 석고 원형, 다른 하나는 브론즈다. 무릎을 손에 얹은 채 단정히 꿇어앉은 자세, 머리카락이 없는 머리, 조금 위를 향해 든 턱과 시선, 앞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꿰뚫어 그 너머를 보는 듯한 눈빛…. 모든 것이 수행중인 동양의 승려를 연상시킨다.  
 
‘앉아있는 남자’의 모델은 사진작가이자 영화 촬영감독인 엘리 로타르(1905~1969)다. 20대에 파리 도살장 르포 사진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2차 대전 후 술에 빠져 지내던 인물로, 자코메티 말년에 집중적으로 모델이 되었다. 전시장 벽에 크게 붙어있는 로타르의 사진을 보면 그가 왜 영감의 원천이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눈매에는 강한 에고를 동반한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다. 실존적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슬픔 말이다.  
 
‘앉아있는 남자’는 자코메티의 유작이다. 그는 이 조각의 점토원형에 젖은 천을 씌워놓은 채 심장질병의 발작으로 병원으로 향했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디에고가 작품을 석고로 뜨고 다시 브론즈로 떴다.  
 
자코메티의 펜 드로잉 ‘두상’ 자크 뒤팽의 자코메티에 대한 저서 표지 프로젝트(1962)

자코메티의 펜 드로잉 ‘두상’ 자크 뒤팽의 자코메티에 대한 저서 표지 프로젝트(1962)

자코메티의 석판화 ‘바뱅 가의 술집 셰자드리엥 III’ (1961년경)

자코메티의 석판화 ‘바뱅 가의 술집 셰자드리엥 III’ (1961년경)

“그렇다면 이 작품은 완성된 것인가요, 미완성인 것인가요?” 알랑디트가 답했다. “글쎄요. 그의 작업은 완성이냐 미완성이냐를 말하기가 쉽지 않아요. 전시회 일정처럼 외부적인 이유로 작업을 무조건 끝내야 하기 전까지는 계속 조각을 만지고 고치곤 했거든요. 야나이하라를 모델로 한 작품도 그가 일본으로 돌아가 더 이상 작업하지 못하게 됐을 때에야 비로소 끝났죠. 그는 반드시 모델을 앞에 높고 작업을 했으니까요. 모델의 시시각각 변하는 눈빛과 시선을 마주하면서 말입니다.”  
 
그러자 ‘실패’에 관한 자코메티의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보는 것의 희미한 이미지일 뿐이다. 내가 성공하는 경우는 실패하는 경우보다 적고 기껏해야 동률일 것이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말했듯 “인간의 얼굴은 참으로 기이해서, 들여다볼수록 스스로를 닫아걸고 미지의 비상계단으로 달아나버리기” 때문이며 “더 많이 작업하고 더 많이 볼수록 모든 것이 더욱 거대해지고 더욱 알 수 없어지고 더욱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코메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더 많이 실패할수록 더 많이 성공한다. 모든 것을 잃고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때 순간적으로 약간의 진보의 가능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코메티의 말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동료이자 라이벌이기도 했던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연상시킨다. 카뮈는 굴러 떨어진 바위를 다시 올리기 위해 걸어가는 시지프를 향해 말했다. “무력하고도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아마도 그의 괴로움을 이루었을 그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킨다.”
 
다시 전시의 끝인 ‘묵상의 방’에 이르러 ‘걸어가는 사람’을 본다. 여위고 말라 비틀어진 몸과 그럼에도 굳건하게 내딛는 발에 시지프가 겹쳐진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은 어쩌면 미술로 배우는 실존주의 철학의 공간이다. 어렵지 않은, 직관적인, 그러나 보면 볼수록 깊은, 천 마디 말보다 강렬한.  
 
 

글·사진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사진 코바나 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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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