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여도 야도 먼저 내려가라

Outlook
올해 연말의 추위가 유난히 매섭다. 예년보다 낮은 기온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더 춥기로는 마음의 온기를 살려내기가 힘들어서일 터이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축일, 크리스마스의 이브다. 인류 역사의 한 전환점이 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깟 추위쯤이야 쉽게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성탄은 ‘영광과 평화’의 상징이나
‘겸손과 희생’의 함의 잊어선 안 돼

푸른 잔디 언덕서 여유 있게
상대방 올라오라 하지 말고
다른 생각 가진 자 곁으로 가야

 
성경이 기록한 메시아 예수의 탄생은, 온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있었다. 유대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 말구유가 그 역사적인 자리다. 이는 곧 예수가 겸손한 섬김의 가르침으로 공생애를 일관할 것임을 예표한다. 겸손이 없는 기독교는 온전한 기독교가 아니다. 중세 서구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 덕목을 잃어버렸고, 마침내 종교개혁의 거센 물결을 감당해야 했다.
 
동시에 예수의 탄생은, 베들레헴 땅 두 살 아래 모든 영유아의 죽음이라는 무고한 희생과 더불어 왔다. 유대의 분봉왕 헤롯은 어린 사내아이 모두를 죽임으로써 예수의 등장을 막으려 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통곡 속에 기독교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면, 그 희생에 담긴 처절하고 눈물겨운 정신이 무엇인가를 되새겨 보아야 마땅하다.
 
크리스마스는 성탄 트리에 오색영롱한 불을 밝히고 선물을 나누는 축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영광과 평화’의 상징 뒤에 숨어 있는 ‘겸손과 희생’의 함의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어쩌면 위태로운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주의와 긴장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와 같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 축하의 의식을 앞세운 크리스마스는 크게 값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눈에는 무의미하게만 비치는 희생도 역사를 운행하는 전능자의 눈으로 볼 때 결코 그러한 외형의 평가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와 같은 범인들이 그 맥락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3년, 소련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되어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한 칼기 폭파 사건이 있다. 상황 자체가 추상화되어 처음에는 애도조차 어느 방향으로 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올해 7월에 발간된 김진명의 소설 예언은 이 사건에 기발한 상상력으로 접근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기관이나 언론에서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던 답안을 소설의 이야기로 도출했다. 현실에서나 소설에서나 중요한 귀결은 꼭 같았다. 이들의 죽음이 아무런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다른 나라의 하늘에서 산화한, 그저 무의미한 희생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민간 항공기 격추 사건으로 전 세계의 비난에 직면한 소련 당국은, 강경파의 실각과 함께 개혁과 개방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의 새로운 사고와 정치적 변화 또한 이 바탕 위에서 가능했으며, 마침내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라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격변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통분하기 그지없는 수백 명의 죄 없는 죽음은 결국 엄청난 힘으로 인류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그러기에 하는 말이다. 이렇게 살갗이 시리고 마음까지 허탄한 시기에, 무고한 희생을 생각하며 겸손의 미덕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당리당략 때문에 온 나라가 우울하기 이를 데 없다. 말구유의 겸손과 어린 생명들의 희생을 환기해 보자.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열강의 영향력 아래 굴욕적인 외교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엄혹한 상황인데도, 국민적 합일이나 단합을 이끄는 시도조차 없다. 이것이 과연 중세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베트남은 중국에 비해 국력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열악하지만 그 협소한 조건으로도 전혀 물러서지 않는다. 거기에는 국민의 마음을 얻은 지도자들, 탄탄한 내부의 단합이 뒷받침 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국내 정치에 있어 여야로 나뉘어 시비가 그치지 않으나 대외적 쟁점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한 목소리를 낸다. 국가의 생존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확고한 까닭에서다. 이 나라들에는 쟁론의 당사자가 대국적 차원에서 자기 자리를 깊이 성찰하는 겸손이 있다.
 
정부와 여당은 정권의 권익을 누리기에 앞서 이를 진정으로 국민에게 돌려줄 방안을 찾아야하고, 그런 점에서 자기편을 설득하는 국량이 필요하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모두 푸른 잔디가 깔린 언덕 위에서 여유 있는 손짓으로 상대방을 올라오라 부르지 말라. 다른 생각과 어려운 형편을 가진 낮은 자의 곁으로 먼저 내려가라. 성탄의 희생을 묵상하며 겸손을 실천하는 자, 또 다른 크리스마스를 잊지 않는 자에게 복이 있을진저!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선데이 배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