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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평가하는 당신은 누구

홍은택 칼럼
평가 시즌이 왔다. 가장 무리한 일반화를 시도해야 하는 시기다. 인간의 부정확한 판단력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인 다른 인간을 재단하게 된다. 누군가의 가슴에는 비수, 누군가의 머리에는 둔탁한 몽둥이, 아주 소수에게는 남몰래 흘린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 될 것이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반응이 나오지 않도록 데이터를 쌓아놓고 수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라고 교육받지만 아직 매니저로서 역량이 부족하다 보니 이번에도 연말에 몰아치기를 해야 했다. 평가가 두렵다. 평가받는 것보다 평가하는 게 그렇다. 한 사람 한 사람 우주에 빛나는 고유한 존재들을 어떻게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까? 역량과 태도, 성과 등으로 좁혀서 평가해서 종합하면 정확해질까?

어김없이 돌아온 평가의 계절
부정확한 판단력으로 타인 재단
다른 곳 제시 연봉보다 더 준다는
넷플릭스 방식 도입해야 할까

 
나는 언론사에 있었던 14년 동안 평가 결과를 받아본 적이 없다. 아예 평가 자체에 무감했던 것 같다. 어떻게 내려지든 월급은 똑같았다. 기자는 노동의 결과가 공개되기 때문에 상사보다 사회의 평가가 더 준엄하다. 기사로 사회가 얼마만큼 나아졌는지를 척도로 여겨야 할 존재가 ABC 등급에 연연한다는 게 어색하다. 그렇다 쳐도 매년 ABC인지 수우미양가였는지 평가는 있었을 테고 지금 평가하는 입장에서 보니 나를 거쳐간 수많은 상사의 평가가 슬쩍 궁금해진다.
 
언론이 아닌 기업에 와서 평가 결과를 처음 받아봤다. 기분이 묘했다.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누군가한테 평가받는다는 느낌. 내용은 균형이 잘 잡혀있었지만 부족한 것을 깨닫기보다는 ‘그렇게 지적하는 당신은?’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야?’ 하며 마음이 삐딱해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게는 정말 온전한 깨달음이 왔다. 내 평가를 받은 직원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누구는 개념을 잘 잡는데 실행력이 부족해. 누구는 똑똑한데 수용성이 떨어져. 누구는 동료들한테 잘해주느라 정작 자기 일은 잘 챙기지 못해. 이런 평가를 받은 당사자들은 기가 막혔을 것이다. 지가 뭐 안다고.
 
더 가관인 것은 평가를 하다 보면 보완할 점을 굳이 찾게 되는데 마치 내게는 그런 약점이 없는 듯한 착각으로 이어져 그들이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위에서 보면 다 낮아 보이고 평가에도 그런 시각이 은연중 스며든다. 하지만 누구도 위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법. 중간에 있다 보니 평가가 주는 착시를 깨닫게 된 것이다. 평가를 받거나 평가하는 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다는 느낌이었다.
 
직원들의 강점과 약점을 기술한 평가 내용도 그 이후 그들이 성장한 것을 보면 다 뒤집어서 읽어야 맞다.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사람이 스타트업 창업자가 되고, 수용성이 적은 사람이 큰 회사의 경영을 맡고 있고…. 혹시 내 피드백을 듣고 정신 차려서 사람이 바뀐 것이라고도 생각해 보려고 했으나 그것보다 평가지를 회수해서 북북 찢은 뒤 삼키고 입을 다무는 편이 그나마 코웃음을 면할 수 있는 길이다.
 
평가라는 것은 유한한 자원인 금전과 권한(직급)을 나누기 위해 불가피하다. 평가를 안 하고 똑같이 나누는 것도 모든 사람들의 역량과 노력을 같다고 ‘잘못’ 평가한 것이다. 평가를 피평가자에게 공개하는 것은 결국 평가권자의 자의성을 제약하기 위함이다. 내가 평가를 두려워하고 과거의 평가 결과에 대해 반성하는 것도 평가 내용을 평가대상자에게 알려주기 때문이고 평가의 남용을 방지하려고 한 제도가 작동한 결과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평가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으니 많은 제도가 고안되고 시행된다. 하향평가 외에도 동료평가, 상향평가, 360도 다면평가, 평가위원들의 인터뷰 등…. 기업마다 직종마다 문화가 달라서 어떤 게 정답이라고 특정하기 어렵다.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자의 숫자를 늘린다고 능사는 아니다. 누가 나한테 불리한 평가를 줬을까 생각할 대상들이 많아진다. 객관성과 평가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비례하지도 않는 것 같다. 아주 좋은 평가를 받지 않는 한 대부분 평가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올해 초 조그만 회사를 맡으면서 나도 이 평가제도의 고민에 빠졌다. 수백 명이나 수천 명짜리 회사의 평가제도를 차용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 설계해야 했다. 넷플릭스 방식이 솔깃했다. 다른 곳에서 받을 수 있는 연봉을 알아오면 그것보다 항상 올려서 맞춰준다는 것이다. 꽤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의 평가에 맡기면 내부 반목도 막고 연봉협상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 제도의 단점은 한국에서는 실제 다른 직장으로 이직해서 일년 근무한 뒤 근로소득 원천징수액을 떼어오지 않는 한 헤드 헌터의 리쿠르팅 리포트만으로는 아직 믿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걸 알아오라고 하다가 외려 잘 지내던 직원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부작용도 걱정된다.
 
어쨌든 여기서 힌트를 얻어서 야구의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AR)를 도입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WAR은 ‘Wins Above Replacement’의 약자로 대체선수에 비해 얼마나 많이 팀 승리에 기여했는가를 나타내는 수치다. 2017년 타자 WAR 1위는 두산 베어스의 김재환 선수로 7.79다.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잠재적 대체선수에 비해 팀에 7.79승을 더 기여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연봉 많이 올려줘야 한다.
 
이 질문을 회사의 논리로 바꿔보자.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보다 당신이 얼마나 성과에 기여했다고 생각하세요? 한번 숫자를 찍어볼까요? 1.5? 0.7? 이렇게 물어본다면 직원들의 반응이 되물을 것이다. ‘당신부터 먼저 찍어보슈.’ 야구는 통계가 축적돼 있어 그나마 WAR이 가능하고 또 WAR마저도 포수의 투수 리드력 같은 점을 반영하지 못해서 불완전하다는 도전을 받고 있는 마당인데 데이터도 없이 한번 찍어보라니….
 
그래서 평가제도를 안 만들고 혼자서 다 평가하기로 했다. 평가 면담이 끝나자 몸살이 났다. 과거와 현재 나의 평가를 받은 모든 분들께 사과의 뜻으로 이 글을 바친다.
 
 
홍은택
카카오메이커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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