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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임시정부 있던 곳, 서부대개발 참여 전략 세웠기를

충칭 찾았던 문재인 대통령의 과제
중국 4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인 충칭은 내륙 지역에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시카고’를 꿈꾸는 도시다. 4000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로서 커피 선물거래소를 세우는 등 중국의 시장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4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인 충칭은 내륙 지역에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시카고’를 꿈꾸는 도시다. 4000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로서 커피 선물거래소를 세우는 등 중국의 시장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1985년에 개봉한 마이클 J 폭스 주연의 영화 ‘백 투더 퓨처(Back to the Future)’를 보면 한 글로벌 기업의 일본인 회장이 미국인 임원들을 화상전화로 호출해 마구 야단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일본의 경제 공습으로 패닉에 가까운 저패노포비아(Japanophobia, 일본공포증)에 시달리던 미국의 80년대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당시 시가총액 세계 50대 기업 중 30개 이상이 일본 기업이었고, 도쿄 부동산을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고 하던 때였다. 실로 ‘일본 불패’의 시기였다.
 
한편 이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오늘 포춘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일본계 기업은 앞 순위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그 자리를 중국계 기업이 대체해 가고 있다. 가령 상위 10위 중 3개사(2, 3, 4등)가 중국 기업이고 50대 순위 중에도 11개사가 중국 기업이니 중국이 20% 넘는 점유율을 보이며 약진하고 있다. 80년대 일본 불패의 신화가 ‘중국 불패’로 변모하고 있는 듯 보인다. 중국이 동부 연안 벨트의 산업화에 성공한 것으로 이 정도 성과를 달성하였거늘 만일 중국 서부 개발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고속도로를 기화로 본격화된다면 미국에 대적할, 또는 미국을 능가할 가공할 만한 경제대국이 탄생할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바야흐로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시노포비아(Sinophonia, 중국공포증)가 번지고 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흔치 않은 충칭(重慶) 원정도 이 같은 정세 변화를 감안하지 않고는 적절한 해석이 어렵다.
 
충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 16일 천민얼 당서기와 환담하고 있다. 천 서기는 차기 중국 지도부로 지목받는 인물이다. 김상선 기자

충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 16일 천민얼 당서기와 환담하고 있다. 천 서기는 차기 중국 지도부로 지목받는 인물이다. 김상선 기자

‘충칭을 지배하는 자, 중국을 통치한다’
충칭 사람들은 “충칭엔 사투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일본과의 전쟁 시기 수도 역할을 했던 40년대 이래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밀려와 다수가 눌러앉은 까닭에 지역 방언보다 베이징어가 표준어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인지 충칭의 민도는 중국 내에서 단연코 1위며, 이른바 ‘충칭을 지배하는 자, 중국을 통치한다’는 말을 현지인으로부터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이곳은 한국의 부산과도 여러모로 많이 닮았다. 외지인에 대해 개방적인 호탕한 충칭인들은 북쪽 고지대에서 발원한 푸른 자링(嘉陵)강이 황토색 양쯔(揚子)강 본류와 만나 섞이는 지리적 특색을 반영하는 듯도 하다. 의식이 깨어 있다는 점에서 중앙집권적 호구제도를 실질적으로 무너뜨리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시진핑의 정적인 보시라이(薄熙來)는 물론 한때 시진핑의 심복 중의 심복이라 불렸던 전임 당서기 쑨정차이(孫政才)마저 중앙정치에 반기를 들게 만든 땅이 충칭이다. 특권보다는 보편적 민권이 앞서고, 당보다 인민이 우선시되는 독특한 ‘충칭만의 뭔가(模式)’가 있다. 철권 장더장(張德江) 부총리 정도가 피비린내 나는 총칼을 휘둘러 간신히 진압한 땅이 충칭이었건만 4000만 명에 가까운 이곳 민심은 여전히 쉽게 타협하려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천얼민(陳爾敏) 충칭시 당서기의 몸가짐은 가택연금 중인 전임자들의 행보와 달리 매우 조심스럽다. 충칭 공항에 문 대통령을 영접 나온 이가 다소 격이 낮은 류구이핑(柳桂平) 정무부시장이라는 점도 외국 정상에 대한 홀대냐 아니냐를 떠나 내부적으로 계산된 한 수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최태원 SK 회장이 방문했을 때 쑨정차이 당시 당서기의 환영을 받았고, 지난 7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방문 때는 장궈칭(張國淸) 시장이 나섰다. 상하이에 뿌리를 둔 금융인 출신으로 대외 업무와 외자 유치를 담당하는 류 부시장이 문 대통령을 영접한 것은 충칭 당국이 베이징의 눈치를 보며 고심한 결과일 수 있다. 서부에 있지만 충칭이야말로 중국 중앙정치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다른 중국 도시보다 흔한 커피숍
중국인은 커피를 아직 즐기지 않는다. 여전히 차(茶)를 애용한다. 그런데 충칭의 도심엔 타 대도시에 비해 아주 많은 커피숍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판 시카고를 꿈꾸는 지방정부 공무원들은 커피 거래소를 만들어 커피 현물은 물론 선물거래 등 파생상품도 도입했다. 시카고 선물거래소(CME)를 벤치마킹하고 이를 넘어서는 것을 꿈꾸는 듯하다. 1년에 3억 대 넘게 만든다는 노트북 생산 단지이자 선전(深圳)의 고임금에 탈출한 폭스콘의 제2 생산기지로 자신의 땅을 선전하던 충칭이 커피를 미래산업 브랜드로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충칭 커피는 값비싼 아라비카 커피와 맛이 사뭇 다르다. 베트남산 커피를 기차로 실어와 윈난성 커피와 적절히 섞어서 볶아냈기 때문이다. 맛이 쓰건 텁텁하건, 커피 체인 점장들의 주장은 전 세계 인구의 3%만이 진정한 커피맛을 구별할 줄 안다는 통계를 믿는다. 우유가 혼합된 라테쯤 되면 커피맛 구별은 일반 소비자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점심값보다 비싼 커피 한 잔을 기꺼이 마시는 이곳 젊은이들의 주 목적은 무선 인터넷과 쾌적한 공간에 있다. 살인적 부동산 값에 이들의 집은 문화를 논하기에 열악하다. 이 때문에 충칭 커피숍은 한번 자리한 손님이 서너 시간 동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점심쯤 들어와서 저녁 때 나가는 이들도 흔하다. 짝퉁 커피를 비싸게 마시지만 그만큼의 대가를 얻어내는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이들에게 짝퉁은 생활이고 창조의 원동력이다.
 
‘타도 광둥’의 기치 높이 들어
한국 경제가 일본을 추격하고, 중국 경제가 한국을 추격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 역내에는 서부 지역이 동부 지역, 특히 광둥(廣東) 지역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정치적 대결과 별도로 이른바 ‘보왕지쟁(薄汪之爭)’으로 불렸던 ‘보시라이-왕양’의 갈등은 충칭과 광둥 간의 경제적 대결이라는 점에서도 크게 부각됐다. 한국산 패널을 장착했다는 태양광 비행기 ‘솔라 임펄스2’가 날아들었을 때 대서양을 비행기로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만큼 대환영을 해준 도시도 충칭이다. 이러한 이벤트 유치의 이면에는 발전된 동부 연안지대에 대한 열등감이 내재돼 있다. 50t 무게의 해머가 사방을 꽝꽝대는 단조작업장에서 고무장갑 한 켤레와 위태로운 플라스틱 안전모로 10시간 넘게 최저임금을 견뎌내는 힘도 광둥 타도를 근간으로 한다. 흡혈귀처럼 금융 유동성의 90%를 빨아들이는 정부투자기관(SOE)의 등쌀에도 충칭의 민초들은 잡초처럼 섭생을 거스르지 않고 생존하고 있다. ‘타도 일본’ ‘수입대체가 애국’이라는 표어를 되뇌던 80년대 한국의 어느 날처럼 충칭의 량장신취(兩江新區) 산업단지엔 ‘타도 광둥’의 기치가 서려 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역내 경쟁이 제2, 제3의 샤오미를 만들고 알리바바를 태동시켜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서쪽에 길이 있다
문 대통령이 만리를 날아 충칭에 왔다. 동일한 국빈방문이었지만 TGV 고속철 기술을 팔아먹을 요량으로 2015년 중국 방문 첫날을 서부 개발의 본거지인 충칭으로 날아들었던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는 의미가 다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애굽기 40년의 엑소더스에 버금가는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서 45년 11월 충칭까지의 장정을 통해 자리 잡았던 한 서린 종착지를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방치된 베델(Bethel,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7㎞ 떨어진 기독교의 성지. 야곱이 꿈에 나타난 하느님 야훼가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들에게 주겠다고 알린 곳)인 충칭에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수장이 온 것이다. 70여 년 전 그 종착지가 이제는 또 다른 시발점이 되어 지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의 ‘대한민국(大韓民國)’를 만들었음을 고하러 온 것이다. 하지만 이를 수성하고 발전시키는 미션은 녹록지 않다. 해방 전 양국 항일투쟁의 성지 방문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을 비롯한 한·중 문제의 만병통치제가 될 가능성도 작다. 부디 충칭의 마천루를 뒤로한 귀국길에서 신기루 같고 구원 같기도 한 시진핑의 일대일로와 서부 대개발에서 모종의 기대기 전법을 찾아내셨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쪽에 길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문수
액티스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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