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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렌식 추적자 디지털 ‘셜록’ 사기범 조희팔 덜미 낚아챘다

지우고 숨긴 컴퓨터·스마트폰 정보 되살려 범죄·위법 적발 
 
기업 등의 컴퓨터에 숨겨져 있거나 삭제된 부당노동행위의 증거를 찾는 이상철 서울 고용노동청 광역근로감독과 디지털증거분석팀장(오른쪽)과 조광석 주무관이 디지털 포렌식 기법으로 찾아낸 증거 파일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 셜록’이라 불린다. [박종근 기자]

기업 등의 컴퓨터에 숨겨져 있거나 삭제된 부당노동행위의 증거를 찾는 이상철 서울 고용노동청 광역근로감독과 디지털증거분석팀장(오른쪽)과 조광석 주무관이 디지털 포렌식 기법으로 찾아낸 증거 파일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 셜록’이라 불린다. [박종근 기자]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8층의 ‘분석실’. 문틈으로 두 남자가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4대의 모니터에 각종 엑셀 시트와 숫자들이 빼곡했다. 한 명은 서울 고용노동청 이상철(40) 광역근로감독과 사무관이었다. 그는 디지털증거분석팀의 팀장이고 다른 한 명인 조광석(40) 주무관은 유일한 팀원이다. 수사기관에서나 있을 법한 이 팀의 정체는 뭘까.
 
이들은 부당노동행위 등 굵직한 노동사건의 증거를 찾는다. 불법 노동행위를 한 기업이 컴퓨터 등에 남긴 디지털 증거를 찾고 분석한다. 넷마블 임금체불, 파리바게뜨의 불법 파견 사건 등을 수사한다. 말없이 컴퓨터 파일 등에 남은 증거를 찾는 뒷모습은 셜록과 그의 친구 왓슨을 닮았다. 이들을 ‘디지털 셜록’이라 부르는 이유다.
 
◆대기업 월급의 반 토막 포렌식에 뛰어들다=이 팀장은 대학에서 전산학과 통계학을 전공했다. 2005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 입사했다. 7년7개월간 휴대전화 개발과 정보 암호화 업무를 담당했다. 2013년부터 2년 동안은 삼성 인사팀에서 기술인력 인사기획 업무를 했다. 엘리트 대기업 사원으로 살던 그에게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2015년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면서였다. 남은 인생을 보다 값지게 살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고용노동부의 민간경력자 채용에 지원했다. 월급이 반으로 줄었지만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근로감독관·특별사법경찰이라는 새로운 세계였다.
 
그는 고용부의 ‘디지털 포렌식’ 업무를 담당한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에 그 중요성이 높아지는 분야다. 경찰·검찰의 수사는 물론 각종 분야에서 필수적인 일이 되고 있다. ‘디지털 포렌식’은 디지털과 포렌식(forensic·법의학의, 법정의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형용사)이라는 두 분야가 융합된 일이다. 컴퓨터·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서 각종 증거 자료를 수집·보존·분석하는 기술이다. 1991년 미국 오리건 포틀랜드의 국제컴퓨터수사전문가협회(IACIS)가 개설한 교육과정에서 처음 이 신조어를 썼다고 한다.
 
이 팀장의 첫 업무는 인력파견업체 압수수색이었다. 휴대전화와 PC 등의 포렌식 조사를 통해 회계 장부에서 최저임금 미지급 사실을 찾아냈다. 경비원과 청소노동자 등 파견 인력 거짓 신고, 4대 보험 미지급도 파일 복구 등을 통해 잡아냈다.
 
손상된 USB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 국가디지털 포렌식센터]

손상된 USB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 국가디지털 포렌식센터]

◆파일 삭제 기록은 범인의 ‘발자국’=디지털 셜록들에게 컴퓨터에 남겨진 흔적은 추적의 단초가 된다. 파일 삭제 기록은 범인의 발자국이고, 복구된 파일은 수사의 단서다. 이 팀장은 지난 6월 만도헬라 사건에서 불법 파견 근무를 부인하는 기업 측 주장을 뒤집었다. 현장의 근로감독관과 협력해 공장 안의 PC와 제어장치를 발견해 삭제된 내용을 복구했더니 직접 고용의 증거가 나왔다. 직원 325명 중 306명의 직접 고용을 이끌었다. 이 팀장과 조 주무관 두 사람이 참여해 적발한 위법 행위는 금액으로 460억원 규모다. 포렌식을 활용한 근로 감독도 지난해 32건에서 올해 245건으로 늘었다. 내년에는 전국 5개 노동청에 포렌식팀을 만들고 인력 11명을 충원한다.
 
◆포렌식 자격증도 등장=디지털 셜록의 활동 분야는 확산 중이다. 경찰 등 수사 기관은 증거 수집을 위해 폐쇄회로TV(CCTV)나 노트북·스마트폰을 복구하는 게 일상이 됐다. 경찰 관계자는 “몇 년 사이 포렌식 관련 수사가 늘었다. 전문 인력 수요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07년 서울중앙지검 디지털 포렌식 수사팀을 처음 만든 검찰은 2012년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ational Digital Forensic Center)로 확대 운영 중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도 지난 11월 27일 디지털 포렌식 센터를 열었다. 원산지 위반사범 적발 방식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것이다. 관세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병무청 등도 관련 기관 설립에 나섰다. 노명선(한국포렌식학회 회장)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디지털 정보에는 개인 정보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보가 존재한다. 디지털 증거를 수집하기 위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디지털 포렌식도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기업 윤리경영팀·감사실에서도 디지털 포렌식에 주목한다는 게 노 교수의 설명이다.
 
국내 수요가 늘면서 국내 포렌식 프로그램도 개발됐다. 미국 ‘가이던스 소프트웨어’가 개발한 프로그램 ‘인케이스(EnCase)’가 주류지만 2년 전 대검찰청은 국가보안기술연구소와 함께 현장의 수요와 수사 현실에 맞춘 CFT(Certified Forensic Tool)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관련 자격증도 주목받고 있다. 2010년부터 한국포렌식학회가 주관하던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시험을 법무부는 2012년부터 국가공인 민간자격증으로 인정했다. 2010년 필기 응시자 35명으로 시작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시험은 2012년 154명, 올해에는 540명이 응시했다. 2011년 처음으로 48명의 2급 합격자를 배출한 뒤 지난해 147명이 2급에 합격했다. 지난해엔 1급 전문가 시험이 처음으로 시행돼 3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디지털 포렌식 기술을 활용하는 사설 업체와 이용자도 늘고 있다. 사설업체 관계자 A씨는 “주로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 파일, CCTV 영상 복구 요청 등이 많다. 적게는 10만원부터 착수금을 받고 성공할 경우 추가 보수를 받는다. 100만원이 넘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노명선 교수는 “향후 탐정업과 같은 민간조사업이 합법화될 경우 시장이 더 커질 것이다. 민간 분야의 확장에 대한 대비와 통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증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이 팀장은 올해 휴가를 다 쓰지 못했다고 했다. 그만큼 업무 요청이 많다. 그는 “근로감독을 나갔다가 아내가 전세금 대출을 걱정하는 전화를 했을 때 처음으로 ‘이전 직장이면 안 했을 고민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 옆에는 부당해고를 당해 몇 달째 월급을 못 받는 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아, 내가 열심히 해야겠구나. 이 기술로 더 좋은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하는 내내 ‘셜록과 왓슨’을 찾는 전화벨이 울려댔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하고 싶으냐고 묻자 셜록이 답했다. “사람은 거짓말해도 증거는 거짓말하지 않거든요.”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S BOX] 1급 전문가 조성종 수사관 “자격증보다 IT·법 지식 먼저 쌓아야”
디지털 포렌식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가진 자격증은 크게 해외자격증과 국내자격증으로 나뉜다.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가 주관하는 ‘EnCase’ 시험과 한국포렌식학회가 주관하는 디지털 포렌식 1·2급이 있다. 이상철 팀장은 “EnCase 시험은 실습보고서를 2달 이내에 제출해야 합격 가능한 시험으로 가장 권위 있는 시험이다”고 말했다.
 
법무부 공인 민간자격증인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는 지난해 처음으로 1급 합격자를 발표했다. 현재 1급 자격이 있는 전문가는 3명이다. 대검 과학수사부 조성종·이연주 수사관, H컨설팅업체 김대웅 전문위원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조성종 수사관은 정보기술(IT) 업계에서 15년간 일했다. 프로그램·서버·데이터베이스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면서 포렌식 업무에 관심이 생겼다. 2013년 대검 과학수사부 특별채용에 지원해 합격했다. 조 수사관은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사건에서 서버를 압수해 삭제된 데이터를 복구했다. 피해액을 산정하지 못하다가 4조8000억원 규모 피해액을 밝혀낸 것(2016년 3월)도 디지털 포렌식 덕분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격증 취득에 매몰되는 것보다 IT 지식과 법 지식을 쌓아 두면 포렌식 분야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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