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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거래소 딜레마 … “도박장 공인?” vs “현실 인정을”

한 투자자가 21일 암호화폐 거래소 유빗(Youbit)을 운영한 서울 가양동 야피안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유빗은 지난 19일 해킹으로 전체 거래자산 상당량을 탈취당해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신인섭 기자]

한 투자자가 21일 암호화폐 거래소 유빗(Youbit)을 운영한 서울 가양동 야피안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유빗은 지난 19일 해킹으로 전체 거래자산 상당량을 탈취당해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신인섭 기자]

21일 점심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 거래소 유빗(옛 야피존) 사무실 앞. 10여 명의 투자자가 모였다. 유빗은 지난 19일 해킹 공격으로 전체 자산의 17%에 달하는 손실을 보고 파산을 선언했다. 투자자는 거래소를 잘못 골라 투자금을 날리게 됐다.
 
유빗을 통해 3000여만원을 투자한 박진형(43)씨는 “아무런 조치도 안 하는 회사의 무책임한 모습에 화가 나 경기도 용인에서 찾아왔다”며 “회사 측에서는 홈페이지에 파산했다는 공지 하나만 올리고 나몰라라 한다”고 말했다.
 
박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보상책을 요구하지만 현행법 아래에선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 유빗과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법적 실체는 통신판매업자다. 금융업이 아니다. 사업자 등록증을 가지고 구청 등에 신고만 하면 영업할 수 있다. 금융업 수준의 보안이나 투자자 보호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 30여 개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우후죽순 난립하는 이유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암호화폐는 금융업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위원회나 금감원의 관할 사항이 아니다”며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손실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엔 시장이 너무 커졌다. 업계에서는 암호화폐 거래 인원이 200만 명을 넘어섰고 빗썸·코인원·코빗 등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대금이 하루 10조원은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 순위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 순위

그런데도 이들 거래소의 보안 수준은 증권사 등 금융회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해킹 위험에 항시 노출돼 있었다. 이번에 파산한 유빗은 앞서 지난 4월에도 해킹으로 전체 자산의 37%를 날렸다.
 
국내 최대 거래소인 빗썸에서는 지난 6월 개인정보 3만4000여 건이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2014년엔 세계 최초이자 당시 비트코인 거래의 70%를 차지했던 일본 거래소 마운트곡스가 총 85만 비트코인을 도난당하고 파산했다. 홍콩 비트파이넥스는 지난해 12만 개의 비트코인을 해킹으로 도난당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뒤늦게 거래소에 대한 현장조사를 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보안 수준을 점검하겠다고 나섰지만 정부 대응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지적이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올해 초부터 급속도로 암호화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거래액이 늘고 있는데 정부는 ‘제도권 금융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 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처럼 정부가 인가제를 통해 엄격한 요건을 갖춘 곳만 영업을 허가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마운트곡스 파산 이후 비트코인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지난 4월 자금결제법을 마련해 비트코인을 정식 지급 결제 수단으로 인정했고, 증권사 수준의 투자자 보호장치를 갖춘 11개 거래소에 대해서만 영업을 허가했다.
 
주요 비트코인 해킹 피해 사례

주요 비트코인 해킹 피해 사례

한국 금융 당국은 그러나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인가하라는 건 도박장을 안전하게 만들어 달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인가제에 따른 역효과도 우려된다. 정부가 인가를 하니 일본 시장의 암호화폐 투자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최근 블룸버그는 “비트코인의 열풍 뒤에는 ‘와타나베 부인(일본 개인 투자자)’이 있다”고 전했다.
 
일단 업계가 자정작업에 나섰지만 이 또한 임시방책이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참여한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는 지난 15일 ▶거래소를 운영하려면 자기자본을 20억원 이상 보유해야 하고 ▶투자자의 원화 예치금은 100% 금융기관에 예치하며 ▶가상화폐 예치금의 70% 이상을 오프라인 상태의 별도 외부 저장장치에 보관하는 내용의 자율규제안을 발표했다.
 
강제력이 없고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거래소엔 해당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한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대표는 “일부 소규모 거래소의 경우 제대로 된 보안 시스템 없이 수수료만 챙겨 사실상 하우스 도박장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인가제 등을 통한 거래소의 제도권 편입밖에는 답이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김형중(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한국핀테크학회장은 “일본처럼 암호화폐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하고 보안 규제를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고란·정진우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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