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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면죄부 준 '항로'가 뭐길래…법원마다 해석 제각각

조현아(43)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이유는 뭘까.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조 전 부사장의 범죄 혐의 가운데 항공보안법 위반은 사건 초기부터 논란이 됐다. 항공보안법 제42조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하여 정상운항을 방해한 사람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탑승구를 떠나 지상(地上)에서 이동 중이던 비행기를 탑승구로 되돌아가게 한 조 전 부사장의 행동을 ‘항로’ 변경으로 봐야 하는지가 재판 내내 쟁점이었다. 항공보안법이 지상 이동까지 비행기의 항로에 포함하는지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항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중에 비행기가 다니는 길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탑승게이트에서 활주로까지 지상 이동로를 항로의 일부로 볼 수 있는지를 놓고 1·2심의 판단은 갈렸다.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비행기와 탑승게이트에 대기 중인 비행기 모습. 김도훈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비행기와 탑승게이트에 대기 중인 비행기 모습. 김도훈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법령에 쓰인 용어에 (항로에 대한) 정의 규정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사전적 정의 등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의미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이어 비행기의 항로는 ‘하늘길’로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원합의체의 판단은 새로운 대법원 판례로 남아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판단의 기준이 된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12월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에서 기내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 삼았다. 탑승게이트를 막 벗어나 활주로로 향하는 대한항공 KE086편 항공기를 탑승게이트로 되돌아가도록 지시하고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검찰은 지상 통로가 항로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반면, 조 전 부사장 측은 지상로는 항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1, 2심 법원의 판단도 엇갈렸다.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항로의 범위를 항공기의 ‘운항’ 개념에서 찾았다. 항공기운항안전법이나 도쿄협약, 헤이그협약, 몬트리올협약 등 항공기 안전과 관련한 국내외 법규상 운항의 개념은 ‘탑승 후 모든 외부의 문이 닫힌 순간부터 하기를 위하여 문이 열리는 순간까지’다. 탑승게이트에서 문을 닫고 움직인 순간 항공기의 운항이 시작됐으니 그 이동로를 항로로 보아야 한다는 게 1심 법원의 판단이었다.
조현아 전 대한한공 부사장. [중앙포토]

조현아 전 대한한공 부사장. [중앙포토]

 
하지만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6부는 항로란 용어를 사용하는 항공법 등 다른 법규와 항로변경죄를 규정하고 있는 항공보안법의 제정 목적에 중심을 뒀다. 재판부가 항로 의미 해석의 기준으로 삼은 항공법령상 대한항공에 발급한 운항증명 중 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대한항공은 (중략) 관제공역 내에서, 레이더 관제로 제공되는 항로를 따라 계기비행 방식으로 운항’
 
해발 고도 200m 이상의 공중구역에서 정해준 항로를 따라 비행하도록 허가를 받았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규정의 전체적인 취지와 전후 맥락을 보면 항로는 비행을 전제로 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고, ‘공로(空路)’의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이밖에 재판부가 해석의 근거로 삼은 법령들은 대부분 비행기가 공중에 떠 있는 상태를 전제로 ‘항로’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재판부는 ‘항로’와 ‘공항시설’을 구분해 사용하고 있어 활주로, 우도로 등 지상이동시설은 포함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는 항공기. [연합뉴스]

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는 항공기. [연합뉴스]

 
대법원도 이 같은 2심 법원의 해석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판결문에서  "죄형법정주의(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써 규정하여야 한다는 원칙)에 비춰 항공기가 지상에서 이동하는 것을 항로에서 이동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지상의 항공기가 운항 중이라고 해 지상에서 다니는 길까지 항로로 보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고 어떤 형벌을 내리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의미다. 
 
한 중견 변호사는 “항로의 개념이 법률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 이는 피고의 이익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고 말했다.
 
전원합의체의 다수 의견에는 대법관 13명 중 10명이 동의했다. 박보영‧조희대‧박상옥 대법관 등은 “항공기는 이륙 전에는 지상을 다닐 수밖에 없어 항로만을 따로 떼어낼 수 없고, 운항 중인 항공기가 다니는 길이면 지상과 공중을 불문하고 모두 항로에 포함된다고 봐도 해석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전원합의체 사건은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제외)이 참여한다. 의견이 나뉘면 다수 의견이 대법원 의견으로 채택된다. 이날 판결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9월 26일 취임한 후 내린 첫 전원합의체 선고 사건이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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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