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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지기 갈라놓은 두 개의 노량진수산시장…서울시도 중재 포기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활어를 파는 상인 유모(74·여)씨는 이웃 매장을 멍하니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40년간 함께 장사를 하던 송모(68·여)씨가 있던 자리다.
 
자매처럼 의지하며 장사를 했던 두 사람은 지난해 4월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됐다. 송씨가 새로 생긴 노량진수산시장에 입주하면서다. 상인들은 그곳을 신(新)시장이라 부른다. 유씨가 남아 있는 구(舊)시장과는 10m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하지만, 상인들의 마음의 거리는 멀기만 하다. 유씨는 “허전하지. 그래도 난 절대 (신시장으로) 안 가”라고 말했다.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 입구엔 '철거 예정' '붕괴 위험'과 같은 붉은 문구들이 적혀 있다. 구시장 뒷편으로 8층 높이의 신시장 건물이 보인다.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 입구엔 '철거 예정' '붕괴 위험'과 같은 붉은 문구들이 적혀 있다. 구시장 뒷편으로 8층 높이의 신시장 건물이 보인다.

송씨가 있는 신시장에는 이름없는 간판이 300여 개 걸려 있다. 유씨를 포함한 구시장 상인들의 상호가 걸렸어야 할 자리다. “저거 보면 마음이 안 좋아. (구시장 상인들이) 빨리 들어와야지. 이러다 양쪽 다 죽겠어.” 송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체 상인의 40%가량이 남은 구시장은 곳곳이 텅 비어 있다.

전체 상인의 40%가량이 남은 구시장은 곳곳이 텅 비어 있다.

신시장에는 상호가 없는 간판들이 300여 개 걸려 있다.

신시장에는 상호가 없는 간판들이 300여 개 걸려 있다.

신시장은 지난해 3월 문을 열었다.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산업협동조합과 구시장 상인들의 갈등은 풀리지 않았다. 양측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 과정에서 불거진 이주 조건 등을 놓고 충돌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10월부터 최근까지 다섯 차례 갈등조정협의회를 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사자들이 대화할 기회를 마련해 해결책을 찾자는 취지였다”고 협의회 진행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결렬을 반복했다. 수협은 구시장 상인의 신시장 입주를, 구시장 상인 측은 구시장 유지를 원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노량진수산시장 신시장 1층 판매장 전경.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갖췄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노량진수산시장 신시장 1층 판매장 전경.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갖췄다.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 전경. 일부 상인들이 신시장 이주를 거부하면서 노량진수산시장은 두 동강이 났다.

노량진수산시장 구시장 전경. 일부 상인들이 신시장 이주를 거부하면서 노량진수산시장은 두 동강이 났다.

지난 18일 구시장 입구에는 ‘철거 예정’이란 붉은색 글씨가 어지럽게 쓰여 있었다. 근처에는 ‘전통노량진수산시장’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었다. 시장 안에는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전면 중단’이라고 쓰인 플래카드도 눈에 띄었다. 수협 측이 써 놓은 ‘공실사용금지’라는 붉은 문구도 곳곳에 있었다. 

구시장 입구에 적힌 '철거 예정'이란 붉은 문구.

구시장 입구에 적힌 '철거 예정'이란 붉은 문구.

구시장에는 전체 상인의 약 40%인 270여 명이 남아있다. 이들은 높은 임대료와 좁은 공간을 이유로 신시장 입주를 거부한다. 구시장 상인 허모(61)씨는 “판매 공간은 줄었는데, 임차료는 두 배 이상 뛰었다”고 말했다.
 
신시장의 임차료는 구시장에 비해 위치에 따라 1.5~2.5배 가량 높다. 구시장에 비해 판매대 주변의 여유 공간이 적다. 매장 면적은 구시장과 신시장 모두 4.95㎡(1.5평)로 동일하지만 구시장이 더 넓은 셈이다. 수협 측은 구시장 상인들이 통로 공간을 무단 사용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협 관계자는 “높아진 임대료에는 환경 개선에 들어간 투자 비용이 포함돼 있다. 구시장 상인들에게 ‘이주하면 임대료를 4개월간 면제해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구시장 관계자는 “임대료와 면적 문제도 있지만, 전통이 남아있는 재래시장 형태를 보존하는 것도 원한다”고 주장했다.
구시장 입구에는 신시장의 위치를 알려주는 간판이 붙어있다.

구시장 입구에는 신시장의 위치를 알려주는 간판이 붙어있다.

신시장에 입주한 상인 이모(58)씨는 “구시장에서 버티면 쫓겨날까봐(명도집행) 염려돼 어쩔수 없이 왔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추위나 더위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영업 환경이 쾌적하다”고 말했다. 김모(58)씨는 “손님이 구시장과 신시장으로 나뉘면서 매출이 30% 가량 줄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신시장 입구에는 구시장을 가리켜 '무허가 시장'이라고 적은 간판이 걸려 있다.

신시장 입구에는 구시장을 가리켜 '무허가 시장'이라고 적은 간판이 걸려 있다.

시장을 자주 이용한다는 주부 전모(60)씨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하루 빨리 협의점을 찾아서 예전처럼 정겨운 시장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량진시장 소유권을 가진 수협은 명도소송(明渡訴訟·소유자 외의 사람이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 넘겨달라는 소송)에서 승소한 상태여서 법적으로는 구시장 상인들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양측이 끝내 협의를 하지 못하면 시가 다시 중재에 나설 계획이다”고 말했다.
 
글·사진=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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