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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개 그림에 부침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그림만 봐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조선 중기 화가 이암(1507~1566)의 ‘어미 개와 강아지(母犬圖)’다. 붉은 줄을 목에 두른 어미가 강아지 세 마리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강아지들은 마냥 좋은 모양이다. 한 마리는 어미 등에 매달려 곤히 잠들어 있고, 또 다른 녀석은 어미 품의 젖을 물고 있다. 한 입이라도 더 먹겠다고 다투지 않는다. 옛사람이 꿈꾸었던 조화와 공생의 세계다. 현실이 팍팍하기에 그림에서나마 평화를 갈구했을 것이다.
이암의 ‘어미개와 강아지(母犬圖)’.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암의 ‘어미개와 강아지(母犬圖)’.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에선 벌써 새해 분위기가 물씬하다. 내년 무술년(戊戌年)을 앞두고 ‘개를 그린 그림, 그림 속의 개’ 코너가 국립중앙박물관 2층 서화실에 새로 꾸려졌다. 2005년 중앙박물관 용산 이전 이후 12년 만에 서화실을 단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장을 찾아갔다. 귀여운 견공(犬公)이 등장하는 우리 그림 16점이 한곳에 모였다.
 
김두량의 ‘긁적이는 검둥개(黑狗圖)’.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김두량의 ‘긁적이는 검둥개(黑狗圖)’.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속 개들은 하나같이 평온하다. 이전투구(泥田鬪狗)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자 재물을 지켜 주는 개의 긍정적 이미지가 부각됐다. 일례로 김두량(1696~1763)의 ‘긁적이는 검둥개(黑狗圖)’. 나무 아래에 누워 뒷발로 등을 긁는 모습이 한가롭기만 하다. 전시장에는 비슷한 자태의 누렁이 두 마리도 나와 있다. 속담 ‘개 팔자가 상팔자’마저 떠오른다.
 
중앙박물관 이수미 미술부장의 풀이가 흥미롭다. “우리 조상들은 다른 어떤 12지(支) 동물보다 개에게 감정을 이입했다. 단순히 액(厄)을 막는 벽사(辟邪)의 차원을 넘어 인간과 늘 함께하는 반려자로 여겼다. 덕분에 그림 속 개의 표정·동작이 매우 사실적이다”고 했다. 무시무시해 보이는 작자 미상의 ‘사나운 개(猛犬圖)’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이유다. TV 프로그램 제목처럼 세상에 나쁜 개는 없는 것 같다.
 
반려견 인구 1000만 시대, 개를 두고 옥신각신 말도 많았던 2017년도 열흘 뒤면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정치든, 경제든, 외교든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댔던 올해의 파열음이 내년에는 조금 잦아들지 실낱 기대를 걸어 본다. ‘개 같은 놈’ ‘개 같은 세상’의 뜻이 역전되기를 바란다. 새해 새날이 더욱 험악해지더라도 개를 향한 애정이 사람 사이로 퍼졌으면 한다. 아기 예수가 세상에 온 성탄절의 뜻도 그럴 것이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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