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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를 만나다(19)-자식이 있어서 기쁜가, 아니면 고통스럽나?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차장
 
 
 
 
붓다는 보리수 아래를 떠났다. 갠지스강을 건너 바라나시로 향했다. 다섯 수행자를 찾아 300㎞가 넘는 먼 길을 몸소 걸었다. 그 이유는 ‘북을 울리기 위함’이었다. 붓다는 길에서 처음 만난 우파카에게 “생사에서 벗어나는 북을 울리기 위해 카시(바라나시)로 간다”고 말했다.  
 
2300년 전에 아소카 왕이 세운 인도 중부 산치 대탑의 조각상. 북을 치는 사람들이 보인다. 백성호 기자

2300년 전에 아소카 왕이 세운 인도 중부 산치 대탑의 조각상. 북을 치는 사람들이 보인다. 백성호 기자

 
버스를 타고 바라나시로 가는 길. 나는 『숫타니파타』를 펼쳤다. 최초로 만들어진 초기불교 경전이다. 악마와 붓다가 주고받는 시(詩) 형식의 짧은 대화가 등장한다. 악마가 말한다.  
 
“자녀가 있는 사람은 자녀에 대해서 기뻐하고/소를 가진 사람은 소가 있는 것을 기뻐한다/이런 물질적 집착이야말로/인간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이런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기쁨도 있을 수 없다.”
 
이 말은 들은 붓다가 답을 한다.  
 
“자녀를 가진 사람은 자녀 때문에 걱정하고/소를 가진 사람은 소 때문에 걱정한다/인간의 근심 걱정은/이런 집착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나니/집착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근심도 걱정도 있을 수 없다.”
 
소를 가졌다고 무조건 걱정하는 건 아니다. 소에 집착할 때 우리에게는 비로소 걱정이 생겨난다.

소를 가졌다고 무조건 걱정하는 건 아니다. 소에 집착할 때 우리에게는 비로소 걱정이 생겨난다.

 
북이 울린다. 문장을 바꿀 때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북이 울린다. ‘두리두리 둥둥둥!’ 그렇게 심연에서 북이 울릴 때마다 떨어져 나간다. 나의 눈을 덮고 있던 먼지가 ‘툭! 툭!’ 떨어져 나간다. 악마는 말한다. “집착하라. 집착이야말로 살아가는 기쁨이다. 자식에게 집착하고, 소와 돈과 재산에 집착하라. 명예와 권력에 집착하라. 이런 집착이 없다면 삶의 기쁨도 없다.” 악마는 우리에게 당근을 내민다. 당근의 이름은 ‘착(着)’이다.  
 
당근을 선뜻 받아든 우리는 그게 당근인 줄 모른다. 왜 그럴까. 세상의 모든 착은 포장지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집착은 ‘사랑’이라는 포장지에, 소와 돈에 대한 집착은 ‘편안한 삶’이란 포장지에, 명예와 권력에 대한 집착은 ‘대의명분’이란 포장지에 꼬깃꼬깃 싸여 있다. 그래서 당근이 당근인 줄 모른다. 집착이 집착인 줄 모른다. 오히려 사랑이라 착각하며 산다. 그러니 악마의 속삭임은 달콤하기 짝이 없다.
 
악마는 붓다에게 "자식에 대한 집착이 없다면 삶에 대한 기쁨도 없다"며 당근을 내밀었다.

악마는 붓다에게 "자식에 대한 집착이 없다면 삶에 대한 기쁨도 없다"며 당근을 내밀었다.

 
붓다의 눈은 달랐다. 당근 뒤에 도사린 고통을 봤다. 악마가 말한 ‘기쁨의 뿌리’가 실은 ‘고통의 뿌리’임을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자식에게 집착할수록 기쁘다고? 과연 그럴까. 가만히 들여다봐라. 자식에게 집착하면 할수록 오히려 걱정이 생기지 않아? 등교는 잘했을까. 가다가 눈길에 미끄러지진 않았을까. 넘어졌다면 다치진 않았을까. 다쳤다면 피가 흘렀을까. 학교 양호실에 가서 반창고라도 붙였을까. 반창고 붙인 자리가 욱신거려서 수업은 제대로 받았을까. 내일모레가 시험인데 참 걱정이네.” 걱정은 끝없이 달려간다. 그 엔진이 바로 ‘착(着)’이다.  
 
사슴동산을 찾아와 스투파 앞에서 두 손을 모으는 남방불교의 순례객들. 움켜쥠과 내려놓음 사이에서 사람들은 늘 기도를 한다. 백성호 기자

사슴동산을 찾아와 스투파 앞에서 두 손을 모으는 남방불교의 순례객들. 움켜쥠과 내려놓음 사이에서 사람들은 늘 기도를 한다. 백성호 기자

 
차창 밖으로 인도의 시골 풍경이 흘러갔다. 우리의 걱정, 우리의 근심, 우리의 고통은 움켜쥠에서 비롯된다. 자식을 움켜쥐면 자식 때문에 걱정하고, 소를 움켜쥐면 소 때문에 걱정한다. 그러니 움켜쥠이 고통을 낳는다. 사람들은 묻는다. “아니, 어떻게 움켜쥐지도 않고서 아이를 키울 수 있나? 소를 키울 수 있나?” 이렇게 반박한다. 그러나 붓다는 조금이라도 덜 움켜쥐면서 아이를 키우라고 말한다. 결국 덜 고통 받으며 아이를 키우라는 뜻이다. 그게 더 지혜롭고, 더 행복하기에 말이다.  
 
사르나트의 사슴동산 전경. 멀리 다메크 스투파가 보인다. 둘레에는 부서진 탑들의 기단이 남아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1500명의 승려가 생활한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백성호 기자

사르나트의 사슴동산 전경. 멀리 다메크 스투파가 보인다. 둘레에는 부서진 탑들의 기단이 남아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1500명의 승려가 생활한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백성호 기자

 
붓다는 걷고 또 걸어서 사슴동산에 도착했다. 한자로는 ‘녹야원(鹿野苑)’이다.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8㎞쯤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인도 지명은 사르나트. 인도의 불교 8대 성지 중 하나다.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사슴동산은 무척 단정하고 평화로운 공원 같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사르나트의 녹야원은 오랜 세월 흙더미에 묻혀 있었다. 잡초만 무성한 폐허로 있었다.  
 
사슴동산을 찾은 순례객들이 앉아서 명상과 기도를 하고 있다. 부러지고 기단만 남은 스투파 사이로 우여곡절을 겪었던 인도의 불교 역사가 흐른다. 백성호 기자

사슴동산을 찾은 순례객들이 앉아서 명상과 기도를 하고 있다. 부러지고 기단만 남은 스투파 사이로 우여곡절을 겪었던 인도의 불교 역사가 흐른다. 백성호 기자

 
나는 사슴동산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작고 초라한 건물이 있었다. 일종의 ‘녹야원 역사관’이었다. 안에는 발굴 당시의 흑백 사진이 여러 장 전시돼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20년 전만 해도 사슴동산은 낡은 벽돌이 나뒹구는 폐허였다. 1794년 바라나시의 자갓 싱 장관이 자신의 사적인 건축물을 짓기 위해 이곳에서 벽돌을 가져오라고 했다. 유적지 관리라는 개념이 아예 없던 시절이었다. 인부들이 벽돌을 가져가려고 스투파(탑)를 해체했는데 파란 대리석함이 나왔다. 함에는 인도의 고대 언어가 새겨져 있었다. 아무도 그걸 해독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 함을 갠지스강에 던져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붓다의 진신사리가 담긴 사리함이었다.  
다메크 스투파에 새겨져 있는 조각 문양들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스투파의 하단은 오랜 세월 땅에 묻혀 있었다. 백성호 기자

다메크 스투파에 새겨져 있는 조각 문양들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스투파의 하단은 오랜 세월 땅에 묻혀 있었다. 백성호 기자

 
 
인도의 불교 유적은 그만큼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4년 뒤에 둔칸이란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출판물에 실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이목이 사슴동산으로 쏠렸다. 이후 1930년까지 알렉산더 커닝햄 등에 의해 대대적인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사슴동산에는 ‘다메크(Dhamekh) 스투파’라는 아주 높은 벽돌탑이 있다. ‘다메크’는 ‘진리를 보는 눈(法眼)’이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말이다. 탑의 높이는 무려 33.5m다. 사슴동산 안에는 아소카 왕이 세운 아소카 석주도 있었다.  
 
아소카 왕이 불교 성지에 만들었던 아소카 석주가 사슴동산에도 세워져 있다. 지금은 부러진 석주를 유리관 안에 전시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아소카 왕이 불교 성지에 만들었던 아소카 석주가 사슴동산에도 세워져 있다. 지금은 부러진 석주를 유리관 안에 전시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2600년 전 붓다는 사슴동산 안으로 들어왔다. 저만치 앉아 있는 다섯 수행자들이 눈에 띄었다. 붓다는 그들을 향해서 갔다. 멀리서 오는 싯다르타를 보고서 다섯 수행자는 “모른 척하자”고 약속했다. 팔리어 경전에는 이유가 기록돼 있다. ‘고행을 포기하고 풍요한 생활로 돌아간 고타마(싯다르타)가 온다. 그가 오면 인사도 하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말고, 발우와 가사도 받지 말자. 앉기를 원한다면 자리만 내어주자.’  
 
막상 붓다가 오자 다섯 수행자의 반응은 딴판이었다. 누구는 가사와 발우를 받고, 누구는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누구는 발 씻을 물을 떠왔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게 ‘붓다의 크기’ 때문이라 본다. 붓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다섯 수행자는 예전과 다른 ‘싯다르타의 크기’를 느끼지 않았을까.  
 
사슴동산에서 경전을 읽고 있는 남방불교의 수행자. 이 근처에서 붓다와 다섯 수행자는 처음 만났다. 백성호 기자

사슴동산에서 경전을 읽고 있는 남방불교의 수행자. 이 근처에서 붓다와 다섯 수행자는 처음 만났다. 백성호 기자

 
다섯 수행자는 싯다르타를 예전처럼 “친구 고타마”라고 불렀다. 붓다는 “여래의 이름을 부르지 마라. 나는 불사의 경지를 성취했다”고 말했다. 몇 차례의 의혹과 문답이 오간 끝에 그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받기로 했다. 다섯 수행자 중 둘이 탁발을 나가면 셋과 함께 공부했고, 셋이 탁발을 나가면 남은 둘과 함께 공부했다.  
 
붓다는 우선 ‘쾌락과 고행’을 겨냥했다. 이 둘을 ‘양극단’이라 불렀다. 당시 인도 사람들은 두 갈래였다. 세속의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추구했고, 출가 수행자들은 절대적 고행을 추구했다. 어느쪽으로 달려도 달라붙기 마련이다. 접착제 때문이다. 붓다는 둘 다 아니라고 했다.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닌 길. 그 사이로 가자고 했다. 그 길의 이름이 ‘중도(中道)’다. 그래서 ‘중도(中道)’에는 애착과 집착과 고집이 없다.  
 
중도의 길에는 착이 없다. 움켜쥔 손을 풀 때 비로소 중도의 길이 열린다. 사슴동산에서 법회를 갖고 있는 남방불교의 승려와 순례객들. 백성호 기자

중도의 길에는 착이 없다. 움켜쥔 손을 풀 때 비로소 중도의 길이 열린다. 사슴동산에서 법회를 갖고 있는 남방불교의 승려와 순례객들. 백성호 기자

 
예수도 그랬다. “나는 가장 높은 자요, 가장 낮은 자다”“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시작이자 끝이다.” 예수의 길도 양극단을 좇지 않았다. 알파만 좇지 않고, 오메가만 좇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하느님 나라의 속성에 착(着)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자기 십자가를 통과하며 착(着)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 길과 붓다가 걸었던 중도의 길이 서로 통한다.
 
붓다 당시 사슴동산에는 사슴들이 뛰어놀았다. 지금도 이곳에는 사슴들이 있었다. 백성호 기자

붓다 당시 사슴동산에는 사슴들이 뛰어놀았다. 지금도 이곳에는 사슴들이 있었다. 백성호 기자

 
나는 다메크 스투파 둘레를 돌았다. 주위에는 사슴도 몇 마리 보였고, 좌선한 채 명상에 잠긴 순례객들도 보였다. 이 근처 어디쯤이 아니었을까.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서 다섯 수행자 중 콘단냐가 먼저 눈을 떴다. 그는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한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그때 붓다는 “참으로 콘단냐는 깨달았다. 참으로 콘단냐는 깨달았다”며 몇 차례나 감탄했다.  
 
다메크 스투파 앞에서 두 손을 모으는 순롁객들. 이 거대한 탑 앞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두 손을 모았을까. 백성호 기자

다메크 스투파 앞에서 두 손을 모으는 순롁객들. 이 거대한 탑 앞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두 손을 모았을까. 백성호 기자

 
붓다는 감격했을 터이다. 처음에는 가르침을 펴지 않으려 했다. 아무도 넘어올 수 없으리라 여겼던 깨달음의 땅으로 콘단냐가 들어왔다. 그러니 붓다는 얼마나 반가웠을까. 사람들은 그런 콘단냐를 ‘안나-콘단냐(Anna-Kondanna)’라고 불렀다. ‘깨달은 콘단냐’라는 뜻이다. 이치를 뚫은 콘단냐에게 더는 의심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슴동산 어디쯤엔가 다섯 수행자가 있었고, 붓다는 그들을 만나 가르침을 펼쳤다. 붓다가 처음으로 굴린 법의 바퀴였다. 백성호 기자

사슴동산 어디쯤엔가 다섯 수행자가 있었고, 붓다는 그들을 만나 가르침을 펼쳤다. 붓다가 처음으로 굴린 법의 바퀴였다. 백성호 기자

 
나머지 네 수행자도 얼마 안 가 깨달음의 눈을 떴다. 그러자 사슴동산에서 붓다는 이렇게 선언했다. “여기 여섯 명의 아라한(깨달은 이)이 있다!” 다섯 수행자와 붓다 자신까지 포함한 숫자다. 그래서 이곳을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라 부른다. 붓다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법의 바퀴를 굴렸다. 그 바퀴가 지금도 우리를 부른다. 철커덩, 철커덩!  
 
붓다를 만나다, 지난 기사가 궁금하세요?
사슴동산의 다메크 스투파는 웅장하다. 둘레를 계속 돌면서 명상에 잠기는 순례객들이 꽤 있었다. 백성호 기자

사슴동산의 다메크 스투파는 웅장하다. 둘레를 계속 돌면서 명상에 잠기는 순례객들이 꽤 있었다. 백성호 기자

 
사르나트(인도)=글ㆍ사진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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