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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온라인 여론 조작이 지난해 18개국 선거에 중대한 영향

민주주의 위협하는 소셜미디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스북 사용자라면 누구나 가입 후 처음 며칠간 내가 겪었던 신기하고 당혹스러운 경험에 공감할 것이다.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는지 수많은 지인으로부터 쉴 새 없이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일일이 응대하자니 감당이 안 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상대를 무시하는 것 같아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며칠 만에 계정을 닫고, 이전의 나로 돌아갔다. 그것이 호기심을 포기하는 대가로 평정심과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멍청한’ 착각을 했다.

정권 장악과 비판 여론 억압 위해
가짜뉴스 유포하고 여론 조작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소셜미디어 악용

공룡화한 소셜미디어 기업
온라인 독과점 폐해도 심각
전파처럼 규제 여론 높아져

맞춤형 정보 노출된 사용자
끼리끼리 모여 편견 확대재생산
공존과 타협의 토대 훼손

디지털 문해력 교육 절실
전통미디어 팩트체크 기능 중요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를 멀리해서 ‘나’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터넷을 끊고, 스마트폰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떻게든 세상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절해고도(絶海孤島)에 홀로 남은 비문명인의 삶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인터넷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절연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을 하고, 스마트폰을 여는 순간 나의 흔적은 디지털 공간에 남는다. ‘디지털 족적(digital footprint)’이다. 포스트를 클릭하고, 검색어를 입력하고, 온라인 거래를 하고,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고, e메일을 보내고,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동영상을 볼 때마다 나는 디지털 공간에 발자국을 남긴다. 그렇게 쌓인 정보를 분석하면 내가 누구고, 어떤 사람인지 다 나온다. 내가 요즘 누구에게 또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책과 영화를 좋아하고, 진보 성향인지 보수 성향인지,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육식주의자인지 채식주의자인지 알 수 있다. 그 정보들은 방대한 빅데이터의 일부를 이루며 상업적 또는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다.
 
 
튜브를 열면 당신이 좋아할 만한 동영상이 먼저 뜨고, 네이버에 연결하면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가 자동으로 검색된다.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접속하면 당신이 좋아할 만한 책, 당신이 선택한 책을 산 사람들이 함께 구매한 책들이 뜬다. 디지털 공간에서 이미 우리는 도마 위의 생선처럼 발가벗겨져 온갖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다.
 
멋진 휴양지에서, 혹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찍어 올린 인증샷에 ‘좋아요’를 클릭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의 쿨한 소통 방식일 수 있다. 내가 팔로하는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 글을 확인하고, 댓글을 다는 것도 소중한 의사 표현 방식일 수 있다. 남이 퍼나른 뉴스와 포스트를 나도 남에게 퍼나르는 것은 의미 있는 사회 참여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약(藥)과 독(毒)은 동전의 양면이다.
 
“장시간의 소셜미디어 사용은 당신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인 페이스북이 지난 15일 자사의 공식 블로그에 올린 경고문이다. 전 세계 20억 인구가 사용 중인 페이스북이 소셜미디어의 폐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페이스북은 자사의 웹과 앱에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온갖 궁리를 다 짜낸 대가로 연간 280억 달러의 광고 수익을 올리는 대표적 소셜미디어 기업이다. ‘클릭(click) 비즈니스’ ‘눈길 끌기(attention) 비즈니스’의 선두주자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대선을 계기로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주범이란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페이스북은 2015년 1월부터 올 8월까지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가짜뉴스와 정치 광고에 1억2600만 명의 미국 내 페이스북 사용자가 노출됐다고 실토했다. 트위터는 미 대선기간 중 생성된 계정 중 3만6746개가 러시아와 연계됐다고 인정했다. 러시아가 미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수단으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사실을 페이스북과 트위터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페이스북은 모바일기기를 통한 소셜 트래픽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구글은 전 세계 인터넷 검색 시장의 90%를 독식하고 있고, 아마존은 전자책 시장의 75%를 점유하고 있다. 구글·애플·페이스북에 아마존을 더한 ‘가파(GAFA)’ 4형제의 온라인 독점은 굴뚝산업 시대의 독점체제보다 훨씬 강력하고 전방위적이다. 미국의 미디어 전문가 조너선 태플린은 “가파 그룹이 종국에는 민주주의까지 전복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2010년 말 시작된 ‘아랍의 봄’ 당시 민주화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소셜미디어였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튀니지의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 소규모 시위를 ‘재스민 혁명’으로 폭발시켰다. 쌍방향 소통을 통해 여론의 수평적이고 신속한 확산을 가능케 하는 소셜미디어는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무기가 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민주주의의 구세주라는 칭송이 소셜미디어에 쏟아졌다.
 
 
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짜뉴스와 유언비어, 역정보를 유포시켜 여론을 조작 또는 왜곡하고 비판 세력을 공격함으로써 정권을 유지하고 탈취하는 수단으로서 소셜미디어의 탁월한 기능에 사람들이 곧 눈독을 들였기 때문이다. 2012년 러시아 대선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블로거를 대거 고용해 여론을 조작했다. 그해 말 대선을 앞두고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댓글부대를 동원해 여당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이끌었다.
 
지난해 필리핀 대선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진영은 400~500명의 ‘키보드 군단’을 동원해 소셜미디어를 통한 경쟁자 비난과 공격에 나섰다. 공작에 참여한 사람들은 1인당 하루 500페소(약 1만원)를 받고 열심히 포스트를 올리고 퍼날랐다. 두테르테의 집권 이후에도 이들은 마약과의 유혈전쟁을 옹호하고 반대 여론을 잠재우는 여론 조작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 케냐 대선은 캠프마다 블로거와 봇(트윗 자동 생성 소프트웨어)을 동원해 소셜미디어에 가짜뉴스와 헤이트 스피치, 역정보를 퍼뜨렸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진영은 정치적 비판 여론을 덮기 위해 7만5000개의 ‘페냐봇’을 운영하고 있다. 미 대선기간 중 트위터로 전파된 정치 관련 포스트 5개 중 하나는 봇이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터키의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은 6000명의 인력을 동원해 소셜미디어를 통한 여론 조작에 나서고 있다(프리덤 하우스, ‘인터넷상의 자유(Freedom on the Net)’ 2017년 보고서).
 
프리덤 하우스는 지난해 6월부터 올 5월까지 1년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18개국에서 온라인 여론 조작이 선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발표했다. 또 조사 대상이 된 65개국 중 절반에 가까운 30개국이 정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온라인 정보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7년 연속 전 세계의 인터넷 자유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은 ‘인터넷 자유도’에서 세계 21위로 ‘부분적 자유국’에 머물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소셜미디어의 속성 자체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온갖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콘텐트를 제공한다. 그래야 사용자의 눈길을 최대한 사로잡아 광고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용자들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려 정보를 공유하며 편견을 강화하게 된다. ‘반향실(echo chamber) 효과’ 또는 ‘유유상종(類類相從) 효과’다.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제이넵 투펙치 교수는 “소셜미디어는 사용자를 ‘둥지 집단(peer group)’으로 몰아넣어 온건한 시각도 극단적 시각으로 변화시킨다”고 강조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편견의 확대재생산은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고, 정치적 타협이 가능한 토대 자체를 훼손하고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정보를 접할수록 공감의 여지는 줄어든다. 서로 분노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종국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한국에서 태극기 세력과 촛불 세력, 적폐청산 세력과 정치보복 세력 사이에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져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경멸의 정치(politics of contempt)’가 판치고 있는 이유다.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독과점체제를 유지하며 디지털 세상의 공룡 노릇을 하는 한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전파를 공공재로 인식해 방송을 규제하고 감독하듯이 소셜미디어에 대해서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정부의 망 중립성 폐기 결정이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힘을 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규제 일변도로 갈 경우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데 딜레마가 있다.
 
 
개인이 소셜미디어의 장점과 단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 유언비어를 가려낼 줄 아는 ‘디지털 문해력(文解力)’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공교육이 절실하다. 전통 미디어들의 팩트 체크 기능도 중요하다. 소셜미디어의 폐해를 줄이고 긍정적 기능은 살려 민주주의도 살리고 개인의 삶도 윤택하게 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소셜미디어 사용자의 프라이버시 노출 위험은 일정 부분 개인이 감당할 몫이다. 그걸 전제로 개인은 소셜미디어의 편리함과 효용성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 때문에 우리가 사는 ‘공동의 집’이 흔들리고 파괴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가와 국제사회 차원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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