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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왜 우리도 ‘사드 문제’라고 부르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아내와의 언쟁에서 이긴 적이 거의 없다. 아무리 잘못한 게 없어도, 분명히 논리적으로 완전무장을 했고, 나름 토론에 자신 있다고 자부하는데도 번번이 억울한 패자가 된다. 한참 언쟁을 하다 보면 논쟁의 주제가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이 무엇 때문이었건 상관없이 보통 그 끝은 언쟁 중에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에 대한 반성으로 끝난다. 너무나 명백한 논리적 분석은 감성지능(EQ)이 낮은 남편의 매정한 비난이 되고, 최초의 이슈에 대한 일관된 주장은 눈치 없는 남편의 무관심으로 변질돼 있다. 원래 남성은 보통 문제중심적인 사고와 대화를 선호하고, 여성은 정서중심적 접근과 소통을 선호한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를 언급하며 변명하고 사과하며 끝난다.
 

사태 본질보다 표현 방법에 따라
인식이 바뀐다는 프레이밍 효과
‘사드 문제’라 하면 북핵 희석되고
경제 보복도 당연하게 여겨져
이제 ‘중국의 경제 보복 문제는 …’
이라 부르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때로는 문제의 본질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규정되고 표현되는가가 더 중요해지기도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런 현상을 ‘프레이밍 효과’라고 불렀다. 프레이밍 효과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실험에서, 사람들은 치명적인 전염병에 600명이 감염된 상황에 대한 대책 방안을 결정하라고 요청받았다. 때로는 두 개의 방안, 즉 ‘200명을 살릴 수 있는 A방안’과 ‘600명을 살릴 확률이 3분의 1이지만 600명을 모두 살릴 수 없을 확률이 3분의 2인 B방안’ 중 하나를 선택하기를 요청받았다. 때로는 ‘400명이 죽는 A방안’과 ‘600명이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3분의 1이지만 600명이 모두 죽을 확률이 3분의 2인 B방안’ 중에 선택하기를 요청받았다. 본질적으로 두 경우 모두 똑같은 결과들 중 하나를 고르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자의 경우에서 보통 200명을 확실히 살리는 A방안을 선호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3분의 1인 B방안을 선호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이익으로 인식하면 모험(risk)을 회피하고, 반대로 무엇을 잃을지도 모르는 손실로 인식하면 모험을 감수한다는 연구 결과다.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이런 연구 결과들은 결국 실제 그 사건의 본질보다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묘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과 선택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프레이밍 효과는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도 쉽게 발견되는데, 그중 하나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중국 외교 현안이다. 바로 북핵, 사드 배치, 중국의 경제 보복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다. 이 연장선상에서 최근 중국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홀대 논란도 있다.
 
허태균칼럼

허태균칼럼

그 홀대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모두가 너무 자연스럽게 ‘사드 문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장관도 중국 방문 중에 ‘사드 문제는…’이라는 표현을 반복해 쓰고, 청와대도 ‘사드로 인한 경제 손실…’이라는 방중 발표를 하고, 언론도 날마다 ‘사드 문제’라고 기술한다. 사드 배치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정치·역사적으로 북한을 저버리기 힘든 중국이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를 사드 배치 때문으로 몰아가기 위해 ‘사드 문제’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북핵과 미사일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사드를 배치한 우리가 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경제 문제의 직접적인 이유는 사드 배치가 아닌 중국의 경제 보복 때문이다. 그러니 대통령이나 정부 관계자가 그로 인한 경제 문제나 기업의 어려움을 얘기할 때 ‘사드 문제’가 아닌 ‘중국의 경제 보복 문제는…’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만약 그 경제 보복이 사드 배치로 비롯됐기 때문이라면, 같은 논리로 사드 배치는 북핵과 미사일 위협 때문에 비롯됐으니 그냥 ‘북핵 문제’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사드 문제’라는 표현을 쓰면 쓸수록 우리의 인식에는 이 모든 문제가 마치 사드 배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된다. 그 근원인 북핵 문제는 희석될 것이고, 중국의 경제 보복은 마치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래서 만약 실제로 중국의 홀대가 있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정부의 자세나 중국 경호원의 한국 기자 폭행까지도 옹호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부의 인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슬퍼하는 아내에게 자꾸 미안하다고 얘기하다 보면 진짜 내가 잘못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외교적 전략과 매너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받아들이면 더 억울하다. 최소한 우리 스스로는 ‘사드 문제’라고 부르지 말자.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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