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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부산 보수동 헌책방거리는 도서변천사 박물관

“고려시대 때 만든 책을 만지고 볼 수 있는 보수동 책방골목은 피부에 와 닿는 박물관이죠.”
 

1950년 6·25 전쟁 전후 부산 보수동서 헌책 사고 팔면서 책방거리 형성
1970년대 70여개에서 현재 50개로 줄었지만 서점 밀집도는 세계 최고
도서시장 변천사 오롯이 남아있는 책방골목 공공자산으로 보존하려는 움직임

지난 17일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만난 양수성(44) 책방골목번영회장이 내린 책방골목의 정의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태어난 양 회장은 아버지 서점을 물려받아 2대째 서점을 운영 중이다. 그는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유일하게 고서(古書)만 판매하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20만권의 고서를 보유하고 있는 그는 고려시대 때 편찬된 고서는 물론 조선시대 때 허준이 쓴 동의보감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에 소장된 책은 유리관 속에 놓여 겉표지만 볼 수 있지만, 이곳에 오면 만져보고 읽어보고 냄새도 맡아볼 수 있다. 
양 회장은 “역사적 가치는 비슷하지만 한 끗 차이로 박물관에 소장되는 것과 서점에서 볼 수 있는 고서로 운명이 갈린다”며 “보수동 책방골목에 오면 귀한 고서를 읽고 만져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어른부터 아이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찾는 부산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사진 변승좌 씨]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어른부터 아이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찾는 부산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사진 변승좌 씨]

책방골목에는 ‘생활의 달인’으로 인정받은 재주꾼도 만나볼 수 있다. 47년째 헌책방을 운영 중인 남명섭(63) 씨는 헌책에 쓰인 낙서를 감쪽같이 지워 새 책처럼 만들고, 10여만 권의 책 위치를 정확히 기억했다가 이름을 말하면 한 번에 책을 찾아내는 능력을 갖췄다. 남씨는“옛날에는 귀한 동양철학 책이 들어오면 전화 달라는 단골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손님이 거의 사라졌다”며 “절판된 서적을 찾는 이들이 이곳을 주로 찾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위치한 충남서점을 운영하는 남명섭 씨는 SBS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 재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은지 기자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위치한 충남서점을 운영하는 남명섭 씨는 SBS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 재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은지 기자

책방골목에서 64년간 서점을 운영하는 김여만(82) 씨는 가장 오래된 터줏대감이자 책방골목 역사의 산증인이다.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김씨가 보수동 골목 앞 거리에서 책 장사를 할 때 책방골목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50년대 후반 그가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귀중한 서적을 구해다 이윤을 붙여 팔기 시작하자 고서를 취급하는 서점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40년간 고서를 팔던 김씨는 20년 전인 1990년 중반부터 중·고교 참고서 등 최근 서적만 판매하고 있다. 새 책이 넘쳐나고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이 활성화되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책 머리말을 봐야 고서의 가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 30~40권씩 책 머리말을 보며 평생 살았다”며 “책으로 시작해서 책으로 마감하는 나의 삶은 누구보다 풍부했고 행복했다. 이런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마련된 어린이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지난 4주간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은지 기자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마련된 어린이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지난 4주간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은지 기자

김씨의 인생사는 물론 보수동 책방골목의 역사를 문화자산으로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책방골목의 역사가 곧 국내 도서 시장의 변천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책방골목을 민간 상업시설로 치부했지만, 이제는 역사적 가치가 담긴 공공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3월 부산시립박물관 임시수도기념관이 ‘보수동 책방골목의 공간과 사람들’을 발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 회장은 “바다와 재래시장은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헌책방이 이렇게 밀집해있는 곳은 책방골목이 유일하다”며 “관광지로 전락해 5분 동안 사진만 찍고 가는 곳이 아닌 책 문화를 느끼고, 서점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공공재의 역할을 담당할 때”라고 강조했다. 
 
책방골목이 최대 전성기였던 70년대 70여개이던 책방이 지금은 50여개로 줄었지만, 밀집도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는 “세계적인 책마을인 일본 ‘간다 고서점 거리’는 2.5㎞ 구간에 150개의 책방이 흩어져 있지만 이곳은 320m 구간에 50여개의 책방이 오밀조밀 붙어 있다”며 “골목 자체가 기네스북감”이라며 활짝 웃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위치한 충남서점에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헌책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은지 기자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위치한 충남서점에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헌책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은지 기자

보수동 책방골목을 공공재로 활용하기 위한 환경개선 사업은 이미 시작됐다. 중구청은 부산시로부터 받은 교부금 5억원으로 골목 공동 서재 설치, 공익광고 캠페인, 광장조성 등을 추진한다. 
장인철 부산 중구 문화관광과장은 “지난 15일 사업 시행사를 선정했고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한다”며 “책방골목에 세금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와 거리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책방골목번영회는 향토기업과 손잡고 도서 소외지역에 ‘찾아가는 책방골목’을 열거나 헌책을 기증하는 사회공헌활동도 계획 중이다.  
지난 17일 추운 날씨에도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은 이들이 많았다. 이은지 기자

지난 17일 추운 날씨에도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은 이들이 많았다. 이은지 기자

장기적으로는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과 결부시켜 책방골목을 책마을로 확대하는 사업도 병행한다. 세계적인 책마을로 거듭난 일본의 간다 고서점 거리와 영국 웨일스의 책마을 ‘헤이 온 와이’를 롤모델로 삼을 계획이다. 
양 회장은 “일본 고서점 거리는 1박 2일 머무를 수 있을 만큼 볼거리가 많고 숙박시설이 잘돼 있지만, 다소 삭막한 느낌이 난다”며 “보수동 책방골목은 산복도로와 연결해 책마을로 공간을 넓히되 영국의 ‘헤이 온 와이’의 여유로움을 결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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