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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섬세한 시심 빛낸 조리있는 미문 … 시인·소설가·평론가의 콜라보

문학이 있는 주말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지음, 창비
 
장석남·권여선·신형철. 최고까지는 아니어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조합이다. 하지만 한데 뭉쳤다. 장씨가 5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이 계기다. 손끝 맵찬 소설가 권씨는 시집 뒤표지 추천 글을, 조리 있는 미문(美文)으로 이름난 평론가 신씨는 해설을 썼다. 실속 있는 응원군을 두 명씩이나. 인덕인가, 아니면 시집이 빼어나선가.
 
장씨는 언어감각에 관한 한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에 가장 근접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만큼 시를 짓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그의 문장이 읽자마자 감탄사가 튀어나온다는 소리는 아니다. 시 제목을 염두에 두고, 적당히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이런 상태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한 줄 한 줄 따라 읽다 보면 그의 문장의 아름다움에 동의하게 된다. ‘동백의 일’, ‘사랑에 대하여 말하여주세요’ 같은 작품이 그렇다.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입춘 부근’은 시집 제목을 딴 문장이 들어있기도 하지만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여러 주제 중 하나가 드러난 작품이다. 대체 땅에 떨어진 꽃을 밟을까 봐 평소에 걱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적 과장, 호들갑 아닌가. 하지만 벚꽃이나 목련, 그 고운 숭어리들이 떨어진 봄날의 꽃길을 걸으며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시인의 마음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사소해 잊어버리고 있던 미세한 마음의 기미, 느낌과 감각을 기억했다 받아쓰는 사람이 시인이다. 한데 시의 화자가 꽃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발이 땅에 닿아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꽃의 아름다움이 사무치더라도 우리는 달그락거리며 커튼 창가에서 끓인 밥을 먹어야 한다.
 
‘밥때를 기다리며’ 같은 작품에서도 성과 속, 아름다움과 비루함이 대비된다. 지식 나부랭이를 섬기는 근엄한 표정쯤 먹어야 사는 짐승의 형형한 눈빛 앞에서는 비루한 정신일 뿐이다.
 
장씨는 시인의 말에서 “모순, 수많은 모순 속을 왔다. 사랑이 그렇고 사는 일이 그랬다. 눈보라 같았다”고 썼다. 문장의 아름다움도 이런 보편적인 감성이 바탕에 깔려야 성립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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