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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망 중립성 폐기- 사이버 세상 판이 바뀐다

고속도로에서 빨리 달릴 수 있는 '고속 전용'과 천천히 달려야 하는 '저속 전용'을 구분해 설치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모든 차량이 똑같이 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을까.
 

미 FCC, 14일 망 중립성 원칙 폐지안 통과
트럼프의 '오바마 흔적 지우기'라는 정치적 해석도
망중립성 유지하는 한국, 정부 "당장 상관은 없을 것"
국내외 서비스 사업자들은 미국 영향 받을 것으로 보여

망 중립성 원칙을 폐지하면 수혜를 입는 미국 최대 통신망 사업자(ISP) 컴캐스트의 캠페인. 컴캐스트는 망 중립성이 폐지되면 일부 서비스가 차단되고 인터넷 사용에 제약이 생긴다는 우려에 대해 "우리는 인터넷을 차단하지도, 콘텐트의 목을 조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사진 컴캐스트]

망 중립성 원칙을 폐지하면 수혜를 입는 미국 최대 통신망 사업자(ISP) 컴캐스트의 캠페인. 컴캐스트는 망 중립성이 폐지되면 일부 서비스가 차단되고 인터넷 사용에 제약이 생긴다는 우려에 대해 "우리는 인터넷을 차단하지도, 콘텐트의 목을 조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사진 컴캐스트]

1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폐지가 결정된 '망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은 통신망 사업자들과 서비스 사업자들 간의 첨예한 이해 관계 대립을 잘 보여주는 이슈다. 각국 정부가 망 중립성 원칙을 유지하는지에 따라 이들 기업과 산업 간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망 중립성이란 통신망을 가지고 있는 사업자가 망에서 서비스하는 사업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통신 전문가들은 망 중립성 원칙을 고속도로와 그 위 차량들에 종종 비유한다. 망 중립성 원칙을 지키는 것은 차량에 비유되는 포털·동영상 등 서비스 사업자들이 모두 똑같은 속도와 품질로 서비스를 할 수 있게 고속도로를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번 미국에서처럼 망 중립성 원칙이 폐지되면 고속도로에 비유되는 통신망 사업자들은 차량(서비스 사업자)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고속도로와 저속도로를 차별해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셜 미디어 기업 트위터는 '망 중립성 원칙 폐지'에 대한 토론장을 온라인상에 마련하기도 했다. 트위터·페이스북을 비롯한 테크 회사들은 이번 미국 FCC의 망 중립성 원칙 폐지 결의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 트위터]

미국의 대표적인 소셜 미디어 기업 트위터는 '망 중립성 원칙 폐지'에 대한 토론장을 온라인상에 마련하기도 했다. 트위터·페이스북을 비롯한 테크 회사들은 이번 미국 FCC의 망 중립성 원칙 폐지 결의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 트위터]

이번 망 중립성 폐지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곳은 구글·아마존·넷플릭스 등 미국의 초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이다. 넷플릭스나 페이스북 같은 데이터 사용량이 많은 서비스는 접속 속도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통신망 사업자인 버라이즌은 넷플릭스와 비슷한 스트리밍 자회사 파이오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론대로라면 이들 통신망 사업자들이 망을 많이 차지하는 경쟁사 트래픽을 아예 차단한 뒤 추가 요금을 내게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현재 월정액을 내고 인터넷을 쓰는 소비자들도 예전처럼 인터넷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내야 하는 '인터넷 종량제'로 회귀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무료로 쓸 수 있는 구글과 페이스북도 결국 '헤비 유저'들을 위주로 요금을 내라고 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망 중립성 원칙은 첨예한 정치적 갈등의 상징이다. 이번에 망 중립성 원칙 폐지를 의결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와도 같은 곳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취임한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대표적인 망 중립성 반대론자다. 파이는 망 중립성 폐지로 수혜를 보게 된 통신망 사업자 버라이즌 출신이기도 하다. 망 중립성 원칙 폐지 최종안에 찬성표를 던진 FCC 위원 5명 중 3명이 여당인 공화당 추천 인사다.
 
망 중립성 원칙이 폐지되면 사진처럼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트 플랫폼을 접속할 때 속도가 느려지거나 차단될 가능성도 있다.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ISP 사업자들이 데이터를 많이 잡아먹는 플랫폼에 대해 차별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진 넷플릭스]

망 중립성 원칙이 폐지되면 사진처럼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트 플랫폼을 접속할 때 속도가 느려지거나 차단될 가능성도 있다.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ISP 사업자들이 데이터를 많이 잡아먹는 플랫폼에 대해 차별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진 넷플릭스]

파이는 "통신 사업자들이 자본주의 시장 원칙에 따라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통신사가 망 중립성 폐지로 얻게 된 이익은 차세대 인프라 투자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망 중립성 폐지도 결국 ‘트럼프의 오바마 지우기’ 대책의 일환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오픈 인터넷 규칙'을 제정해 망 중립성 원칙을 법제화한 바 있다.
 
빌 클린턴 시절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통신망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정치·경제 논리에 거슬리는 뉴스와 콘텐트를 마음껏 차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망 중립성 폐지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페이스북·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국내에서도 가장 먼저 서비스 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유튜브처럼 트래픽을 많이 쓰는 서비스는 인터넷 요금과 별개로 추가요금을 내거나 통신망 사업자들이 설치한 광고를 봐야 할 수도 있다. 네이버·다음 같은 국내 사업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포털 등 국내 인터넷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차재필 정책실장은 "망 중립성이 훼손되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터넷 기업들의 혁신이 무산될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현재와 같은 망 중립성 원칙 유지 기조를 이어 갔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 등 소위 말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놓고 경쟁 관계인 이들 IT 기업들이 통신망 사업자들에 밀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반면 국내 통신망 사업자들은 공식적인 입장은 내놓고 있지 않지만 미국의 이 같은 결정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한 통신업체 관계자는 "네트워크가 고도화될수록 소비자들에게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합리적으로 망 사용을 분담하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한국 정부는 미국 FCC의 결정이 당장 한국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고 판단한다. 송재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이번 결정을 글로벌 트렌드라고 이해하기보다는 미국의 정권 교체에 따른 변화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도 "문재인 정부의 철학도 망 중립성 원칙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이번 정부에서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튜브 등 미국 서비스도 한국 시장에서는 국내 통신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서비스 이용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미국의 망 중립성 원칙 폐지는 일종의 패러다임 변화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판단된다. 이광형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석좌교수는 "망 사업자들이 차세대 인터넷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됨으로써 이들이 서비스와 광고 시장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데이터를 압축·절약해 유통시킬 수 있는 '데이터 압축 기술' 등이 중요해지면서 메모리·반도체 산업도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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