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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꽃보다 아름다운 이름, 이복순

김승현 사회2부 부데스크

김승현 사회2부 부데스크

복 받으며 살라고 지어진 이름은 너무 오랫동안 잊혀졌다. 1926년에 태어나 200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이름 복순(福順)은 하나의 몸짓이었다. 남태평양 ‘트럭섬’의 4년,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는 공식 기록으로 확인된 적이 없었다. 진실의 잉크는 그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46년 귀환선의 탑승자 명단에 적힌 ‘히토가와 후쿠준’은 대구가 고향인 스무 살 여성 이복순의 일본식 이름이었다. 46년 1월 미군 전투일지 속 사진에 하얀색 투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그가 있었다. 귀향을 앞두고 짐을 싸는 표정은 어두웠다. 고향에서 4000㎞ 떨어진 열대섬의 공포와 비명은 끝났지만, 다시 꽃이 될 수 없었다. 46년 3월 2일자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전한다. “트럭섬 사령관 블레이크 장군에 따르면 이 여성(조선인 위안부)들은 남아서 미국인을 위해 일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일본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다른 조선인들이 자신들을 바다에 빠뜨릴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이후 이복순 할머니의 이야기는 극히 일부의 친구와 가족(양아들)에게만 ‘구전’됐다. “동생들 먹여 살리려고 돈을 벌려다 속아서 아프리카 같은 곳에 갔다. 죽도록 고생만 했다.” 71년 만에 할머니의 이름을 사료에서 확인한 연구팀의 박정애(43) 교수(서울대 인권센터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관리사업팀 연구팀장)는 “단순한 ‘최초의 트럭섬 자료’가 아니다. 여성 한 명 한 명의 역사로 알려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복순 할머니는 저승에서 꽃이 되었을까.
 
지난 13일엔 동명이인의 또 다른 이복순이 먼 기억에서 소환됐다. “27년 전, 복순 언니가 그 많은 재산을 다 기부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죠.”
 
시장에서 일해 모은 5억원 상당의 재산을 충남대에 기부한 사실이 2년 만에 뒤늦게 알려진 성옥심(89) 할머니는 자신이 친언니처럼 따랐던 이복순(1914년생·1992년 작고) 여사를 언급했다. 지난 90년 현금 1억원과 시가 5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같은 대학에 기부해 화제가 된 ‘김밥 할머니’의 본명이다. 사시사철 검은 고무신에 통바지 차림으로 김밥을 팔아서 일군 큰 재산을 그는 미련 없이 사회에 내놨다. 지난 2010년 그의 선행이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지만, 성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다시 듣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중앙일보 90년 11월 29일자에 기록된 생전 인터뷰에서 이복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30여 년간 땀과 정성, 눈물로 쌓아 온 제 영혼 같은 전 재산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고향 학생들에게 저의 정신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너무 친숙해서 막 대해도 될 것만 같은 이름 이복순. 눈물과 영혼이 깃든 그 이름들이 꽃보다 아름답게 기억되길 희망한다.
 
김승현 사회2부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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