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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중국의 ‘민낯’

고정애 정치부 차장

고정애 정치부 차장

“빅토리아 여왕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왕은 나무 부두에 이마를 대다시피 한 채 20분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화가 났고 두려웠으며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느라 지친 상태였다. (중략) 기영(耆英)의 부하가 낭독하던 포고문이 여왕에게 종속국 통치자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부분에 이르자 빅토리아는 푹 숙이고 있던 머리를 들어 조국의 치욕을 의미하는 야만족의 모자와 예복을 받았다.”
 
역사학자인 이언 모리스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서 그려낸 가정의 역사다. 1848년 영국이 중국의 조공국이 되는 걸 상정했다.
 
물론 현실은 정반대다. 하지만 영국인들에겐 실감 나는 비유였을 게다. 굴종의 의미로 땅에 머리 댄다는 이미지가 각인된 계기가 1800년을 전후한 두 나라의 초기 만남이어서다. 지금은 일상어가 된 ‘카오타오(kowtow)’다. 무릎을 꿇고(궤) 양손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숙이기(고)를 세 차례씩 도합 세 번 되풀이하는 절인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 즉 고두에서 유래했다. 1793년 자유무역을 요구하며 중국의 문을 두드린 조지 매카트니가 청 황제를 만나려 하자 요구받았다는 의례다.
 
중국의 기영은 실제론 ‘비운’의 인물이었다. 1842년 1차 아편전쟁 후 영국 전권대사인 헨리 포틴저와 난징조약을 체결했다. 청 몰락의 서곡이었다. 그는 포틴저를 두고 “아끼는 친구이자 친밀한 사이”라고 말하며 환대하곤 했다. 기영은 그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재주껏 그들(영국)을 지배하는 게 더욱 필요했다. 연회나 향응을 베푸는 때도 있는데, 그렇게 해주고 나면 저들은 우리에게 고마워하는 느낌을 갖는다.”(『중국 이야기』)
 
이런 얘기들을 떠올린 건 한·중 사이 불거지는 일련의 마찰음 때문이다. ‘중국몽(中國夢)’이 드리운 짙은 그림자다. 사실 중국의 일부 엘리트는 불운했던 과거를 보상받으려는 듯 거칠었다. 이들과 접촉하는 외교관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곤 했다. 대통령 순방에 동행 취재하다 머리채를 잡혔다는 기자를 본 적도 있다. 그게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갈등 이후 더 노골화했고 보통 사람들도 느끼는 바가 됐다. 강국으로서 중국의 맨얼굴이다.
 
고정애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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